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문을 막는 지성인들.
말은 훌륭한데 삶은 엉망인 사람들.
무문관 39칙 운문화타
어느 스님 : "광명이 조용히 모든 세계에 두루 비치니"
한 구절이 다 끝나기도 전에 운문스님이 갑자기 말하길,
운문 스님 : "이것은 장졸수재의 말 아닌가?"
어느 스님 : "예"
운문 스님 : "말에 떨어졌군"
사심 스님 : "자, 말해보라
그 스님이 말에 떨어진 곳은 어디인가?"
수재 :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임용전 벼슬을 받지 못한 사람.
과거에 합격하고 불교에도 조예가 깊었던 장졸.
이통현(635~730) : 중국 당나라 불교학자로
화엄경을 연구하여 신화엄경론 등을 저술.
신화엄경론 : 우리나라 스님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저서.
오등회원 : 경덕전등록,광등록,속등록,연등회요,보등록 등
오등을 다시 엮어 한 책으로 편찬,
인도불교에서는 '수레', 동아시아불교에서는 '등불'에 비유,
곤충이 불에 이끌리는게 아닌, 내 삶을 내가 비추는 것.
대승(큰 수레), 소승(작은 수레).
법륜 : 가르침의 수레바퀴.
초전법륜 : 부처가 깨달은 뒤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다섯 수행자에게 사제의 가르침을 설한 것.
장졸의 말은 불교의 정수를 요약할 수 있는 구절.
장졸수재의 말 :
"광명(이타적 마음)이 고요히
모든 세계에 두루 비치니
범부든 성인이든 생명을 가진 것들은
모두 나의 가족이네.
(풀, 벌레까지 가족의 범위가 확장)
어떤 잡념도 일어나지 않아야
온전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지만
(마음에 가득 담겨 있으면 다른 것을 못담음)
감각의 작용들이 일어나자마자
온전한 모습은 구름에 가려버리네.
(감각 : 본능적 이기주의,
평생 이기주의와 맞서 싸우는 것)
번뇌를 끊으려는 것은
번뇌의 병만을 증가시키고
(잊으려 노력한다고 해서 잊히지 않음
다이어트 노력은 실패)
진여에 나가려는 것도
또한 바르지 못한 일이네.
세상의 인연에 따라 어떤 장애도 없다면
열반과 생사도 모두 헛된 꽃과 같을 뿐이네."
(수처작주 입처개진)
장졸의 글은 불교의 정수.
폰 노이만(1903~1957) :
헝가리 출신 수학자, 컴퓨터 구조,
수리경제학, 게임이론, 양자역학의 수학적 기초 등 연구.
코르지브스키(1879~1950, 독일, 이탈리아에서
자연과학 및 인문과학을 공부하고 미국에서 활동한
일반의미론의 제창자),
"지도는 영토가 아니다".
지도 : 괴테의 시 등 다른 사람의 말.
영토 : 실제 삶의 영역.
외국의 육아서는 우리 나라 아이에 안맞을 수 있다.
지도(map, 문자)만 배우고 아는 척 하지만
과연 영토(territory)를 배운 적 있는가?
지도와 영토의 간극을 기억하라.
지도를 보고 나의 영토에 바로 적용하면 위험.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 마을 최고 전문가.
장졸수재의 말은 '지도'.
'말에 떨어졌다' == '지도에 떨어졌다'.
기껏 장졸의 마음만 이해할 뿐,
염화시중에서 가섭의 미소와 연관.
유식하고 권위 있는 사람의 말은 '지도'.
여행을 많이 가 본 사람은
지도가 얼마나 영토와 무관한지 앎,
지도는 참고자료일 뿐.
현대사회는 지도가 지배.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영토를 경험하는 감각이 없어짐.
지도만 맹신하면 새로운 곳에 못 감.
직접 가본 사람만이 지도를 수정할 수 있음.
진정 사랑하는 사이에선
'말에 떨어졌다'란 얘기가 안나옴,
천년 전에도 '사랑해', 천년 뒤에도 '사랑해'.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해'라는 말만 하면
말에 떨어진 것, 지식인의 사회에서 비일비재,
지도만 가지고 자신이 경험한 것처럼 떠듦.
때때로 지식인들이 말에만 빠질 때가 있지만
오히려 못배운 사람들이 말에 빠질 가능성이 낮다.
지식인의 병폐 : 너무 많이 배우면
말에 빠지고 지도에만 빠질 수 있다.
예전의 계몽되지 않은 무지몽매의 시대는
사기치는 지식인들의 천국이었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성인들의 이야기를 가지고
얼마나 쓰잘데기 없는 공부를 하면서
소모적인 논쟁을 하면서
수많은 사기를 치면서
평민들의 고혈을 빨아댔던가?
그 결과 일본에 먹힌 것 아닌가?
그나마 지금은 지식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아져
함부로 사기치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지몽매하니
사기꾼들이 넘쳐나고 있긴 하지만.
이 이야기는 강신주님의 장자수업 "윤편이야기"에서
표현한 "옛사람의 찌꺼기"와도 관련된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 철학서는
엄밀히 말해서 찌꺼기라도 봐도 좋다.
종교 철학의 이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면
'진정한 자유와 사랑'이다.
마치 예수가 그렇게나 복잡했던 율법을
'신에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압축한 것처럼.
그럼에도 그렇게도 많은 이야기 보따리들은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따라
세상에 의한 각종 노이즈로 인해
각 사람의 마음이 오염되어
오염 물질을 닦아 내기 위한
일종의 물티슈인 것이다.
따라서, 천부적으로
선한 본성을 잘 간직하고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에겐
종교 철학을 힘들게 공부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수많은 지식의 십자가를 힘들게 지고 가면서
진정한 자유와 사랑을 잊고 사는
반대의 경우를 위해 제발 좀 짐을 내려놓으라는
수많은 이야기가 필요한 것이다.
나 역시 선한 본성이 오염되어서
(애초에 선한 본성이 없었을 수도 있고)
그렇게나 많은 글들을 읽음으로써
아둔한 마음을 일깨워야 하고
계속 닦아내야 하는 것이니
참으로 고단한 삶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수많은 종교 철학서를 굳이 읽지 않고도
진정 자유롭게 살 수 있면서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성인이자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고
책을 읽지 않으면 무조건 무식하다고 취급하는
지적인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한심하고 불쌍한 존재인 것이다.
나와 내 아내를 비교하면
나는 비교적 책을 많이 읽으며
지적인 것을 탐닉하는 척하고
아내는 책을 읽지 않지만
현실의 삶에선
내 아내가 훨씬 자유롭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따라서, 나는 내 아내가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해서
비난할 자격은 없고
오히려 배울 수만 있다면
아내로부터 배워야 하는 입장이다.
불행히도 자유와 사랑은
배운다고 되는 것은 아니고
자신이 답을 찾아야 하는데
진정한 자유와 사랑을 찾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은게 삶이 비극적인 이유이다.
나는 물론 진정한 자유와 사랑을 찾으려는
인위적인 노력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또 다른 형태의 집착이자
번뇌 요인이므로 자연스런 흐름에 맡겨둘 뿐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7uy8m9_H15g
'불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신주 무문관 : 주인공으로 살기 [17강] (0) | 2024.07.21 |
---|---|
강신주 무문관 : 주인공으로 살기 [16강] (2) | 2024.07.14 |
강신주 무문관 : 주인공으로 살기 [14강] (1) | 2024.07.07 |
강신주 무문관 : 주인공으로 살기 [13강] (0) | 2024.07.06 |
강신주 무문관 : 주인공으로 살기 [12강] (1) | 2024.07.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