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비극을 막는 방법
장자에서 유일하게 두 번 반복되는 이야기
-지락
또한 너만 들어보지 못했는가?(간접인용)
옛날 바닷새가 노나라 서울 밖에 날아와 앉았다.
노나라 임금은 이 새를 친히 종묘 안으로 데려와
술을 권하고, 구소의 음악을 연주하며
소,돼지,양을 잡아 대접했다.
그러나 새는 어리둥절해하고 슬퍼할 뿐,
고기 한 점, 술 한 잔 마시지 않은채
사흘 만에 죽어버렸다.
이는 자기와 같은 사람을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른 것이지,
새를 기르는 방법으로 기르지 않은 것이다.
사랑은 단순한 축복이 아니라 비극성을 갖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졌을 때애야 진정여부를 깨닫는 감정.
바뤼흐 스피노자(데카르트의 이원론을 반대하고
일원론 주장한 네덜란드 철학자) 철학과 장자 철학은 상보적 관계
에티카(스피노자 대표 저서, 윤리학) : 기쁨은 지키고 슬픔은 거부하라
코나투스(conatus, 가벼워지고 경쾌해지는 느낌 == 기쁨) <-> 슬픔
퇴근길(기쁨) <-> 시댁가는 길(슬픔),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기쁨도 슬픔 등 감정이 없다면? : 마주치지 않은 것, 심지어 사람조차
스피노자적 사랑 : 대상을 가진 기쁨이 사랑.
바닷새가 죽기까지 걸린 3일 : 사랑의 비극을 막을 수 있었던 기간.
사랑에는 대상이 뭘 좋아하는지 알고자하는 의지도 포함.
일단 잡고난 후, 3일 동안 사랑의
대상이 진정 뭘 원하는지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음.
떠날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하지 않고
상대방의 자유를 없애면 그 사람을 사랑하기 힘들다.
(이미 결혼한 배우자, 부모자식간 등)
바닷새를 잡은 순간부터 사랑은 증발했을지도 모름.
자유롭지 않은 사람은 사랑받지 못한다.
장자가 말하는 '자유' : 떠날 수 있는 힘.
원효대사의 가르침 : 내가 생각한 선이
타인에게 선이 아닐 수 있으므로
함부로 자신의 선을 행하지 말라.
아버지 : "타인에게 선을 행하지 말라"(유언)
자식 : "그럼 악을 행할까요?"
아버지 : "타인을 아껴서 선도 행하지 않는데
악을 행해서 쓰겠느냐?"
내가 생각한 선이 상대에게는
악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계속 알아가려는 마음가짐이 중요.
사랑한다고 해서 내 기준으로
함부로 선을 행하지 말고
세밀히 상대를 지속적으로 알아가면서 행하라.
노나라 임금, 바닷새의 입장을 모두 고려하면
사랑은 언제든 떠날 수 있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기쁨이 되는 관계.
선녀와 나뭇꾼의 이야기는 나쁜 형태의 사랑
사랑의 조건 : 나와 상대방의 자유 존중
논어에 "기소불욕 물시어인"
(내가 싫어하는 것은 남에게 행하지 말라)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장자의 이야기보다
한참 아래 수준의 말이라 생각한다.
기준이 상대방이 아닌 나이고
내가 싫어하는 것을 상대방이
좋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가깝게 고친다면
"인소불욕 물시어인"으로 해야할 것이다.
(강신주 선생님의 책을 보면 똑같은 이야기가 나와 놀랐다.
이 책을 보기전부터 이 말을 쓰는게 맞다고 생각했었는데)
적어도 남이 싫어하는 짓을 함으로 인한
비극은 막을 수 있으므로
또한, "학이시습지 불역역호아"
(배우고 익히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란 말도 있는데
누구나 그런 것은 아니고 공부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나 그런거니
함부로 공부를 강요해선 안된다.
공부에 타고난 재능이 없던
사도세자에게 영조가 공부를 강요해서
사도세자가 광인이 되어
결국 애비가 자식을 뒤주에
가둬죽이는 희대의 비극이 일어났으니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강요하는 댓가가 얼마나 큰가.
또한, 결혼 이후 수십년간 돈을 아낀다는 명분하에 수도와 전기 사용료를 최소화하고자
웬만하면 불을 안켜고 물도 최소한으로 썼었는데
참다못한 아내가 해맑은 표정을 싹 거두고 결혼 20년차에 진지하게 얘기했다.
너무 괴로우니 더 이상 그러지 말라고.
그 순간, 이 하찮은 이유가 이혼 사유가 될 수 있단 생각이 들었다.
내 나름대로 미래를 설계하며 풍족한 노후를 위해 한 푼이라도 아껴야겠다는
선한 의도가 상대방에겐 지속적인 스트레스로 작용했구나란 걸 알게되었다.
그 이후, 아내가 불을 끄지 않고 물을 틀어 놓으면
꺼라, 잠가라 잔소리 하지 않고 적절한 때에 내가 끄거나 잠그면서
스트레스를 주지 않도록 했다.
그 이후, 적어도 이 부분에 있어서 더 이상 충돌할 일이 생기지 않았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사랑의 폭력이 자행되고 있다.
예체능 내지 손재주만 재능이 타고나야하는 줄 알고 있는데
공부도 엄연히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잘한다.
그럼에도 공부에 타고난 재능이 없는 아이에게
푸아그라를 위해 희생되는 거위에게 사료를 꾹꾹 눌러 담듯이
사교육과 공부를 강요하는 미친 사회.
난 운 좋게 공부 재능만 타고나서 모범생 칭찬을 들어가며
학창시절까진 순조롭게 지냈으나 사회에 나와보니
공부 재능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란 걸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집단주의자들은 집단의 번영과 화목이라는 이름하에
구성원들이 뭘 싫어하고 좋아하는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즐기거나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강요하면서
생색은 있는대로 낸다.
그럴수록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은
그 집단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고
이를 갈며 떠날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한국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과 자유에 대한 구속이 최강인 나라 중 하나이다.
출산율 세계 최하위라는 오명은 어쩌면 그 결과일 수 있다.
장자의 가르침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한 시절이나
불행히도 오늘 이 시각에도 부지런히 역행하고 있으니
서글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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