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

강신주 장자수업 [36강. 뒤쳐진 양 이야기 : 두 다리의 변증법]

dirigent21 2024. 3. 13. 12:19

자유로운 동물 : 양.

'행'에 대해 구체화된 소설같은 이야기.

-달생

전개지가 주나라 위공을 만났다.

위공 : "축신이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다고 들었습니다.

선생께선 축신과 함께 배웠다는데

어떤 얘기를 들으셨는지요?"

전개지 : "저는 비를 들고서

뜰 앞에서 시중을 들었을 뿐이니

스승님으로부터 무엇을 들었겠습니까?"

위공 : "너무 겸손하시네요. 듣고 싶습니다."

전개지 : "저는 스승님께서 '양생을 잘하는

사람은 양을 치는 것 같아서

그중 뒤처진 놈을 발견해

채찍질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걸 듣긴 했습니다."

위공 : "무슨 뜻인가요?"

전개지 : "노나라의 선표라는 사람은

바위 굴 속에 살고

골짜기 물을 마시며

민중들과 이익을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70세가 되어도

어린아이같은 안색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굶주린 호랑이를 만나 잡아먹혔습니다.

장의라는 사람은

높은 문을 가진 귀족의 집이든,

문대신 발을 사용하는 평민의 집이든

달려가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이 40세에

몸 안의 열병으로 죽어버렸습니다.

선표는 그의 안을 길렀으나 호랑이가

그의 바깥을 잡아먹어 버렸습니다.

장의는 그의 바깥을 길렀지만

병이 그의 안을 공격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그중 뒤처진 놈을

채찍질하지 않은 겁니다."


포정의 신 : 몸과 마음이 함께 작동하는 느낌.

정반합 : 헤겔의 변증법.

법철학 강요(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독일 철학자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이

베를린대학에서 가르치던 강의를 요약하여 출판한 책) :

아빠(정)/엄마(반)/아이(합),

지양이란 부모의 특징을 보존하면서도 극복하는 것,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한 상태인 합,

아이로부터 가지쳐나가는 헤겔의 변증법.

[첨언] 헤겔의 비유는 맞지 않다.

부모의 장점만을 물려받는 아이도 있겠으나

부모의 단점만을 물려받는 저주받은 아이도 있고

더 나아가, 부모에겐 없는

제3의 저주 인자를 내포할 수도 있기에.

장자적 사유 : 생물학적 이미지로서

가족 변증법에 가까운

헤겔 변증법의 가장 큰 라이벌.

이론(정), 실천(반), 합(새로운 이론)의 사슬로서

끼쳐 나가는 변증법 원리.

수정과 보존을 거쳐 만들어지는 새로운 이론.

정반합의 원리 : 앎과 행위가 일직선에 있을 때 합,

지행합일(앎과 행위는 하나여야 한다).

장자적 변증법 : , '합'의 상태 없이 걸어 나감,

앎->실천, 실천->앎, 앎/실천 어느 발로 시작하는지

중요하지 않고 걸어감.

'앎'만 있거나 '실천'만 있는

깽깽이걸음도 받아들이는 장자.

'앎'과 '실천'이 일직선이 된

지행합일의 상태(강시)를 싫어하는 장자,

지행합일의 상태는 정상적인 걸음에선

그저 스치고 지나갈 뿐('합' == 순간적 착각).

두 다리의 변증법 : 도행지이성에서 '행'의 계기.

깽깽이걸음으로 갈려면 가봐라,

그런데 얼마나 갈 수 있나 두고보자.

오래 가고, 제대로 가려면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이 같이 가야.

사랑에 빠져봐야 자유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되고

자유롭지 못하면 증진시키려 노력하게 됨.

양다리에 놓을 수 있는 사랑과 자유,

사랑으로 한 발 나가면 자유가 증진되는 삶,

자유가 증진되면 사랑하는 것들이 펼쳐짐.

한 발이 앞으로 가면 뒤처지는 것은 다른 발.

뒤에 있던 동물이 앞으로,

앞에 있던 동물이 뒤로.

낙오자가 생긴다면 맨 앞으로 보내 앞에

아무것도 없게 만들어야.

장자의 감각 : 대립하는 개념 모두 적용 가능!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정착 국가에서 살지 않아

스트레스가 없어 아이같은 선표.

선표(홀로 떨어진 양)는 왜 호랑이에게 물렸을까?

핵심은 선표의 나이 70세,

자유롭게 살면 70세까지 사니

70세까지 살고 싶으면

이 사회를 떠나라!

공동체에서 젊은이들과 모여 살았다면

호랑이에게 물려 죽지 않았을 선표.

호랑이가 세진 것이 아니라

선표의 기력이 떨어진 것.

선표의 정신으로 지배/복종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있었다면

호랑이를 쫓을 수 있었을 것.

선표의 문제점 : 공동체는 무조건 악이란 생각.

선표와 달리 40세에 죽은 장의,

자신이 원하는 걸 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에서 살았어야.

시남 선생 이야기에서

억압과 지배가 없는 자유로운 공동체.

정착 국가와 같은 공동체에 희망을 가지는 장의,

지배 계층에겐 선의를 구하고,

피지배 계층에게는 도움을 준 장의.

사랑하고 자유롭게 속편히 살아야

스트레스 없이 오래 삶.

장의(헌신의 아이콘,

채찍을 휘두르는 목동 근처의 양)의 입장 :

공동체는 꼭 필요한 것,

사회의 모습은 상관 없으니 민주사회면 좋겠다.

장의가 열병에 걸린 이유 :

지배자들의 욕망을 막지 못하고

도와주는 것에 한계를 느낌.

자기 파괴의 정도로 봤을 때

선표의 손을 들어준 장자.

사랑 없이 자유만 앞서나간 선표,

자유는 뒤처진채 사랑만 앞서나간 장의.

뒤처진 것을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두 다리 변증법.

어떤 공동체든 좋다는 생각은 위험.

선표 : 장의야, 지배와 복종의 사회가 영속하는데

네가 기여하는거 아냐?

사랑이란 나와 너는 주연,

주변 사람들은 조연이 되는 경험.

사랑에 지배/희생 관계가 생기면 깨지는

주인공 체계.

사랑이란 하나가 되는게 아니라

두 사람이 유지되는 것,

하나가 된다는 것은 내 뜻을 따르게 하거나

상대 뜻을 따르는 것,

자유와 존중받는 느낌.

한쪽이 일방적으로 희생하면

오래 못가는 사랑.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에 몰입되면 안됨,

누군가에 복종한다고 해서

사랑한다고 착각해선 안됨.

복종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 때

사랑할 수 있음.

자기희생적인 장의는 오히려 부담스러움.

선표와 장의 모두 사랑의 공동체에서 살았다면

무병장수했을 것.

장자의 바램 : 근사한 양들처럼 사는 것.


 

기독교적 사랑은 성경에선 온유하다고 되어있지만

달리 생각하면 가장 폭력적이다.

선악과를 따먹은 원죄란걸 만들어서

그 죄가 대대손손 이어지다가

예수가 십자가의 고통속에 승리하여

이 세상 죄를 사하는 길을 열었다는 그 사랑.

이게 무슨 되먹지 못한 사랑인가?

결벽증에 걸린 전지전능한 자가

원죄란 걸 만들어 뒤집어 씌우는 것도 모자라

자기를 믿지 않으면 영원토록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겁박하는 빌런앞에서

자기 몸을 드릴테니

죄를 사해주시고 믿는 자에겐 모두

천국 티켓을 달라는 아들?

사랑을 가장한 지배와 복종에 기반한

굉장히 부담스러운 관계이다.

조그마한 죄 하나도 참지 못해 언제든 공격할

정신병자와 영원히 함께 있는 것이야 말로

지옥이라고 할 수 있다.

어디 불안해서 맘놓고 살겠는가?

진정으로 성숙된 인격의 신이라면

구제불능의 빌런 내지 사이코가 아닌한

모두에게 자유를 즐길 수 있도록

품을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또, 성경에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란 말이 있다.

이 또한 틀렸다.

'나만이 진리요 생명이다'란 입장의 진리는

결코 우리를 자유케 할 수 없고

천국이란 선물과 지옥이란 공포로부터 벗어나

맹목적인 믿음으로부터 해방되어야만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