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 : 자유를 얻은 것, 죽은 것.
죽어서야 다른 것을 파괴하거나 의존하지 않게됨.
아이러니하게도 산다는 건 참 치사한 일.
돈오돈수, 돈오점수(보조국사 지눌) : 깨달았다고 해도
수행해야 한다, 머리로 깨달음과 몸의 깨달음은 다름,
불던 바람이 멈춘다 해서 물결이 바로 고요해지지 않음.
8정도 : 중생이 고열반의 세계로 가기 위해 실천 수행법.
무문관 45칙 : 타시아수.
동산의 법연 스님이 말하길,
"석가도 미륵도 오히려 그의 노예일 뿐이다.
자, 말해 보라! 그는 누구인가?"
석가(과거의 부처), 미륵(Maitreya, 미래의 부처).
각자(현재)가 부처다, 현재가 기준이다.
역사 : 강제되고 공유된 기억.
과거와 미래가 강하면 사라지는 현재.
고도를 기다리며 : 가만히 기다리면 미래가 온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 삶을 주인으로 못 사는 것.
죽은 시인의 사회 : Carpe diem(현재를 잡아라).
프랑스 라깡 : 19세기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을
20세기 버전으로 업데이트.
내가 아주 행복하고 강해지면 과거의 트라우마가
나를 지배하지 못함.
현재의 내가 불행하므로 트라우마 탓을 하는 것,
지나면 추억이 되어야 함.
지금 입장에 우똑 서야
조선 시대 삼종지도의 어두움이 보임,
삼종지도 : 여자는 어려서 아버지,
결혼해서는 남편, 남편이 죽은 후 자식을 따라야.
내가 오히려 석가나 미륵보다 주인이다.
고문기술자로부터 고문을 당했거나
사이코 내지 맹수에게 호되게 당했거나
일본놈에게 끌려가 위안부 노릇을 한 수준의
강력한 트라우마가 아닌데도
자신의 찌질함을 트라우마로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
종교가 창작한 신의 노예로 살고 있는 사람들.
나의 모습도 예전엔 그러했었다.
죽으면 그만이고
진정한 자유의 세계로 향할 수 있는데
생존본능 내지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사후 세계에 대한 막연한 공포로
죽음이 최종적인 열반의 길임을 모른채
(물론, 살아서 즐거움을 최대한 누려야 한다)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가련한 인간.
죽음을 찬양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박복한 운으로 인해
단 한순간도 행복하지 않으며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이 고통 그 자체로서
나아질 희망이 없다면
아무런 고민 없이
차라리 죽는 것을 택하겠다는 것이
더 낫다는게 내 생각이다.
죽어야 할 때 내 의지대로 죽는 것 역시
주인공으로서의 마지막 내가 선택할 일이니까.
참고로, 현재로서의 나는
100세를 넘어 120세까지 살고 싶다.
과거의 아픈 기억은 모두 추억이 되었고
같이 있으면 늘 편안하고 즐거운 배우자가 있으므로.
다만, 미래가 어떠할지 아무도 모르기에
영원한 안식을 위해 나마저도
차라리 죽음을 선택할 날이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https://www.youtube.com/watch?v=3OrOgssAvF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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