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붕의 길 이외에 벌레의 길도 있다.
삶이 힘들면 다른 곳으로 날아가는 대붕.
그러나, 과거와 달리 영토 국가의 범위에서
벗어나기 힘든 지금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는 벌레 이야기.
지배와 복종 관계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
-경상초
예는 아주 작은 표적이라도
활로 맞추는데 능숙했으나
사람들이 자기를 찬양하지 않도록 하는데는
서툴렀다.
성인은 '자연적인 것(천)'에 능숙하나,
'인위적인 것(인)'에는 서툴렀다.
자연적인 것에도 능숙하고
인위적인 것에도 잘 대처하는 것은
오직 '완전한 인간(전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오직 벌레만이 벌레일 수 있고,
오직 벌레여야 자연적일 수 있다.
완전한 인간은 자연적인 것을 싫어한다.
사람들이 자신을 자연적이라고
여기는 것도 싫어하는데,
'나는 자연적인가? 아니면 인위적인가?'
라는 의문에 대해서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예 : 요임금 시절
10개의 태양(절대자, 권력 상징) 가운데
9개를 떨어뜨린 신화적 인물,
마지막 10번째 화살은
요임금이 숨겼거나 요임금을 위해
1개를 남겨놨다는 설.
몽고의 전설에서는 7개였던 태양.
1개를 남긴 이유 : 태양이 있어야 한다는 이미지 때문,
군주의 필요성을 정당화.
태양을 숭배했던 인류의 문명.
활은 쐈지만 마지막 하나는 못 맞춘 것 아닐까?
인위적인 세계 : '좋아요'를 좋아하고
악플을 싫어하는 것,
지배/복종의 관계, 국가주의, 허영의 세계.
지배/복종의 관계가 만들어지면
지배자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
피라미드 구조 : 위로 올라갈수록 심해지는 경쟁.
찬양받는 순간 다른 경쟁자의 표적이 됨.
9명의 군주를 제거하고
크나큰 칭송을 받아 위기에 처했을 예,
화살이 하나 더 있으면
요임금을 떨어뜨릴 수 있는 존재이므로.
너무 위대했던 예를
사람들이 찬양하도록 하면 안되었다는 생각.
세금, 전쟁 등 국가주의에 지쳐 있던 사람들의 찬양,
찬양 때문에 표적이 된 예.
위악이야기 : 악을 행하되 형벌에 걸리지 말고
선을 행하되 명성을 가까이말라.
떠나면 되는데 천하를 떠나지 못한 예.
천하의 질서 : 천/천자/대인/소인.
소인들의 지지를 받는
예를 좋아할 리 없는 경쟁자들.
누구든 힘만 있으면 군주가 될 수 있었던 전국시대.
장자의 생각 :
예가 마지막 화살까지 제대로 쐈다면
천하 질서를 없앨 수 있었다.
장자의 안타까움 :
사람들이 찬양하지 않도록만 했다면
질투의 대상도 군주의 정적도 안됐을텐데.
천하(허영/질투/경쟁사회)에 남아
찬양받는 자리에 있으면 위험,
찬양에 대상은 공격의 대상.
경쟁사회에서 아픈 사람에게는
사람이 모이기 마련,
불행할 때 같이 울어주는 친구가
좋은 친구라 보기 어려울수도.
위로해 주면서도
나는 이혼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것.
기쁜 일이 있을 때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친구가 좋은 친구.
재벌들의 가정 파탄을 보며
'우리는 가난해도 행복해' 심리,
정작 우리는 가난해서 헤어질 힘도 없음.
지배/복종 관계에 사로잡혔을 때
나도 모르게 가지게 되는 질투.
어떤 사람이 기뻐하고 행복해할 때
내 가족인 것처럼 행복해진다면 그 사람은 친구.
천이란? 나의 욕망을 실현.
인이란? 타인의 욕망을 실현,
타인에 대한 과시욕,
의미 없는 허영/질투/경쟁으로부터의 승리에
도취해 허한 느낌.
명문대 나온 의사라서 만나는 것(인)과
내가 좋아서 만나는 것(천)은 다름.
내가 원하는 걸 하고 있다면 천의 세계,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면 인의 세계.
상대방이 마음에 안 들어도
헤어지지 못하는 우리.
쌀, 돈이 안 나오는데도 한다면 좋아하는 일!
찬양받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 :
가장 자연스레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벌레가 되는 것.
인의 사회에 사는 완전한 인간은
자연적인 것을 함과
동시에 찬양하도록 하지 않는 것.
벌레처럼 살아야 자연적으로 살아도 해를 입지 않음.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억지로 참는 것이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인 것.
9개의 태양을 떨어뜨리고
하나를 놓쳤던 그 사람,
다음엔 그 하나마저도 떨어뜨릴
대붕 같은 사람이
죽지 않도록 하려면?
벌레가 되라.
벌레처럼 작게 스스로를 만들어
자연적인 것을 행해도
다치지 않게 하라.
자연적이고 당당해도 권력자가 아니면
표적이 됐던 전국시대.
자본주의/경쟁 사회도 마찬가지로
예가 되려 했다간 죽을 수도.
작은 하루살이들이 모여서
같이 움직인다면 어떻게 될까?
작은 벌레들이 한편으론
예의 열번째 화살을 찾고 있는지도.
예의 전설은 결국 요임금을 정당화하는 것.
장자가 본 예 :
10개의 태양을 다 떨어뜨리려 한 사람.
하늘의 태양, 천자를 떨어뜨려야
풀, 개울, 돌, 동물, 사람들이 빛날 것.
어디까지 내 욕망대로 살고,
어디까지 남의 눈치를 볼지 생각하지 않는
완전한 인간.
사회통념상 악이라고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거라면? 들키지마라.
경쟁/질투의 사회,
승자 독식의 사회에서 살 수 밖에 없다면?
하고 싶은 걸 하되 들키면 안됨.
장자가 살았던 시절엔 좁았던 허영의 사회.
사치/권력/허영의 길이었던 실크로드.
행복을 과시하기 위한 사치의 길.
그러나, 너무나도 넓어진
허영의 실크로드가 만연한
현대 사회에서 혼자 훌쩍 떠나 살 수 없음.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며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장자의 해답,
깨알 같아도 상관 없다.
자유인은 살아남아야 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이 있는 사람만이 싸울 수 있다.
두 다리의 변증법 :
사랑하게 되면 자유는 증진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허영/질투/경쟁/전쟁의 사회로
나아갈 것을 짐작했던 장자.
장자의 슬픔 : 마지막 화살이 왜 빗나갔을까?
왜 칭찬과 질투를 받아
정적이 되어 죽어갔을까?
마지막 한 방을 정확히 쏠 수 있다면
그전까지는 하루살이처럼 아주 작아지길.
그러면 어느 순간 '벌레 충'처럼
많은 벌레가 모일 수 있을 것.
가급적 작아져 이 사회에서 스며드는 존재로라도
내가 원하는 것들을 지켜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있어서 버티는 나.
작은 벌레가 되어 경쟁/질투의 사회,
상명하복의 사회를 견뎌내라.
강의를 들으며 온몸이 털이
쭈뼛쭈뼛 서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이런 해석으로
이야기를 풀어갔을까 감탄하면서.
참으로 명강 중의 명강이라고 하겠다.
흔히들 내가 아플 때 같이 아파하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하는데
내가 잘되었을 때 기뻐해주고
그 이후에도 한결같은 모습으로
나를 대하는 그 친구야말로
진정한 친구라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가면을 잘 쓰고 착한 척도 잘하므로
같이 기뻐해주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고
내가 잘 나가더라도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계속 지켜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잘 나가는 건 너니
너한텐 평생 얻어먹겠다,
이것 저것 부탁해온다면
친구로부터 멀어지는 길을 향했다고 볼 수 있다.
covid-19 시절을 거치면서 우리는
바이러스의 무서움과
그 위대함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작은 바이러스가
전 세계의 권력자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인간 사회를 거의 올스톱에 가깝게
만들었기 때문에.
허영과 생산소비의 거대한 인간의 성을 향해 쏠
마지막 10번째 화살은
어쩌면 바이러스가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온난화 가속화에 따라 영구동토층이 드러나며
어떤 바이러스가 나올지 모른다고 하고
한편으론 적도 근처에만 있던 바이러스들이
점점 북상하면서
영토를 넓히는 가운데 covid-19의 전파력에
치명적인 살상력까지 더하는
더 쎈 놈들이 나온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지금 온 우주를 더럽힐 계획을 갖고 있는
세력가들과 과학자 단 한 사람도
이 지구를 떠나게 해선 안된다.
지구도 모자라 온 우주까지
인간에 의해 더럽혀진다면
얼마나 슬픈 일이겠는가.
지구 멸망의 시계는
완전한 멸망에 이르기까지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흔히들 권력자나 회사 임원을 향해
'내가 하면 저것보단 잘하겠다',
'내가 하면 다 쓸어버리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사람들이 있고
나도 철없는 시절엔 그랬었다.
불행하게도 아무도 그렇게 할 수 없다.
이미, 돈/허영/질투/경쟁/과잉의 거대한 탑은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돈에 대한 숭배로 계속 단단해지고
업그레이드되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허영의 탑의 일원이 될 수 있는,
이른바, 어느때보다 돈을 사랑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사람의 영혼까지 사고파는 시대가
올 것이란 예언이 있는데
성경 기록자도 대단한 선견지명을
갖고 있었음에는 분명해보인다.
돈이라면 너무나도 쉽고 빠르게
영혼까지 팔 준비가 된 사람을 찾기는
무척 쉬운 사회가 되었으니까.
제아무리 선의로 일을 시작하더라도
결국은 악에 굴복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이 탄탄해졌기에.
어느 나라든 그 수준만큼의 권력자를
갖는다는 말만큼 정확한 것은 없다.
30% 정도를 제외하고 누구나
지금 대통령을 욕하지만
우리 나라의 평균적인 수준이
딱 대통령이자 정치인 수준인 것이다.
나라를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선
벌레와도 같이 작은 소시민 하나 하나 안에서
의식 혁명이 일어나야만 하는데
그렇지 않는한 그 사회는
권력자는 바꿀 수 있을지언정
결코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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