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

강신주 장자수업 [26강. 여희이야기 : 깨기 힘든 악몽]

dirigent21 2024. 3. 10. 23:17

장자는 이야기꾼,

3~400백년에 걸쳐 여러 사람이

만든 이야기라서 수준이 천차만별.

장자의 메시지 : 너는 충분히 가치있어.

시선을 조금만 넓히면 알게 될 거야.

제물론 : 단순히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을 잡아주는 역할.

-제물론

내가 삶을 즐거워하는 것이

하나의 착각이 아니라는 걸

어떻게 알겠는가?

내가 죽음을 싫어하는 것이

마치 젊어서 고향을 잃고도

되돌아갈 줄 모르는 것이 아님을
어떻게 알겠는가?

여희는 애라는 곳을 지키던

어느 여족의 딸이었다.

진나라가 처음 그녀를 잡아 데리고 왔을 때

눈물이 그녀의 옷을 적실 정도였다.

진의 궁궐에 이르러

진왕과 침상을 같이하고

맛있는 고기를 먹자

그녀는 자신의 눈물을 후회했다.

죽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살기를 바랬음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알겠는가?

꿈에서 잔치를 연 사람이

아침에 깨서 울부짖으며 눈물을 흘리고,

꿈에서 울부짖으며 눈물을 흘리던 사람이

아침에 깨서 새벽에 사냥을 즐긴다.

꿈을 꾸는 동안 우리는

자신이 꿈꾸고 있음을 알지 못하고

꿈꾸는 가운데 꿈속의 꿈을 해몽하기도 한다.

우리는 깨어나서야

자신이 꿈꾸고 있었음을 안다.

단지 크게 깨어날 때만

우리는 큰 꿈을 꾸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어리석은 자들은

자신이 깨어 있다 생각하고 분명하게 아는 듯

"왕이구나! 목축민이구나!"라 하는데

고루하기만 하구나!


죽는 것은 불행이 아니다?

여희 : 전설적인 미녀.

진정 지인(지극한 사람,

인간에 이른러 인간의 품격을 가진 사람)은

이해에도 사생에도 동요하지 않는다.

지인에 이르기는 무척 어려우나

지인이 되면 어떤 강력한 것도 우리를 지배하지 못한다.

지배의 최종방법은 '목 조르기'.

갑질을 참는 이유 : 참지 못했을 때의 불이익.

동양의 전통 개념인 관문,

관문 가운데 맨 바깥쪽의 사생관,

사생관만 넘으면 아무도 건드리지 못함.

인문학적 인간 :

작고 약하지만 품격을 지키는 것은 다른 문제.

우리의 품격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

장자적 이야기의 특징 : 꿈 모티브, 공자 등장.

장자에게 꿈이란? 착각에 빠져 있는 상태,

방법론적 유아론(이건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어).

방법론적 유아론자 : "이 건 내 꿈, 나만의 생각이 아닐까?",

"나와 같이 여행해서 행복해도 나만 행복한 게 아닐까?"

유아론자 : "내 생각대로 세계는 움직인다",

"나와 같이 여행하면 내가 행복하면 같

이 여행하는 타인도 행복할거야".

인문학을 공부하더라도

방법론적 유아론자가 안되면 소용 없음(바닷새 이야기),

배움과 관계 없는 방법론적 유아론.

장자의 입장 : 지배구조는 만악의 기원,

나를 지배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떠나야 한다.

장자가 강조한 자유 :

떠날 수 있는 힘, 떠날 수 있는 곳에 머물러라,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떠나지 않는 것이 가치 있는 일.

유목민의 특징 : 누구도 못 쫓아오게 사막으로 들어감,

죽음을 각오하고 사막으로 들어가는 인간의 품격.

침입을 막는 성벽의 또다른 목적 :

넘어서 도망가지 못하게 막는 것.

북쪽의 유목민에게는 만리장성 안이 야만의 세계,

어떻게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지?

해묵은 국가주의가 좋은가를

정면으로 사유하게 하는 장자의 가르침 :

우리는 좋은 사회에 살고 있는가?

오르도스(Ordos) : 유목민의 본거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황하에서의 모자 모양 지역.

유목민을 쫓아내고 만든 초기 장성.

장자가 진나라(춘추시대) 비유를 든 이유 :

유목 사회와 중국의 경계선에 있던 나라이므로,

춘추시대를 생각해봐,

그들은 왕이 지배하려고 하면

말 타고 떠났던 사람들이야.

진나라가 한/위/조나라로 쪼개지며 시작된 전국 시대.

초원 전체가 집이면서 집이 아니기도 한 유목 사회,

어디든 갈 수 있지만 천막 칠 수 있을만큼만 머물기 때문.

산은 동물의 것이나 자기가 있을 곳에만 있는 동물들.

사마천 사기에서 묘사한 유목 사회 :

군신 간의 위계가 서있지 않은 곳,

부족장이 맘에 들지 않으면 쉽께 떠나므로

부족장과 평민과의 느슨한 관계.

조선시대에서 화전민에게서는 걷기 힘든 세금.

메소포타미아 문명(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남쪽과 북쪽은 사막 지역.

4대 문명 지역의 특징 : 북쪽으로 가면 나타나는 척박한 땅.

농사짓기 시작하면 정착할 수 밖에.

좋은 땅으로 가는 것이 아닌 장자의 소요유,

좋지 않음에도 인간으로서의 품격은 가지고 산다.

평균적으로 모여 살며 착취당하는 가운데

각종 전염병에 죽어간 농민보다 훨씬 오래 산 유목민.

자유란? 도망갈 수 있는 것.

장자의 악몽 : 지배, 피지배 구별.

장자의 의도 : 춘추시대 진나라로 -> 진나라에서 바깥 세계로,

목축민을 언급함으로써

떠날 수 있던 전통을 연상시키려는 의도.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더욱 척박한 곳으로 가야만

국가지배구조를 벗어날 수 있는 슬픈 현실,

숨기 어려워진 세상, 너무나 멀어진 관문.

인생의 가장 중요한 로드맵이 되어줄 여희 이야기,

지금 필요한 것은

주변 어딘가의 사막을 찾아낼 수 있는 안목. 


 

성경을 보면 이삭의 이야기가 나온다.

생각해보면 이삭은 장자가 얘기한

떠날 수 있는 자유를 가진

전형적인 유목민이었던 것 같다.

우물을 파서 정착하려고 했는데

빌런이 오면 양보를 거듭하는 가운데 계속 옮기다

7번째에 이르러서야 브엘세바에 정착하게 된다.

그런데, 에서를 속인 야곱부터

목축민이었던 유대인들이

국가주의를 꿈꾸는 비극의 싹이 시작되는 것 같다.

대만을 여행하면서 도교사원에 들어간 적 있다.

도가 사상을 변형시켜

나름 축복과 공포 장사를 하는 면에서

불교, 기독교와 별반 달라보이지 않았다.

장자는 떠날 수 있는 자유를 얘기한

가장 위대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인데

이 사람을 교묘히 이용해서

죽음의 관문을 넘어서까지도

막연한 공포심으로 장사를 하는건 참으로 유감이다.

물론, 도교와 기독교의 결정적인 차이는

도교에서의 저 세상은

이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반해

기독교의 경우 플라톤적 이데아와 같이

이 세상은 불완전하여

언젠가 쓸어버려야 할 대상이고

저 세상은 완전체로서

이 세상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하는데 있다.

아무튼 도교 역시 인간의 탐욕과 공포를

교묘히 이용한 장사치에 불과하니

장자가 얼마나 안타까워할까란 생각이 든다.

물론, 예수 역시 정말로 있었다면

자신의 뜻과 너무나도 다른 현재의 기독교를 보면서

통탄을 금할길 없겠으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만큼

무서운 사람은 없다.

그런데, 비굴하게 살면서도

누릴 수 있는 것이 많을수록

죽음에 연연하지 않는

진정 무서운 사람이 급감하는 것 같다.

지배자를 꼼짝못하게 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꼼짝할 수 없음에도 그러하지 못한다.

요즘은 죽음까지 갈 필요도 없다.

한국 사회에선 돈만큼

사람을 꼼짝못하게 하는 것이 없다.

그러니, 이렇게나 사회가 척박해져서

먹을 것이 천지인데도

정신은 피폐해지는 것 아니겠는가.

나 역시 아직까지도

돈이란 거미줄에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어느 정도가 되어야

이해와 사생에 연연하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장자시대와는 달리

도망갈곳이 점점 사라지는 가운데

어딘가의 사막이란?

돈을 잘굴려서 겸제적 자유를 누리든가

아니면, 극한의 절약으로

자본주의의 종이 되지 않든가,

두 길의 공통분모는 놀랍게도 근검절약이다.

경제적 자유를 누리는 찐부자들은

소비통제가 기본이라고 한목소리를 낸다.

돈이 없다 징징대면서 맨날 비싼 커피먹고

남들 입고 먹고 사는거는 다 누려야하는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속박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어

자유를 향한 도망에 결코 동참할 수 없다.

자본주의 노예가 되지 않고

근검절약을 하는 가운데

정신적인 부를 찾는 것이야말로

장자가 얘기하는

언제든 도망갈 수 있는 삶의 첫단추임을

명심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