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는 영토가 아니다 :
살아가면서 삶의 지도를 그려야.
영토에 가본 사람만이
나만의 지도를 만들 수 있다.
말에 떨어진다 == 지도에 떨어진다.
무문관 41칙, 달마안심
달마가 벽을 향해 참선하고 있을 때
두 번째 스승인 혜가가
사납게 내리는 눈 속에 서서
자신의 팔을 자르고 말하길,
"제 마음이 아직 편치 않습니다.
부디 스승께서 제 마음을 편하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달마는
"네 마음을 가지고 와라.
그려면 너를 위해 네 마음을 편하게 해 주겠다"
혜가는 "마음을 찾으려 했으나 찾을 수 없습니다"
그 순간 달마는
"마침내 너를 위해 네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중국 선종의 법맥 : '초조 달마', '이조 혜가(본명 : 신광)'.
두 번째와 세 번째가 있어야 첫 번째가 존재,
프랑스 철학자 데리다 : "기원은 두 번째에 온다.",
아이가 엄마를 만든다, 젖을 만들게 하는 건 아이,
엄마가 아이를 낳다, 아이가 엄마를 낳다 모두 옳음,
모성애가 있어서 아이를 낳는게 아니라 아이가 만듦,
모성애 컴플렉스에 빠져선 안됨.
중국 숭산의 소림사에서
9년간 면벽수도하고 있던 달마.
이조를 잘못 뽑으면 초조도 돗 되는 달마.
사흘 밤낮 눈맞으며 제자를 청하다 자신의 팔을 자른 혜가.
이성복 시인, "이야기 된 고통은 고통이 아니다",
고통스러움을 이야기하는 순간만큼은 내가 편해짐,
이야기된 고통은 마치 삼자인 것처럼 이야기,
감정을 묘사하는 순간 고통과 거리감이 생김.
이야기된 고통은 하나의 문학작품,
그래서 예술가들의 삶은 힘들다.
어려운 시대를 경험한 사람과 아닌 사람의 작품은 다름.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1950년대 연주는 깊이 있음.
음악을 연주하는 것 == 평화를 의미.
음악이 절실한 상황에서의 연주는
일반 연주와 다르다.
이야기된 행복은 행복이 아니다.,
행복에 관해 이야기하는 순간, 행복과 거리가 생김,
혼자 만끽하는 것이 '진짜 행복',
행복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행복을 가장하는 사람.
마음을 찾으려는 노력에서 느껴진 고통과의 거리.
마음을 찾으려고 하는 순간 생긴 마음의 편안함.
그렇다고 계속 마음을 찾아야 마음이 편해지는걸까?
오온의 합집합인 마음,
미세지각이론에 따라 마음은 찾을 수 없다.
내 그림자를 잡을 수 있을까?
움직이지 않을 때 그 그림자는 항상 우리 곁에 있다.
나대지 않아 우리의 삶이 편할 때 마음도 편하다.
그림자를 잡으려 할 때 제일 불안.
마음은 살아가기 때문에 생기는 거대한 효과일뿐,
마음은 곧 그림자.
살아가기 때문에 그림자는 옆에 있고 모양을 흉내냄.
마음을 찾는 것은 무한의 순환.
우리들 마음 이상으로 삶이 우리를 지배.
불교 가르침의 핵심 : 마음은 의외로 작다,
그 작은 것이 마치 전체인 것처럼 우리를 지배할 때
소유욕, 지배욕의 마음이 생김,
무아, 무심, 허심.
마음을 편하게 했다면 삶의 어떤 것이 그랬는가
세밀하게 생각할 것.
작은 부분부터 변화시키면 우리 삶 전체가 변화.
참선, 수행은 마음을 찾는 것이 아닌 마음을 놓는 것.
삶의 작은 변화로도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다.
시스템공학 내지 제어공학을 배울 때
보통 시스템을 안다는
이상적인 가정하에서
갖가지 제어 기법을 배운다.
그러나, 실세계의 복잡한 시스템은
결코 완벽하게 알 수 없다.
따라서, impulse 내지 step response,
주파수 응답 특성 등의
system identification을 통해
제어 대상의 시스템을
간접적이고도 불완전하게 알 수 있을 뿐이다.
마음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본다면
마음이란 시스템을 완벽하게 알고
제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실생활에 나를 노출시켜
마치 system identification하듯
언제 내 마음이 편안하고
언제 불편한지 간접적으로 알 수 밖에 없다.
행복과 불행은 실체가 아닌 효과이므로
각 효과의 원인을 파악하고
가능한 행복의 원인에 나를 노출시키는 것이
가장 쉽고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무아, 무심, 허심 등과 같은 수련법과 같은
노력을 할 수 있겠으나
이같은 노력보다는 나처럼 마음을 제어하기
힘든 사람에겐 지금껏 내가 살아온 과정을
되짚어 언제 행복하고 불행한지
정확하게 파악하여 가능한 그 상황에
나를 노출시키지 않는 것이 더 쉬운 일일 수 있다.
그럼에도 인생이 대체로 비참한 것은
설령 내가 언제 불행한지,
언제 행복한지 어느 정도 잘 알게 되더라도
먹고 살기 위해 자기 자신을
계속 불행의 요인에 노출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관성의 법칙에 따라
습관화된 자신의 행동을
바꾸기 결코 쉽지 않다는 것도 그렇고.
https://www.youtube.com/watch?v=uesSklpe1No
'불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신주 무문관 : 주인공으로 살기 [18강] (3) | 2024.07.24 |
---|---|
강신주 무문관 : 주인공으로 살기 [17강] (0) | 2024.07.21 |
강신주 무문관 : 주인공으로 살기 [15강] (0) | 2024.07.13 |
강신주 무문관 : 주인공으로 살기 [14강] (1) | 2024.07.07 |
강신주 무문관 : 주인공으로 살기 [13강] (0) | 2024.07.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