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싸돌아다님)하라. 당신의 삶을.
빈 배에 타고 있는 사람을 느껴라.
-산목
배를 붙여서 황하를 건너가고 있는데
빈 배가 떠내려와 부딪힌다면
아무리 성격이 급한 사람이라도 화를 내진 않는다.
그런데, 그 배에 누군가 타고 있다면,
저리 비키라고 소리칠 것이다.
첫 번째, 두 번째 소리를 질렀는데도 듣지 못했으면
세 번째 소리를 지를 때는 험악한 소리가 뒤따를 것이다.
전과 달리 지금은 빈배가 아니고
누군가 있기 때문에 지금은 화를 내고 있다.
사람이 자기를 바우고 세상에서 노닐 수 있다면,
그 누가 그를 해칠 수 있겠는가!
허(비움)기 <-> 실(열매, 채움)기, 어떻게 비울 것인가.
배를 붙여(방주) 황하를 건넌다 : 정조가 수원화성에 갈 때
한강에 배를 이어 부교를 놓는 것을 상상
권력자는 배멀미를 하는 등
평범함을 보이지 않아야 하므로 배로 다리를 만듦.
강한 자의식 == 강한 소유의식 (내 배, 내 돈, 내 권력)
'나'의 것을 건드릴 때 화가 나게 되어 있음.
인간은 나보다 먼저 사라지는 것들만 가질 수 있다 : 내 땅?
배가 와서 부딪힘 : 권력, 소유에 대한 침범.
가진 것의 가치가 올라갈수록 갈등 심화
-> 가난한 사람에게 복이 있다
(소유에 의한 갈등/스트레스 요인이 없어서).
권력자에게 있어 강은 빨리 건너야할 대상
-> 내 배라는 소유 의식과 빨리 건너야하는 목적 의식.
빈배에 탄 사람 : 세상의 것을 내 것이라고 하지 않고
강은 지나가는 곳이 아닌, 소요유(목적 없이 노는)의 대상
즉, 소유와 목적 의식이 없는 사람.
"노동은 수단과 목적 분리, 놀이는 수단과 목적이 같다" :
호모루덴스(놀이하는 인간 요한 하위징어 저서)
등산의 목적이 정상 정복이냐, 정상에 연연하지 않고
경치를 즐기다 중간에서 하산 -> 전자는 노동, 후자는 놀이
비움 : 빈 배에 타서 소유의식과 목적의식을 줄여나가야 한다.
뚜렷한 목적의식을 권하는 사회.
중국 고전 일화 : 금붙이를 지니고 배에 탄 사람이
사공으로 위장한 해적의 배를 탔는데
목숨의 위협을 느끼자 금붙이를 모조리
강에 던져 목숨을 구함
-> 소유욕에 사로잡혀 목숨을 잃지 말라.
순수한 어린 아이처럼 소유의식과 목적의식이 없으면
갈등과 위협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다.
그렇다고 장자의 가르침을 왜곡하여 백수생활을 정당화하진 말라.
황하강을 건너는 것은 삶의 여정이라면
목적의식에 사로잡혀 빨리 건너지말고 천천히 재밌게 즐겨라.
지금은 내 인생 어느 때보다 안락하고 편안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뭔가 하나를 크게 잃어버린 것 같다.
20대의 그 순수한 열정과 돈이 없어도 힘든 와중에도
나를 동여매고 이끌었던 그 에너지와 행복은 어디로 갔을까?
단순히, 젊음의 열정이었을까?
아니면 소유의식과 목적의식으로부터 자유로웠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굳이 애써 출가를 하는 등,
쌓아올린 걸 일부러 허물 필요는 없다.
이젠 이쯤하면 되었으니 남은 반평생 동안 어떻게 하면
내가 잃어버린 것을 찾을 것인가 생각해봐야 하겠다.
'동양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신주 장자수업[5강. 윤편 이야기] (0) | 2024.03.09 |
---|---|
강신주 장자수업[4강. 대붕 이야기] (0) | 2024.03.09 |
강신주 장자수업[2강. 바닷새 이야기] (0) | 2024.03.09 |
강신주 장자수업[1강. 황천 이야기] (2) | 2024.03.09 |
강신주 장자수업[들어가며] (1) | 2024.03.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