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

강신주 장자수업 [27강. 조릉이야기 : 장주에서 장자로]

dirigent21 2024. 3. 10. 23:24

 

장자(존칭)에 비해 장주(이름) :

장자를 객관적으로 묘사.

장자 인생의 변곡점이 느껴지는 이야기.

인저 : 장자의 수제자,

장자의 이야기를 정리했을 것으로 추정.


-산목

조릉의 수렵 금지 구역 근처에서 노닐 때,

장주는 남쪽에서 방금 날아온

기이한 까치를 보았다.

날개폭이 일곱 자,

눈 크기가 한 치나 되는 까치는

장주의 이마를 스치듯 지나가

밤나무 숲에 앉았다.

장주가 말하길, "이 새는 무슨 새인가!

큰 날개로 날지 못하고

큰 눈으로 나를 보지도 못하는구나!".

장주는 옷자락을 걷고

밤나무 숲으로 걸음을 재촉하며

석궁으로 그 새를 겨냥했다.

그 때, 그는 매미 한 마리를 목도했는데,

그 매미는 방금 아름다운 그늘을 발견해

자신을 잊고 있었다.

사마귀 한 마리가 앞발을 들고

그 매미를 낚아채려 했는데,

그도 얻을 것을 기대하며

자신이 드러남을 잊고 있었다.

그 기이한 까치도 그 사마귀를 뒤따르며

이롭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그도 이익을 기대하며

자신의 실제 상황을 잊었던 것이다.

장자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말하길,

"아! 사물들은 본질적으로 서로 연루되어

하나의 종류가 다른 종류를 부르는구나!".

장주가 석궁을 던지고 숲에서 되돌아 나오는데

사냥터 관리인이 그에게 욕하며 달려왔다.

장주는 집으로 돌아와

사흘 동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인저 : "선생께선 최근 무엇 때문에

이리도 마음이 불편하신겁니까?"

징주 : "지금까지 나는 드러난 것을 지키며

나 자신을 잊으려 했고 혼탁한 물을 보며

맑은 연못에 매료되어 있었다.

게다가 나는 선생으로부터 이미

'그 사회에 들어가서는 그곳의 규칙을 따르라'고

하신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얼마전 조릉에서 노닐 때 나는 나 자신을 잊었다.

기이한 까치가 이마를 스치고 날아들었을 때

나는 밤나무 숲에서 노닐며

나의 실제 상황을 잊었다.

아니나 다를까,

밤나무 숲을 지키던 사냥터 관리인은

나를 범죄자로 여겼다.

이것이 내 마음이 불편한 이유다."


 

계급 사슬 :

그늘 -> 매미 -> 사마귀 -> 까치 -> 장자 -> 사냥터 관리인.

낚시터와 같이 일정한 공간에 동물들을 모아놓은 사냥터.

석궁을 들고 다녔던 장자 : 활력 넘치는 캐릭터.

까치를 잡으려다 귀족의 사냥터에 들어간 장자,

귀족 내지 군주의 사유 재산을 침범하는 위험한 행위.

사마귀에 집중하느라 장자를 보지못한 까치.

매미에 집중하느라 까치를 보지못한 사마귀.

그늘에 집중하느라 사마귀를 보지못한 매미.

연쇄 사슬 중 가장 똑똑한 장자 :

인과적 패턴에 의한 추론,

어떤 존재가 나를 노리고 있다는 느낌.

사냥터를 떠난 장자를 뒤쫓아 온 사냥터 관리인,

찰나의 차이로 죽을수도 있던 위기 상황을 피함.

망 : 내 앞에 주어진 것에만 집중해 매몰되어

나 자신을 잊는 것, 여자/글/공부에 몰입 등.

진정한 몰입 : 망의 실천.

장자의 원래 지향점 : 무언가 드러난 것에

나 자신을 잊을만큼 몰입해야 한다.

몰입의 결과는 작은 세계 :

몰입 때문에 망가지는 경우도 있다,

주위를 살피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몰입하면 세계는 좁아진다.

매미 세상은 자신과 서늘한 그늘,

사마귀 세상은 자신과 매미,

까치에겐 자신과 사마귀,

장자에겐 자신과 까치,

사냥터 관리인에겐 자신과 장자뿐.

계속해서 이어지는 연쇄 구조.

과거의 장자 : 집중해,

태양에만 집중하고 달이 뜨면 달에만 집중해.

망의 새로운 개념 : 작은 세계에 갇히지 않고

보다 넓은 세계가 열리기도 하는 것,

세계가 넓어지기도 좁아지기도 하는 의미.

사마귀 때문에 문제가 되는 그늘,

욕망을 끊자라고 해석해선 안됨.

사마귀가 까치를 피하는 원초적인 방법 :

식욕을 끊는것, 참선하는 사마귀?

그러나, 굶어 죽음.

세상에 매미와 그늘만 있다면 쉴 수 있는 매미,

까치가 없을 때에야 매미를 먹을 수 있는 사마귀.

사마귀가 있으면 도망가야 하는 매미,

까치가 있으면 도망가야 하는 사마귀.

먹이에만 몰입하지말고

먹이와 내가 처한 상황을 같이 봐야.

혼탁한 물은 세상을 못 비추고

맑은 연못은 세상을 비출까?

세상을 다 비추지 못하는 거울,

그런데 거울에 다 비치는 것 같다는 착각.

맑은 연못, 거울같은 마음을 가진다면?

거울과 대상만 남는 것.

서늘한 그늘은 비춰도

거울 뒤의 사마귀는 비추지 못하는 거울.

거울처럼 맑은 마음으로 앞을 비추면

완전한 인간이라 생각했던 장자.

장자의 깨달음 : 거울이 다 비추는 건 아니구나!

그 사회에 들어가야만 알 수 있는 규칙,

사마귀가 있는 걸 미리 알았다면

그늘에 들어가지 않았을 매미.

그곳의 령(규칙, 명령)을 따라

매미는 사마귀에게 먹혀야 했던 걸까?

단순히 그곳의 규칙을 따르지말고

그 사회에 들어가 규칙을 알게 되면

도망갈지 말지를 결정해야, 출발점).

장주유어조릉지번 : 소요유의 출발점,

여기가 아닌 것 같으면 빨리 나오는 것.

소요유의 감각이 있었던 장자 :

내가 까치를 노리는데

까치가 사마귀를 노리네?

내 뒤를 노리는 자가 있을지 모르니

빨리 도망가자.

자신이 뭘 했는지 몸으로 알아

선생님 말씀이 부정되는

세 가지 사례를 접한 장자.

사흘 동안 이어진 장자의 고민 :

제자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느낌으로 깨우친 후 인저에게 이야기한 장자,

정리되지 않은 이야기를 격의없이 이야기할 정도로

가까웠던 장자와 인저.

마음이 편하지 않은 이유?

그동안 잘못 가르쳐온 것,

범죄자처럼 뛰쳐나온 자신의 모습에 대한 부끄러움.

당당하게 살고 싶었던 장자는

왜 그런 상황을 자초했을까에 대한 생각으로 불편,

사흘 후에야 현실을 받아들인 장자.

완전히 깨우치지 못했던 장자의 창피함 :

제후와 맞서는 기개를 가지고 살았는데

사냥터에서 도망친 자신이 싫은 것.

장자의 위대함 : 과감히 도망갈 수 있는 것,

창피해하면서 그늘을 지키다 죽을 수 있으므로.

도망가는 것이 아닌 죽는 것이 창피한 것.

충분히 버틸 수 있는데도 도망가는 건 나쁘지만

못 버티는 곳에선 버텨서 안됨.

허심(자의식을 버림)을 통해 도망가는 것을

창피해하지 않는 변화된 장자의 모습.

단순히 욕망을 버리는게 아니라

네 삶을 최선으로 살아가되,

네 자존심과 체면 때문에 죽지 말라.

어느 사회에 들어가면

곧바로 몰입하기보다 사태를 파악하고

느낌이 안좋으면 빨리 도망가라!

장자의 메시지 :

그늘을 욕망하는 매미가 되대

너를 노리는 상황이면 빨리 나오라,

유(떠날 수 있는 힘).

집중했던 것에 몰입하느라

죽는 인간이 아니어야.

쓸데없이 죽진 않지만

원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은 장자의 제자들.

모든 짐승이 그러하듯 잡히지 않고

뛰노는 것이 중요,

체면을 차리다 죽어가는 인간들.

장자의 말을 들었다면

전국시대 사람들은

쓸데 없는 전쟁임을 알고 모두 탈영했을 것.

천하를 바꾸지 못할 바에야

험난함을 각오하며 도망가자. 


 

존버에는 반드시 단서가 붙어야 한다.

단, 자신의 영혼이 죽지 않는 한.

싸움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자신과의 싸움과 세상과의 싸움.

자신과의 싸움에서 항상 점검해야 할 것은

몸은 힘들지언정 영혼은 견딜만한가이고

세상과의 싸움에서 점검해야 할 것은

내 주변 세상이 나를 힘들게 할 때

나를 연단시키는 방향인가,

아니면 나를 파괴하는 방향인가.

자신과의 싸움에서

내 영혼이 파괴되면 아무 소용 없고

세상과의 싸움에서

나 자신이 파괴되면 아무 소용 없다.

물론, 어느 방향에서의 싸움에서든

존버할 것인가 도망갈 것인가를 잘 판단하기 위해선

장자와 같이 민감한 감각을 갖추고

뛰어난 메타인지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이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라고 하겠다.

다행스럽게도 나도 어느 정도

민감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장자의 가르침을 모를 때에도

의대와 공대를 두고

의대로 가면 행복할 것 같지 않아 공대를 택했고

회사에서 관리자의 길, 실무자의 길 가운데

실무자의 길을 택해서

영혼은 죽지 않는 길을 가고 있기 때문에.

물론, 고위직이 되더라도

영혼이 죽지 않을수 있는 길이 있을 수 있고

그러면 더욱 좋은 것이다.

어느 집단에서 실무를 하는 가운데도

항상 체크하는 것은

그 일이 재미있는가,

내 경력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가이다.

두 조건 가운데 하나라도 만족한다면

최선을 다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민폐가 되지 않을만큼의

리소스만 최소한으로 투입하여

쓸데없는 목표에

나를 매몰시키지 않고

호시탐탐 떠날 기회만을 찾다가

그 기회가 찾아오면 미련없이 떠났다.

이게 바로 유목민의 정신인 것이다.

 

요즈음 명문대에서조차

공대를 자퇴하고

의대로 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의대의 부귀영화에만 눈이 멀어

그 길이 자신에게 맞는지

깊이 생각하고 가는건지 모르겠다.

의대, 법대에 가서 부귀영화를 얻을지언정

그 길이 맞지 않아

각자 본연의 고귀함을 잃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