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강신주 무문관 : 주인공으로 살기 [20강]

dirigent21 2024. 7. 27. 12:57

트라우마에서 벗어난다고 

부처가 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에서 주인이 되면 과거와 미래의 지배로부터 벗어남.


무문관 43칙 수산죽비 : 
수산 화상이 죽비를 들고
여러 스님들에게 보이며 말하길,
"너희들이 만약 이것을 죽비라 부르면
이름에 집착하는 것이고
그렇다고 죽비라 부르지 않는다면
사실에 위배되는 것이다.
이제 바로 말해 보라!
너희는 이것을 무엇이라고 부르겠는가!"


죽비 : 주로 대나무로 만든 불교의 법구,
가운데 빈 틈이 있어 나무 쪽 부분을 부딪치면 소리가 남.
에피메니데스(BC 7~6세기 크노소스, 파이스토스 출신
예언자, 철학자, 시인으로서 반신화적 인물)의 역설 : 
크레타 사람이 말하길,
"모든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장이다"
필기를 한다는 것은 지금 순간의 이야기는 안 듣는 것.
분석철학 : 과학과 일상 언어의 
여러 개념이나 명제를 분석하고
그 의미를 밝히는 것을 목적.
분석명제 : 문장만으로 참인지 거짓인지 결정 가능,
'총각은 결혼 안 한 남자.'
종합명제 : 술어 개념이 주어에 포함되지 않은 명제,
경험까지 있어야 참인지 거짓인지 결정 가능,
'김XX는 결혼 안 한 남자.'
수학은 모두 분석명제.
분석명제만으로 된 철학은 삶에 도움이 안됨.
언어에 집착하지 말고 자유로워져야.
일상 대부분은 분석적이 아닌 종합적으로 사유해야.
이름에 집착하는 것 == 그 뜻 하나만 없어지면 끝.
'모든' == 대부분, 내가 만난 사람에 한정,
또는 '모든' == 한 명도 빠지지 않은 모든 사람.
마음의 생태학(Gregory Bateson),
인간과 자연에 관한 가장 창조적인 책,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에 영향을 미친 필독서.
이중구속(double bind) : (예 : 엄마말 듣지마)
둘 이상의 모순된 메시지(하나가 다른 하나를 부정)를 
개인이나 집단이 받게 되는 의사소통상의 딜레마.
현재에서 자유롭고 내가 주인이 되어야 
이중구속에 빠지지 않음.
이중구속임에도 화두처럼 느껴지면 내가 약자임을 자인.
언어에 하나의 의미만 있다고 단정 짓는 순간
모순에 빠짐.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젊은 시절 융통성 없이 갑갑한 나의 모습은
바로 언어에 집착하는 것이었다.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와 조우한다면
아마도 개무시하거나 손절 치지 않을까 생각된다.
주변의 개소리를 들어도
그냥 아무 의미 없는 소음으로 간주하며
굳이 논쟁하지 않을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으니.
물론, 화가 많은 성격이라 
가끔 짜증이 나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그런 부류는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피할 수 없다면 적당히 넘어가면 그만이다.
굳이 논쟁하겠다고 나서면
인생은 무척 피곤해질뿐이다.
입시 교육은 한 마디로 
장애인 양성 과정이라 볼 수 있다.
공부는 많이 했을지 모르나
갑갑한 인간들을 많이 배출하는데
최적화 되어 있으므로.
나 역시 입시 교육으로 인해
오랫 동안 장애인 상태로 살아왔었다.
대부분의 인간은 
사실 그렇게 많은 공부가 필요하지 않다.
선천적으로 공부가 즐거운 사람만 
나름의 소일거리를 위해 공부를 시키면 그만인데
공부가 싫은 지극히 정상적인 아이들을

굳이 큰 돈 들여 공부를 시켜가며
병신을 만들 필요가 있겠는가.

인생이 행복하려면 공부를 최소화하면서

즐겁게 살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미련한 자는 나와 같이

갈 수 있는 끝까지 공부했음에도

정작 그렇게 많은 공부가 필요 없는 일을 하는 자일 것이다.

세상에 나가보면 지식인들을

효과적으로 지배하는 자들은

온 몸을 통해 터득한 경험과

비언어적 언어에 능통한 사람들이다.

더나아가 그렇게나 많은 공부를 한 사람들이

한다는게 결국, 금권의 개노릇하는 것이니

참으로 인생이란 허무한 것 아니겠는가?

 

https://www.youtube.com/watch?v=QBKq6NuWNh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