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스님이 설법하려고 할 때,
운문스님 : "근래에 어느 곳을 떠나 왔는가?"
동산스님 : "사도입니다."
운문스님 : "여름에는 어디에 있었는가?"
동산스님 : "호남의 보자사에 있었습니다."
운문스님 : "언제 그곳을 떠났는가?"
동산스님 : "8월 25일입니다."
운문스님 : "세 차례 후려쳐야겠지만 너를 용서하마."
동산은 다음 날 다시 운문스님의 처소로 올라와 묻기를,
동산스님 : "어제 스님께선 세 차례의 몽둥이질을
용서하셨지만 제 잘못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운문스님 : "이 밥통아! 강서로 그리고
호남으로 그런 식으로 돌아다녔던 것이냐!"
이 대목에서 동산은 크게 깨달았다.
운문스님이 수업을 방해한 무례해보이는 상황.
밥통 : 생각없이 그저 먹기만 하는 존재.
불교의 위대함 : 하안거, 동안거를 통해 용맹정진할 때
큰 스님도 작은 스님을 감히 건드리지 못할만큼
위계 질서 타파.
와선이 가장 어려움 : 누워서 잠안자는게 가장 어려워서.
나름의 엘리트코스를 밟아온 동산 스님,
여러 유명한 곳에 몸담았음에 생겨난 자부심,
두 가지 방식의 여행.
1) 목적 있는 여행 : 중요한 것은 그곳까지의 최단경로,
미래를 생각하는 자본주의적 인생,
출발지, 목적지에 비해 중요하지 않은 이동과정,
오직 목적지만을 향해 가면
한걸음, 한걸음을 긍정하지 못함,
서울에 있을 땐 파리를 생각,
파리에 있을 땐 서울을 생각.
일하는 와중엔 여행 생각,
여행하는 와중엔 일 생각.
2) 목적 없이 하는 유랑(장자의 소요유),
출발해서 목적지를 정함,
목적지가 없기에 빨리 움직일 필요가 없다,
목적지가 없게 되면 굉장히 재미있어짐,
애초 목적은 아니었으나
걷는 중에 만난 근사한 장소,
소요유란 현재를 살아가는 힘,
제일 힘든 것은 "진짜 현재"에 살아가지 못하는 것.
의식 속에 잠겨있다 우연히 만난 꽃이
모든 생각을 밀어낼 때
즉, 내 생각에 갇혀 있지 않게 될 때
'진짜 현재'가 찾아옴.
과정에 집중하고 현재를 즐기며 과정을 즐기는가,
아니면 죽음이란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가.
소요유가 아닌 목적이 있는 여행을 한 동산스님.
목적 있는 여행이 윤회와 같고
윤회에서 벗어남을 상징하는 듯한 소요유.
육조단경, 임제록.
소요유를 상징하는 문장 : 수처작주 입처개진,
어딜 가든 주인이 되면 그곳이 어디든 참된 곳.
목적이 있는 삶에선 내가 아닌 목적이 주인.
고민이 많으면 주변의 꽃이 안보이고
상대방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음,
그 상황에서 나를 지배하는 것은 고민.
무엇하러 나가는 것이 아닌 '문득'.
어린 시절에 여행을 갈 땐 나름의 계획을 잡고
뭔가 미션을 수행한다는 심정으로 다녔다.
그런데, 나이들어 귀차니즘에 빠지다보니
세부 계획까지 세우지 않고 대충 세운다.
애초의 목적지를 가다가
중간에 괜찮아 보이는 곳이 있으면
차를 세우고 그 곳을 돌아보는데
때때로 애초에 가려고 했던 곳보다
이곳이 더 좋은 곳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
훨씬 뿌듯하고 이게 진짜 여행이란 느낌을 받는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돌아보니
목적을 위한 삶보다
뜻하지 않게 겪게 된 삶이
더 의미 있는 경우가 많았다.
고등학교 시절엔
소위 명문대에 가겠단 일념 하나만 가지고
피끓는 청춘을 갈아넣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으나
노력과 운대가 맞아
목표했던 명문대에 갔을 때엔
처음 한 달 정도는 뿌듯했으나
그 시기가 지나자 허탈감이 몰려왔었다.
그럼에도 이왕 온 대학이니 학점 잘 따고
교수말 잘들어서 나중에 대학교수나 되보자하며
열심히 공부했다.
그렇게 대학 생활을 하다 2학년부터 성가대를 하고
대학교 3학년 때 내 20대 인생을 뒤흔든
지휘자님을 만나 지금껏 내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고전 음악에 몰입하게 되었다.
내가 대학교 3학년부터 합창단원으로서
대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하고
열심히 음악 공부하는 것은
내 계획에 전혀 없던 길이다.
비록 출세길을 방해하고
밥벌이에는 전혀 도움이 안되었지만
고전음악을 배우는 과정은
내 삶을 윤택하게 하고
공돌이스런 기계적 사고의 틀을 깨부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렇게 음악과 전공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가며
어느 것 하나 포기하지 못하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에 진학해서 학회 등에 참석하며
공대교수들의 꼴을 보아하니
상상한만큼 아름다운 모습이 결코 아니었다.
나름의 서열에 따라 학파에 따라 분파가 있었고
학회에 가면 순수한 학문적 싸움이 아닌,
정치적 싸움이 빈번했다.
게다가 프로젝트를 따기 위해
공무원 등 갑의 위치에 있는 자들에게
술상무 노릇 등 아양을 떨어야 했고
정교수가 되기까지 나름 몸을 갈아 넣어야 했다.
내가 저런 인생을 살면 굉장히 불행해질 것 같았다.
그렇게 딜레마에 빠진듯한 대학원생을 이어가던 중
합창단원인 아내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게 빌미가 되어 지휘자님과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자연스레 음악의 길은 끊기게 되었다.
그렇게 울며 겨자먹기로 대학원 생활을 이어가던 중,
차선책으로 변리사나 되어 볼까하고
고시공부를 했으나 이것도 내 길이 아니었고
공부를 하면 할수록 따분하고 변리사가 된다해도
역시 불행할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은 대기업의 월급쟁이로서
피처폰용 임베디드소프트웨어 엔지니어나
되보자하고 대기업에 입사하게 되었다.
다행히, 마지막으로 선택한 길은 적성에 맞았다.
그래서, 비록 몸은 고단하였지만
새로운 것을 배우는 과정,
내가 개발한 코드가 실제 폰에 이식되어
소비자의 손에 쥐어지는 것은
굉장한 자부심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생전 처음 해외 출장이란 걸 가면서
로마에서 2개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4개월 가량
장기 출장 생활하며 고생은 했지만
해외 생활의 색다른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물론, 이것 역시 2 ~ 3년 정도해보니
이렇게 몸갈아넣는 건
더 이상 못해먹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운 좋게도 입사 3년차부턴 선행개발부서로
옮길 수 있었고 여유로워진 가운데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면서
나름 새로운 것을 공부하고
다양한 기술을 분석하고 검토하는 것
역시 재미있었다.
이 시절엔 이상하게도 산호세, 샌디에고 지역으로의
출장이 생각보다 많았다.
미국하면 샌프란시스코 등이 정말 좋을 줄 알았는데
대자연을 좋아하는 내 특성상
이보다 훨씬 아름다운 요세미티 국립공원,
타호 호수, 레드우드 국립공원,
산호세에서 LA로 가는 1번 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Big Sur등의 절경 등은
비록 짧은 시간이었으나
내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이제 시간이 지나니 스마트폰 임베디드 소프트웨어도
점점 할 것이 없어지는게 보였고
내가 속한 사업부는 쇠락의 길을 걸으면서
다른 사업부로 수많은 사람들을 보내게 되었다.
난 그 당시 ADAS, 자율주행 등이 유먕해보여
아는 인맥을 동원하여 망해가는 사업부 탈출에 성공하였다.
새로운 사업부에 간지 2개월 정도 후,
우연히 반도체 회사로의 이직의 기회가 열렸다.
그렇게 평생 직장으로 알았던 곳을
40대 초반이란 적지 않은 나이에
또 다른 회사로 이직하게 되었고
그룹 교육을 받는데 내가 속한 조에서
내가 가장 나이가 많았었다.
물론, 계속 새로운 것을 공부하며
나름 조직이 필요로하는 것들을 해야만 했다.
이 와중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중국, 이스라엘, 대만에 출장을 가면서
또 다른 모습의 외국을 경험할 수 있었다.
특히, 이스라엘에 3주간 있으면서
주말이 되면 이스라엘의 각처의 대자연을
혼자 쉴새없이 돌아다녔다.
남쪽의 사막과 사해 오아시스,
북쪽의 우거진 삼림과
맑은 계곡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성경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향했다고 해서
이게 무슨말인가 했는데
정말로 이스라엘 북쪽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남쪽은
아무것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은 광야였지만
중간중간 엄청난 수량의 오아시스가 있었고
목축업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렇게 어느덧 50에 가까우니
점점 내게 주어지는 일은 줄어들기 시작했고
그래서 지금의 여유로운 삶이 가능해졌다.
언젠가 내가 속한 사업부가 어렵거나
더 이상 나를 필요로하지 않으면
결국 회사원으로서의 내 인생도
언젠간 끝나게 될 것이다.
지금은 말하자면 회사원으로서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다시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면
명문대를 목표로 하고 내 삶을 갈아넣을 때
내가 회사원이 될 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냥 내 몸을 세상의 거친 물살에 나를 맡기고
바위에 내 몸이 박살나지 않기 위해
나름의 최선을 다해 거친 물살을 잘 타다보니
운좋게도 어느 덧 평화로운 호수로 와 있는 것이다.
물론,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견뎌야 할
또 다른 거친 물살이 기다리고 있을지
아니면 호수의 물이 말라
또 다른 물을 찾아가야하는
고생을 해야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내 인생을 돌아보면 계획대로 된게 아니니
어떻게 되면 실패한 인생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비록 목표 달성에 실패하고
갖가지 시행착오와 후회로 얼룩진 인생이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의외의 포인트들로 인해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내 인생이 풍요로워졌다는 점이다.
합창단을 하면서 음악의 아름다움에 맘껏 취하고
독신주의자였던 내가 의도치않게 합창단에서
착하고 귀여운 아내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여
지금도 금술좋은 부부로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거의 무에서 시작하여 월급쟁이로 살며
땀의 가치를 알고 돈을 불리진 못해도
잘 모으는 법은 잘 터득하여
자본가는 못되었으나
어느 정도의 안정은 찾기도 하고.
40대 중반에 이르러선 자본가가 되어보겠다고
나름 경제공부를 하고 재테크 공부를 하다가
재테크 컨텐츠에서 소개되는 책들을 읽어보다
우연히 인문학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자본가가 되겠다는 목표에선
한참 거리가 멀어져
인문학의 바다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자본가가 되기 위한 공부보다 이쪽 공부가 재미있고
마음이 편해지면서 이게 진정한 나의 삶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경제적 자유인이 되진 못할 수 있겠으나
지금처럼 살다가 죽어도 좋겠다는
나름의 자기 만족에 취해있다.
남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비를 베푸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마찬가지로 진정한 삶의 주인공이 되는 것
역시 매우 어려운 일이다.
보통 주인공하면 외적 세계에 대해
내가 주체적인 역할을 하는 걸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제적 자유인이 되어
갑질 걱정 없이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돈걱정 없이 편안히 사는 삶 같은거 말이다.
나도 지금껏 주인공의 개념을
나와 외적 세계만으로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번 강의를 통해
자신의 내적 세계속에서
진정한 주인공이 될 수 있으냐도 중요하고
어떻게 보면 이게 더 중요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즉, 오온과 팔고에 종속된 자아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운 주인공이 될 수 있느냐의 문제.
제 아무리 수조원의 돈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수조원의 자산을 어떻게 운영할지
매순간 고민해야한다면
고민하는 자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므로
진정한 주인공이라 할 수 없다.
엄청난 매상을 올리고 사람들이 떼를 지어오는
맛집 사장으로서 천문학적인 돈을 긁어 모으더라도
이 가게를 어떻게 유지하고
항상 손님을 생각해야 한다면
외적으로 내적으로 결코 자유인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진정한 자유인 내지 주인공이 외기 위해
수행자들은 왜 모든 것을 버리는 방식을
택하는지 이제야 이해가 된다.
내가 갖고 있는 것, 내가 지는 짐이 가벼울수록
근심과 고민거리가 적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과연 진정한 자유인 내지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이것 역시 현재로선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진정한 주인공이 되겠다고
진정한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되겠다고
억지로 노력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렇게 되겠다는 것 역시
진정으로 나를 자유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그냥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선
뭔가 계획을 세우거나 인위적인 노력하지 않고
가장 편안한 몸과 마음으로 사는 길을 택하고
내 마음이 동하는대로 살아갈 것이다.
혹시 아는가?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뜻하지 않게 이루면서 삶이 더 풍요로워질지.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의 인생에서도
우연히 마주치는 소중한 것들을 놓치지 않으려는
자세로 살아갈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RkNF3qfBB2w
'불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신주 무문관 : 주인공으로 살기 [15강] (0) | 2024.07.13 |
---|---|
강신주 무문관 : 주인공으로 살기 [14강] (1) | 2024.07.07 |
강신주 무문관 : 주인공으로 살기 [12강] (1) | 2024.07.05 |
강신주 무문관 : 주인공으로 살기 [11강] (1) | 2024.06.30 |
강신주 무문관 : 주인공으로 살기 [10강] (0) | 2024.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