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강신주 무문관 : 주인공으로 살기 [28강]

dirigent21 2024. 8. 28. 10:40

'나'를 통해 세상을 느껴야
죽으면 자신이 느끼던 그 세계가 있고
자신만 빠져나온다 생각하지만
죽는 순간 그 세계는 사라짐,
자신이기 때문에 그 세계가 존재했다는 것을 모름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부르스트,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한 생명이 태어나면 하나의 세계가 열린다"
나는 이렇게 느껴 이렇게 보인다는 단어를 넣어보면
나의 소중함을 알 수 있음.
내가 있으니 이렇게 세계를 느낌,
내가 느끼는 세계를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음.
같은 공간이라도 각각 느끼는 세계는 다름.
현량, 비량 : '나' 자신이 중요.
성언량 : 성자들의 가르침과 경전에 의한 지식.
객관적 세계는 존재하지 않음, 어떤 주관이냐가 중요.
어떤 사람이 느끼는 세계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인정하게 됨.


무문관 48칙 건봉일로
한 스님이, "세게의 모든 부처들은
'하나의 길(일로)'로 열반문에 이른다고 하지만
도대체 그 일로는 어디에 있습니까?"
건봉 화상은 주장자를 들어
공중에 하나의 선을 긋고 말하길, "여기".
그 후 그 스님은 운문에게 
이 문답에 대한 가르침을 청했다.
그러자 운문은 부채를 들고 말하길,
"이 부채가 뛰어 올라 33천에까지 올라가
제석천의 콧구멍을 찌르고
동해의 잉어를 한 방 먹이면
물동이가 기울어지듯 큰 비가 올 것이다."


제불 :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
능엄경 : 한국불교 근본경전 중 하나로서 총 10권,
'금강경', '원각경', '대승기신론'과 함께
불교 전문강원의 사교과 과목으로 채택.
제석천 : 불법과 이에 귀의하는 자를 수호하며
아수라의 군대를 정벌한다고 하는 하늘의 임금.
도를 아십니까와 같이 
어딘가 일로가 있다고 생각하는게 문제.
장자, 도행지이성 : 길은 우리가 걸어가는데서 완성.
모든 부처들은 자기 길을 가는 것.
'일로'란 내 앞에 있는 길.
무문관 48칙의 결론 : '일로'를 찾지 말라.
자신의 일로를 찾지 못하면
너는 다른 사람의 길을 걸어갈 것.
주인으로 걸어가면 일로라는 걸어간 흔적이 남을 것.
무문관 모든 화두를 가벼이 정리하는 48칙.
우리는 보통 남들이 걸어갔던 길을 걸어감.
일로에 집착 못하도록 희론을 쓴 운문.
희론, 쁘라빤짜(Prapanca) : 사랑과 자비를 가로막고
올바른 인식을 '희롱하는 논의',
꽃은 다시 핀 것이 아닌 새로 핀 것,
같은 단어라도 인연에 따라 계속 변함,
세상은 다양한 인연에 의하거나
인연의 화합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가리게 됨.
비가 안 온다고 하면 
화창하다고 하는것과 달리
어딘가에 비가 있는 듯한 느낌



우리는 넓게 보면 모두
닭장에 갇힌 닭의 신세다.
수많은 사람들을 규격화하고
인위적으로 길들이면서
각종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스스로를 억지로 길들여가고 있다.
물론, 각종 시스템은
구제불능인 수많은 호모사피엔스가
나름 평화롭게 살도록 하기 위한
나름의 궁여지책인 것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애써 시스템을 만들었는데도
아둔하거나 포악한 수많은 자들이
도행지이성을 부르짖으며
자신의 길을 만들겠다면
시스템은 무너지고 생지옥이 펼쳐질 것이다.
여기에 우리네 삶의 비극이 담겨 있는 것이다.
시스템을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열심히 시스템의 부속품 역할을 하면
제각기 부작용을 겪게 되므로.
인위적인 시스템이 돌아가는 것은
규격화되고 길들여진 인간들이
시스템이 세뇌시킨 각종 훈장과 벼슬로 자족하며
자신의 일로를 내팽개치고
스스로 열심히 시스템의 부속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스템의 충실한 개노릇하는 것이 
성경에서 얘기한 일종의 넓은 길이다.
성경을 보면 예수가 천국으로 가는 길은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과 같고
매우 좁은 길이라고 했다.
장자가 얘기한 도행지이성과 맥락을 같이 한다.
사실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는 것은
거대한 시스템의 물결을 온몸으로 거슬러 가는
매우 힘든 여정이다.
따라서 어쩌면 0.001%, 아니 그 이하의 
극소수만이 도행지이성을 완수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도행지이성하겠다고 억지 부리는 것 
역시 부질없는 집착일 수 있다고 본다.
다만, 내가 걷는 이 길을 유심히 관찰하고
어떤 길로 걸어가야 하며
무슨 일을 하든지 어떻게 해야
나를 편안하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지를
계속 의심하는 그 태도를 버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도행지이성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깜냥도 안되면서 하겠다고 깝치고 다니면
세상은 더욱 혼란하고 무질서해질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살기 위해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시스템의 개노릇은 어느 정도 해야 한다.
그러니 도행지이성의 진정한 의미도 모르면서
괜한 민폐를 끼치지 말고 
조용히, 꾸준히 해나가야 할 것이다.
길을 만들어가는 것은
길을 따라가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RQqkptsdRi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