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강신주 무문관 : 주인공으로 살기 [36강]

dirigent21 2024. 10. 6. 13:11

42칙 여자출정

옛날 문수보살이 
여러 부처들이 모인 곳에 이르렀을 때
마침 여러 부처들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오직 한 명의 여인만이
석가모니 자리 가까이에서
삼매에 들어 있었다.
그러자 문수는 세존에게 묻기를,
문수 : "어찌하여 저 여인은 
부처님 자리에 가까이할 수 있고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까?"
세존 : "이 여자를 깨워 

삼매의 경지에서 나오게 한 다음
네가 직접 물어보도록 하라!"
문수는 여인의 주변을 세 번 돌고서
손가락을 한 번 탁 튕기고는
여인을 범천에게 맡겨 

그의 신통력을 다하여
깨우려고 했으나 깨우지 못했다.
세존 : "설령 수백 수천의 문수가 있어도
이 여자를 삼매의 경지에서 

나오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래로 내려가 12억의
갠지스강 모래알 수만큼

많은 국토들을 지나면
이 여자를 삼매에서 꺼낼 수 있는
망명보살이 있을 것이다."
그 순간 망명대사가 땅에서 솟아 나와
세존을 경배하였다.
세존은 망명에게 여인을 

삼매로부터 꺼내라 명했다.
망명이 여인 앞에 이르러 

손가락을 한 번 튕기자,
여인은 바로 삼매의 경지에서 빠져나왔다.


계정혜 : 불교에서 깨달음에 이르려는 자가 
반드시 닦아야 할 세 가지 수행,
계 : 계율을 지켜 실천,
정 : 마음을 집중, 통일시켜 산만하지 않음,
혜 : 미혹을 끊고 진리를 주시.
남존여비를 상징하는 문수보살, 망명보살.
범천 : 색계의 초선천에 속하는 
가장 위 하늘을 다스리는 왕.
문수 : 글이 탁월함, 불립문자의 반대편.
망명 : 밝음이 없어짐.
명 : 구별하고 거리를 둠.
참선은 스스로 주인 되는 길로 가는 것.
대지도론 : 대품반야경의 주석서,
인도 대승불교의 용수가 저술한 논서.
교종 경전인 대지도론을 화두로 쓰기 시작한 선종.
Soma(한 비구니) Sutta(경전),
자신이 여자라는 이유로 조종하는 악마에게
게송을 읊음,
참선에 들어 욕망과 고통을
가라앉히기 시작한 쏘마,
"나는 여자다 
나는 남자다 
나는 누구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마라(악마)라고 할 수 있다네",
게송을 읊자마자 도망간 악마 빠삐만.
출신성분과 성별을 구분 않고
모두 제자로 받아들인 싯타르타.
관세음 : '듣다'보다 더 강한 의미의 '본다'.
하늘에 있는 문수보살과 범천은 자리의 상징,
땅에 있는 망명보살은 타인의 고통을 듣는 입장,
따라서 깨울 수 있음.
주인이 됐으면 타인은 모두 손님이란 것 앎.
한용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도 손님으로 신음하고 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 :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주인이 되고 깨달으면
타인들이 손님으로 사는 것이 뼈저리게 느껴짐.
나가르주나, 내가 없는 데 어찌 내 것이 있겠는가?


자유와 평등,
참으로 말하기엔 너무나 쉬운 주제다.
그런데, 이 세상에 
과연 순도 100%의 
자유와 평등이 있거나 실현 될 수 있을까?
나는 이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결단코 없다고.
제아무리 많은 권력과 재물이 있어도
어느 정도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고
부처의 경지에 이르러도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공양이란 이름하에
빌어먹는건 피할 수 없었으니
진정한 자유는 얻을 수 없었다고 본다.
그리고, 자연계의 법칙은
냉정하게 바라보면 약육강식이다.
다만, 인간됨의 교육 내지
좋은 평판을 위해
대부분은 약자를 응원하는 것처럼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솔로 등 각종 데이트 프로그램을 볼 때
가장 불편한 것은 소위 매너남의 행동거지가
은근히 강요되는 것이다.
남녀가 평등해야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남녀가 식사자리에 갔을 때
의자를 빼주거나 차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그 남자는 예절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는
시선들이 있다.
손발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해를 하겠다.
그런데, 멀쩡히 사지가 달려있는 어른을 위해
왜 의자를 빼주고 차 문을 열어주어야 하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매너가 없다는 
취급을 받는 것인가?

얼마전 김창옥쇼3에서 이걸 보고
생각에 잠긴 적이 있다.
우선, 7살 연상의 이혼녀와
25살의 앳된 청년이 과연 평등한 것인가?
나는 비교적 옛날 사람이어서인지 몰라도
상대적으로 이혼은 흠결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따라서, 미혼과 이혼은 같다고 볼 수 없어
결코 평등한 관계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공개석상에선 착한 척하고
이상한 사람 취급 당하지 않기 위해
나도 김창옥 선생처럼 멋지게 말할 수 있다.
이혼이 무슨 문제냐고,
남들이 뭐라하건 말건

그대들의 멋진 인생을 살라고.
다만, 남의 일에 대해 참지 못하고
주제 넘게 함부로 막말을 해대는 것이 문제이다.
나는 이 영상 속의 25살 남자가 현재로선
어쩌다 7살 연상의 이혼녀에게 낚였는지 모르겠고
언젠가 시간이 지나 철이 들면
후회할 날이 올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이 25살 청년이 철딱서니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지금은 정확히 알 수 없고
오랜 세월이 지나면 알게 될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7살 연상의
이혼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다면
내가 틀린 것이고 그렇게 되길 바랄 뿐이다.
만약, 내 자식이 7살 연상의 이혼녀와
결혼하겠다고 찾아온다면
일단은 나는 연을 끊고
정말로 신중한 선택이었는지
확인되기 전까진
한동안 그들을 보지 않을 것 같다.
물론, 내겐 자식이 없기에
이런 불미스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0%이다.
다만, 그들 인생의 주인공은 내가 아닌 그대들이니
지팔지꼰하든 말든 말리진 않을 것 같다.
다만, 나도 불편하지 않을 권리가 있기에
한동안 연을 끊을 뿐이다.
누구에게나 생각의 자유는 있고
아무리 악한 생각이라도
생각을 하는 것까지 욕할 수는 없다.
다만, 비난받아야 할 것은
자신의 생각을 함부로 남에게 강요하거나
과감하게 실현해서
남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svFyph__A

 

https://www.youtube.com/watch?v=JyX-45UZDa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