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토가 원칙적으로 작동하면
완전한 민주주의 세계.
어떻게 하면 창조된 신을 거부하는가 :
불교를 계속 끌고 온 전통.
신은 죽었다 : 신이 없어야 인간이 자신의 삶을 결정.
성경 등의 경전에 따르면 매뉴얼에 따르는 삶.
삶의 주인으로 살다 죽으면 모두 평등.
동학의 인내천 : 사람이 곧 하늘.
누군가를 대할 때 동정은 자비가 아님.
사랑과 자비의 바탕에는 '님'이 있다.
세상의 사람들을 님으로 모시면 그게 사랑이고 자비.
화엄 : 들판에 핀 잡꽃들.
무섭거나 우월해보이거나
그 사람 말을 들어야 하니까
숭배한다면 부처가 못됨.
'님'들의 공동체가 불국토,
내가 주인이어서 남들을 노예로 부리려는 의지가 아님.
불교의 전통에선 싯타르타나 경전의 권위만큼이나
자신의 생각을 담은 논서를 쓸 수 있음.
서양에선 중세시대 이후 근대에서야 저자가 탄생.
유학에서도 아무나 논서를 쓰면 사문난적,
사서를 가지고 반복해야.
천상천하 유아독존 : 내가 부처가 된 후
당신도 되야하는데 왜 안될까?
팔정도 중 '정사유' : 바른 생각, 번뇌에서 벗어난 생각.
선불교 화두를 맹신해선 안됨 : 구절의 노예가 되는 것.
월암 화상이 어느 스님에게 물었다.
"해중은 100개의 바큇살을 가진 수레를 만들었지만
두 바퀴를 들어내고 축을 떼어 버렸다.
도대체 그는 무엇을 보여주려고 한 것인가?"
해중 : 수레 제조로 유명했던 중국의 전설적인 장인.
오온(panca khandha) :
색온(인간을 구성하는 물질적 요소)
+ 정신 요소인 4온(명 : 수상행식).
명색 : 개체적 존재로서의 정신과 물질.
수 : 감정, 감각과 같은 고통, 쾌락의 감수 작용.
상 : 심상을 취하는 취상 작용으로서 표상, 개념 등의 작용.
행 : 의지 작용, 잠재적 형성력.
식 : 인지 판단의 작용 또는
인식 주관으로서의 주체적 마음.
자아는 오온에 있다.
수레의 움직임은 바퀴만에 있지 않고
각 요소의 화합에 있다.
인연이 모여야 무엇이든 작동.
오온 각 요소가 모두 화합해서 자아가 생김.
오온 각 요소가 분리되면 자아도 사라짐.
자아는 색수상행식의 효과.
색(오온)즉시공공즉시색(오온).
움직임도 공하다.
인연의 화합.
라이프니츠 미세지각 이론 :
우리가 세계에 대해 느끼는 지각은
셀 수 없이 많은 미세한 지각들로 구성,
우리가 듣는 파도 소리는
작은 물방울들이 부딪치는 소리에 대한 의식의 적분.
거대한 파도소리는 우리 머릿속에만 있는 것.
우리의 일상적 지각은 작은 지각들의 적분된 결과.
오온으로 만들어지는 '나'라는 효과.
미세지각 관점에서
모든 것은 시시각각 변하여 어제와 다른 존재.
집착이 만들어지는 과정 :
예를 들어 악기의 화합물의 결과로서
하이든 현악 4중주 Op.76 3번
C장조 카이저(황제)의 2악장(독일 국가),
종달새란 음악은 어디로 간 것인가?
음악이 천국으로 간 것인가?
결과물 효과에 불과한 것을
실체이고 영원불변하다고 보는가?
우리가 보고 듣고 평가하는 것들은 '효과',
사라졌다고 해서 마음 아파해서는 안됨.
집착은 재미도 없다.
인연이 되고 화합하면 울려 퍼질 것이고
그것이 다한다면 사라질 것이다.
세상을 살아갈 때
하나의 요소인 것처럼
인연의 한 부분인 것처럼 있어라.
나도 많은 것이 모여 생긴 하나의 '효과'이자 '교향곡'.
다른 결과물에 대해 나도 새로운 화합의 요소.
화합이 될 때 우리는 무언가를 실천하고 있는 것.
저 사람의 연주, 내 연주도 더 풍성해지는 관계를 맺을 때
불국토가 실현, 우주적 교향곡.
쇼펜하우어가 말한 동정과
불교가 말하는 자비의 차이점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물론, 두 가지 모두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는데도
함부로 차이점을 논하는게 우스울 수 있지만
이 강의를 듣고 약간의 느낌을 얻었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쇼펜하우어의 글에서는
기본적으로 자신이 보통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뉘앙스가 풍긴다.
그리고, 우월한 자신을
세상이 그렇게 오랬동안
인정해주지 않은 것에 대해
어느 정도 화가 나있었던 것 같다.
아울러 고상한 자신에 비해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짜증나 있던 것 같다.
쇼펜하우어가 택한 해결책은
프랑크푸르트에서의 은거였다.
반면, 불교는 기본적으로
우월의식이나 혐오의식이 없고
모든 것이 공하다는 관점에서의
자비를 이야기 한다.
물론, 순수한 가르침의 세계를 벗어나면
권위에 복종하는 동물적 인간의 본성에 의한
종교적 권위는 논외로 한다.
제 아무리 순수한 자비를 이야기해도
이 세상에서 이상적인 자비를 마주하는 것은
길을 가다가 금이나 다이아몬드를 줍는 것보다도
어려운 일일 수 있다.
나는 내 자신이 누군가에게 자비롭거나
누구로부터 자비를 받는 건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본성이 자비롭지 못한데
억지로 자비로워지려는 것 역시
집착이기 때문이다.
권위에 복종하지 않거나
집착하지 않는 것만이라도
잘 배우길 바랄 뿐이다.
나아가 미련해보일 정도로 권위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볼 때 짜증나거나
에효 저 불쌍한 인간들같으니란 동정심이 발동하거나
하지 않고 그냥 무념무상의 단계에 이르길 바랄 뿐이다.
김창옥 강사님의 최근 영상 가운데
아주 좋은 말씀을 해주신게 있다.
이 영상의 15분경부터 권위에 대한 열광에 빠지지말란
말씀을 하신다.
https://www.youtube.com/watch?v=RxZHvwU1DiQ
제 아무리 노래를 잘하고 운동을 잘하고
말을 잘한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집착하면
수많은 부작용이 발생하고
세상이 미쳐가는 또 하나의
방향성 벡터가 생겨나는 것이다.
다행히 내 주변에는 팬클럽에 가입해서
연예인에 미쳐서 졸졸 따라다니거나
교주에 열광하는 사람은 없는데
가까운 사람이 그러면 정말 짜증날 것 같다.
그 자신은 미쳐 있어서 너무나 신날 수 있겠으나
주변인에게는 민폐 그 자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철이 들기 전의 자식이
자신이 열광하는 팬에 미쳐 있는 꼴을 보고 있으면
내 입장에선 정말 열불이 날 것 같고
집에서 내쫓고 싶을 것 같다.
나는 사춘기 시절을 비롯하여
중고등학교 시절에 단 한 번도
연예인에 빠진 적이 없다.
다른 애들은 각종 연예인 사진이 코팅된
책받침 같은 걸 들고 다녔으나
난 그러하지 않았다.
그러한 면에서 내가 자식을 키우지 않는 것은
천만다행이라 생각한다.
나처럼 성질 더러운 애비는
그짓꺼리할려면 차라리 집에서 나가서
니 혼자 맘껏하라고 할터이니.
이러한 측면에서 부모가 되는 것은
일종의 극한직업으로 보인다.
운좋게 착하고 지혜로운 아이와 함께 산다면 모를까.
https://www.youtube.com/watch?v=jWjZSmaKC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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