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강신주 무문관 : 주인공으로 살기 [39강]

dirigent21 2024. 11. 10. 11:39

두카(dukkha) : 고(고통),
삶은 고통의 과정.
살아있는 존재만 행복을 느끼나 
그 전제는 고통을 느끼는 것.
자비란 행복을 느끼게 하기 보다
고통을 느끼게 하지 않겠다는 것.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그 사람의 고통을 완화시켜 주는 것.
행복이란 고통이 잠시 없어진 것.
일체개고 : 무상과 무아를 깨닫지 못하고
영생에 집착하여 온갖 고통에 빠져 있음.


26칙 이승권렴
(두 명의 스님이 발을 말아 걸어 올린 것)
점심 공양 전에 스님들이 법당에 들어와 앉자
청량의 대법안 화상은 손으로 발을 가리켰다.
그 때 두 스님이 함께 발을 걷어 올렸다.
그러자 대법안 화상이 말하길,
"한 사람은 옳지만 다른 한 사람은 그르다."


대법안 화상은 발 너머 보이는 
다른 물체를 가리켰을 수도,
두 스님 때문에 대법안 화상이 뜻이
발을 걷어 올리라는 뜻으로 고정.
마지막 엔딩으로 앞의 모든 스토리에
의미부여가 되거나 포장되기도.
원래 스토리의 뒷부분부터 의미부여를 하면 안됨,
악하게 살았는데 마지막이 선하다고 해서
악하게 산 것이 선이 될 수 없음.
대승불교 : 
중관불교(나가르주나, 용수) - 무아, 공.
유식불교(바수반두, 세친) - 모든 차별 현상은
오직 인식하는 마음 작용에 지나지 않음.
유식불교의 3성 : 
변계소집성(imaginary) - 과거 경험에 집착하여
온갖 분별로써 마음속으로 지어낸 
허구적 대상 내지 차별상,
의타기성(dependent) - 과거 경험을 생각하여
온갖 분별을 잇달아 일으키는 인식 작용,
원성실성(consummate) - 변계소집성의 반대,
분별과 망상이 소멸된 상태에서의 드러나는
그대로의 청정한 모습.
번데기가 좋아서 맛있다고 느끼는 것 == 변계소집성,
집착의 세계.
과거 경험을 토대로 번데기가 맛있다고 느끼는 것
 == 의타기성(알라야(선입견)에 의한),
서로의 과거 기억이 달라 같은 대상도 다르게 평가.
번데기를 번데기 자체로 보는 것 == 원성실성,
알라야가 없어지면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본다.
동일한 경험으로 새로운 알라야를 쌓으면 
갈등이 해소되고 알라야까지 사라지면 원성실성 경지.
사랑받는 사람의 세계와
멸시받는 사람의 세계는 다르다.
일체유심조 : 
세상 모든 일은 인간의 마음이 들어서 지음.
마르셀 푸르스트, 한 생명체가 태어나면
하나의 세계가 열리는 것.
세계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믿음이
소유욕과 탐욕을 야기.
발이 내려진 상태에서 보일 수 있는 파란 하늘,
발을 걷어 올려서 보이는 파란 하늘 : 원성실성
파란 하늘을 봐야 온전한 파란 하늘을 보기 위해
발을 올릴 수 있음.
발을 걷기 위해 올리는 사람과
파란하늘을 보기 위해 걷는 사람은 다르다.
한 사람은 단순히 발을 걷었고
다른 한 사람은 발을 걷으면서 파란 하늘을 봤을수도.


경험이 쌓일수록 대처능력은 좋아지나
반대로 온갖 편견이 나를 사로잡게 된다.
따라서 경험을 쌓아갈수록
그 경험에 의한 내 인식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를 늘 의심하고
잘못된 편견은 고쳐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간혹 자신의 풍부한 경험을 토대로
모든 것을 알거나 해결할 것 같은 사람을
만날수 있는데 그 때
그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들어선 안된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선
그 사람의 말을 따를지언정
언젠가 자신의 경험이 쌓이면
그 사람의 말에서 자신과 맞지 않는 그 무엇을
반드시 확인해 나가야 한다.
가장 이성적인 이공학적 학문 세계에서조차
온갖 편견으로 각 학파가 대립하는 것을 보면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 역시 
온갖 편견이 쓰레기더미처럼 쌓여있으니
남은 일생에선 편견의 쓰레기를
치워나가야 할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MKt9WtNwUB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