허영을 다루는 이야기
-산목
양주가 송나라로 갈 때
어느 객사에서 하룻밤 머물렀다.
객사 주인에겐 아름다운 부인과 못생긴 부인이 있었다.
그런데, 못생긴 부인은 귀한 대접을 받고,
아름다운 부인은 홀대를 받았다.
양주가 그 이유를 묻자,
객사의 어린아이 : "아름다운 여자는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그녀가 아름다운 줄 모르겠습니다.
못생긴 여자는 자신이 못생겼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그녀가 못생긴 줄 모르겠습니다."
양주 : "제자들은 명심하라!
능력을 발휘하면서도
자신이 능력자라고 생각하는 마음을 버린다면,
어디간들 아낌을 받지 않겠는가!"
아름다움의 기준은 무엇인가?
허영(vanite,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비어있다,
자기가 가진 것 이상을 원하는 마음,
내가 가진것 이상으로 찬양받지 원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애달프다.
삶에 치명적이기도 한 허영,
허영이 없으면 굉장히 자유로워진다.
첫인상은 좋은 사기꾼같이 아름다움은 한 순간이다.
허영의 근원은 칭찬받고 싶은 마음에 있다.
근대 철학의 양대 산맥 :
데카르트(인간의 지적이고 이성적이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
파스칼(인간은 만물의 허접).
파스칼 팡세 중 : "허영은 사람의 마음속에 너무 깊이 뿌리박혀 있어
병사, 아랫것들, 요리사, 인부도
자기를 자랑하고 찬양해 줄 사람을 원한다.
심지어 철학자들도 자신의 찬양자를 갖길 원한다.
이것을 반박해서 글을 쓰는 사람들도
훌륭히 썼다는 영예를 얻고 싶어 한다.
이것을 읽은 사람들은 읽었다는 영광을 얻고 싶어 한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도
아마 그런 바람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고
이것을 읽을 사람들도 아마 그러할 것이다."
실크로드(로마로는 실크, 중국으론 황금과 옷)는
비싸고 희소성 있는 물건이 교류된 사치의 교류.
사치품은 지배계급의 찬양받기 원하는 마음에서 비롯.
가난한 사람도 상류층이 되길 동경 : 독가스처럼 퍼지는 허영의 풍조.
우리 모두에겐 허영이 있다.
장자의 해법 : 나는 버러지다라고 생각. 그때부터 자유로워짐.
요즘 명문대생 : 대체로 좋은 집안 출신.
피에르 부르디외 : 아이에게 교육 자본을 물려줄 수 있다.
부모의 재산으로 만들어지는 교육 자본을 통한 부의 세습.
우리가 예쁘게 꾸미는 이유 :
능력이 부족해도 능력 있는 것처럼 보여야 하는 사회.
평민들은 상류층과는 달리
남들보다 이뻐보여야 한다는 경쟁 의식
(다른 사람은 나보다 능력 없어 보이게 해야 함).
객사 안 누구도 평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함 :
악플러 기질을 가진 객사 사람들.
상류층은 그것이라도 가져야 다르다는 걸 드러내고 칭찬 받고
하류층은 나도 저거 가져야지, 저거 해야지, 인정받아야지란 칭찬 욕구.
갈수록 좁아지는 피라미드 구조 :
나는 가진 것 이상으로 다른 사람은 가진 것 이하로 보이게.
양주가 들렀던 객사 : 우리 사회를 상징.
예쁜 부인 : 문제는 과도하게 이뻐서 질투를 불러일으킴.
객사 사람들이 왜 예쁜 부인이 예쁜지 모를까?
예쁜 척하는 것은 넌 못생긴 것 받아들이라란 현타.
못생긴 걸 받아들이는 걸 용납못하는 객사 사람들.
허영의 핵심 : 비교 의식, 비교 우위에 있고 싶은 생각.
대체로 모든 인간은 죽을 때까지 허영 의식에 사로잡혀 있음.
막장드라마에서의 쾌감 : 재벌인데 망하고 싸우는 것.
실제론 가진 자들이 확률적으로 더 화목하고 기부도 많이 함.
객사 사람들 모두 허영의 덩어리다.
스승도 제자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한다.
유세 : 사상가와 그 제자들이 제후국을 찾아다니며
군주 앞에서 자신의 사상 등을 제시하는 것.
객경 : 다른 나라로부터 와서 높은 벼슬을 한 사람.
군주가 공자를 재상으로 삼으면 내각에 배치되는 공자의 제자들.
양주도 마찬가지로 오만 가지로 매력 어필했을 것.
허영의 행렬인 양주와 제자들.
허영에서 자유로운 곳? 바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객사 바깥.
시각으로부터 출발하는 허영. 눈이 안보이면 무너지는 허영의 세계.
객사 바깥은 무하유지향(어디에도 없는 듯한 고향)이 아닐까?
장자의 물음 : 당신들은 객사 밖으로 나갈 수 있는가?
헛된 칭찬이라도 받기 위해 경쟁,
비교하는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떻게 극복할까?
과도하게 찬양받기를 인간이 원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찬양하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만물의 허접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어떤 동물도 허영을 부리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 삶과는 무관한 경쟁과 갈등에 빠짐.
허영은 인간의 치명적인 약점.
칭찬받고 싶은 마음으로부터 시작되는 문제들.
객사 밖 : 장자가 꿈꾸는 세계.
놀라운 이야기다. 이 이야기 역시 시청한 후
머리를 한 대 세게 얻어 맞는 기분이 들었다.
아름다운 부인만이 문제가 아니고
객사 안의 모든 사람들이 허영 덩어리라는 그 통찰.
처음에 이 글을 접했을 때 단지 아름다운은 순간일뿐,
내면이 중요하다라고 이해하고 넘어갈 것이다.
그런데, 인간 세계의 속성을 담고 있는 이야기.
장자가 진짜로 이것까지 보고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강신주 선생님의 훌륭한 해석인지는 알 수 없다.
피부만 걷어내면 모든 사람은
그냥 뼈와 살 덩어리란 건 누구나 다 안다.
그런데, 외모로부터 쾌감을 얻는 것은 모든 생명체의 본능이다.
동물 세계에서도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한
수컷의 치열한 구애 행태를 보면
동물조차 외모가 주는 쾌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걸 알 수 있다.
따라서, 외적 아름다움은 한 순간이란
말만큼 잘 알려진 헛소리는 없을 것이다.
동일한 인품을 가졌단 가정하에
외적으로 아름다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선택하라고 할 때
후자를 선택할 사람은
무던하거나 변태거나 성자가 아닌 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훌륭한 외모를 가진 사람은 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타고난 운을 가졌다는 것은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뭐가 아름다운지 잘 모르는 눈을 타고난 사람은
그는 허영으로부터 자유로운 천운을 타고닌 것이다.
막귀는 음정이 플랫되고 돼지 멱따는 소리라도
소리만 크면 감동을 먹는 것처럼.
성경에 보면 죄없는 자가 돌로 치라란 명언이 있다.
잘난 사람은 조금이라도 잘못을 저지르면 비난을 증폭한다.
따라서, 연예인은 알고보면 극한직업인이고
돈을 많이 벌더라도 위자료를 번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생긴대로 논다, 관상은 과학"이란 말이 있듯
못생겨서 더 증폭되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누군가 잘되거나 잘난 것에 대해
비난을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내가 과연 저들만큼 잘나게 되었을 때,
그들만큼 죄를 안지을 자신이 있는지를.
외모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외모에 대한 묻지마 비하나 비판이 문제다.
잘생겼건 못생겼건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은
쾌감과는 별도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니까.
물론, 조금이라도 재수없는 놈은
죽어도 칭찬하고 싶지 않고
어떻게든 깎아내리고 싶은 심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니까.
성경을 보면 나를 찬송하기 위해 인간을 창조했다 구절로부터
야훼라는 신은 허영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진정한 천국이라면 어떠한 차별로부터도 자유로워야겠지만
불행히도 성경에 기록된 천국은
자신의 노력과 그 결실에 따른 철저한 계급 사회이고
질투로 가득한 야훼라는 신을
영원무궁토록 찬양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기독교적 복음이란 결국,
현세에서 누릴 영광을 저 세상으로 이연한 것일 뿐
인간의 원초적 허영에 대한 갈망을 교묘히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저 세상을 얘기하는 대부분의 다른 종교 역시, 매 한가지일 것이다.
사람들은 안 그런척해도 칭찬,
비교의식으로부터 대체로 자유롭지 못하다.
자칭 서민이라면서 고가의 사치품을 가진 사람들, 다주택자들을 욕한다.
그리고, 어떻게든 상속세를 줄이려고
갖은 꼼수를 쓰는 사람들을 욕하기도 한다.
그런데, 반대로 없던 자들이 대박로또라도 맞아 거대한 부를 이룬다면
그들은 과연 예전 그대로의 소박한 삶을 유지하고
여유 자산은 사회에 환원하며
절세를 위한 갖은 꼼수를 안쓸 수 있을까?
더하면 덜했지 결코 덜하지 않을 것이다.
영끌족들이 대출을 더 받기 위해
위장 이혼까지 서슴지 않는 것을 보면.
그리고, 대체로 돈만 있으면 근사한 집을 가지고 싶어 한다.
복권으로 번 상금을 지킨 자들보다
탕진한 자들이 절대적으로 많은 건 이에 관한 확실한 증거니까.
나조차도 돈이 무한에 가까울만큼 많다면
세계 각지 경치 좋은 곳에 별장 하나씩 두고
최첨단 잠수함 하나 사서 세계 각국을 누비며 여행하고 싶다.
그런데, 지금 있는 자산이 10배, 100배로 불어난다면
과연 지금 누리는 소소한 행복을 유지할까란 생각을 한 적 있다.
나는 어떻게든 불필요한 비용은 줄이고
지구를 지키고 싶단 생각에
불필요한 소비를 최소화해야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그런데, 내 아내는 나의 통제하에 명품백 하나,
외제차 하나 가지지는 못하고 있으나
재산이 10배로 늘어난다면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고
결국 이로 인한 갈등이 치솟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 수준을 유지하며 아내와 행복할래?
아니면 재산이 10배로 늘어났지만
아내와 날마다 싸움박질할래?라고 한다면
난, 당연히 전자를 선택할 것이다.
그만큼 내 아내와 사이좋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회생활하면서도 습관적으로 윗 사람 욕하는 사람들 보며
자기라면 이렇게 해서 훌륭히 해나갈 것이란
헛소리들을 지껄이는데 정말 가관이다.
그렇게 정의를 부르짖던 자들이 실제로 권력을 잡으면
대체로 원래 있던 사람들보다
더하면 덜했지 덜한 것을 별로 보지 못했다.
따라서, 가진 자들이든 못 가진 자들이든
대체로 한심한 건 매한가지다.
차이가 있다면 실제로 그걸 행할 능력이 있어
하류층을 제압할 수 있냐 없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문명이 발전하는 가운데
극소수의 충신과 훌륭한 사람들보다
간신 내지 매국노들이 살아 남을 확률이 훨씬 높아
그들이 권력을 세습받고 여전히 그들이 펼쳐논 싸움판에서
오징어들은 니가 죽네 내가 죽네들 하고 있지 않은가?
나 역시 한심 그 자체이다.
아담과 이브 시절로 돌아가
각종 폐기물로 지구를 신음하게 하는 각종 패션은 사라지고
중요부위만 가리는 시대로 가야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사치품에 대한 소유욕이 거의 없는 나지만
파스칼의 명언으로부턴 결코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장자 역시, 훌륭한 가르침을 남겼을지언정
천하는 결코 바꿀 없는 존재였고
어떻게 보면 자신의 뛰어난 메타인지로
천하를 바꾸지 못한 걸 미리 알아
비겁해보일 정도로 천하를 외면한 사람이다.
어쩌면 인간은 이 문제를 영원히 해결하지 못할 수 있다.
환경이 파괴되어 어느 임계점을 넘어서면 결국,
대자연은 인간이 쌓아논 모든 번잡스런 문명을 쓸어 버릴 것이다.
그제서야 극복 가능할지,
아니면 또 다른 진보 생명체에 의한 파괴 사이클이 시작될련지 모르겠다.
공상가들이 화성 너머까지 가서 거처를 마련할 계획들을 세우고 있는데
지구도 모자라 우주까지 오염시키는 것만큼은 막아야할텐데
그런 뻘짓은 실현되지 말고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모든 인류가 공평하게 대자연의 심판을 받았으면 하는
다소 과격한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인간들이 알게 모르게 대자연을 파괴한 벌은
멸종으로 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벌로부터 자유롭기 위한 방법은 하나다.
대자연을 소생시키는 방향으로의 전환인데 과연 가능할련지는 알 수 없다.
과연, 인류가 원초적인 허영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해법을 마련할 수 있을까?
비관론자인 난 결코 없을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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