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

강신주 장자수업[3강. 빈 배 이야기]

dirigent21 2024. 3. 9. 20:32

소요(싸돌아다님)하라. 당신의 삶을.

빈 배에 타고 있는 사람을 느껴라.

-산목

배를 붙여서 황하를 건너가고 있는데

빈 배가 떠내려와 부딪힌다면

아무리 성격이 급한 사람이라도 화를 내진 않는다.

그런데, 그 배에 누군가 타고 있다면,

저리 비키라고 소리칠 것이다.

첫 번째, 두 번째 소리를 질렀는데도 듣지 못했으면

세 번째 소리를 지를 때는 험악한 소리가 뒤따를 것이다.

전과 달리 지금은 빈배가 아니고

누군가 있기 때문에 지금은 화를 내고 있다.

 

사람이 자기를 바우고 세상에서 노닐 수 있다면,

그 누가 그를 해칠 수 있겠는가!


허(비움)기 <-> 실(열매, 채움)기, 어떻게 비울 것인가.

배를 붙여(방주) 황하를 건넌다 : 정조가 수원화성에 갈 때

한강에 배를 이어 부교를 놓는 것을 상상

권력자는 배멀미를 하는 등

평범함을 보이지 않아야 하므로 배로 다리를 만듦.

강한 자의식 == 강한 소유의식 (내 배, 내 돈, 내 권력)

'나'의 것을 건드릴 때 화가 나게 되어 있음.

인간은 나보다 먼저 사라지는 것들만 가질 수 있다 : 내 땅?

배가 와서 부딪힘 : 권력, 소유에 대한 침범.

가진 것의 가치가 올라갈수록 갈등 심화

-> 가난한 사람에게 복이 있다

(소유에 의한 갈등/스트레스 요인이 없어서).

권력자에게 있어 강은 빨리 건너야할 대상

-> 내 배라는 소유 의식과 빨리 건너야하는 목적 의식.

빈배에 탄 사람 : 세상의 것을 내 것이라고 하지 않고

강은 지나가는 곳이 아닌, 소요유(목적 없이 노는)의 대상

즉, 소유와 목적 의식이 없는 사람.

"노동은 수단과 목적 분리, 놀이는 수단과 목적이 같다" :

호모루덴스(놀이하는 인간 요한 하위징어 저서)

등산의 목적이 정상 정복이냐, 정상에 연연하지 않고

경치를 즐기다 중간에서 하산 -> 전자는 노동, 후자는 놀이

비움 : 빈 배에 타서 소유의식과 목적의식을 줄여나가야 한다.

뚜렷한 목적의식을 권하는 사회.

중국 고전 일화 : 금붙이를 지니고 배에 탄 사람이

사공으로 위장한 해적의 배를 탔는데

목숨의 위협을 느끼자 금붙이를 모조리

강에 던져 목숨을 구함

-> 소유욕에 사로잡혀 목숨을 잃지 말라.

순수한 어린 아이처럼 소유의식과 목적의식이 없으면

갈등과 위협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다.

그렇다고 장자의 가르침을 왜곡하여 백수생활을 정당화하진 말라.

황하강을 건너는 것은 삶의 여정이라면

목적의식에 사로잡혀 빨리 건너지말고 천천히 재밌게 즐겨라.


지금은 내 인생 어느 때보다 안락하고 편안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뭔가 하나를 크게 잃어버린 것 같다.

20대의 그 순수한 열정과 돈이 없어도 힘든 와중에도

나를 동여매고 이끌었던 그 에너지와 행복은 어디로 갔을까?

단순히, 젊음의 열정이었을까?

아니면 소유의식과 목적의식으로부터 자유로웠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굳이 애써 출가를 하는 등,

쌓아올린 걸 일부러 허물 필요는 없다.

이젠 이쯤하면 되었으니 남은 반평생 동안 어떻게 하면

내가 잃어버린 것을 찾을 것인가 생각해봐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