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

강신주 장자수업[14강. 마음 이야기 (What a colorful world)]

dirigent21 2024. 3. 10. 14:19

우울하고 화나는 마음도 버릴게 없는 나의 마음들.

봄에 핀 꽃들처럼 풍성한 어린 아이들 vs.

세계가 산수화처럼 보인다는 것은 내가 꺼져 간다는 것.

좋은 마음은 지키고 나쁜 마음은 버리는게 아니라

모두 다 끌어안고 가자, 그게 다 네 마음이다.


-제물론

'큰 앎은 여유로워 보이고 작은 앎은 분별적이네.

큰 말은 담백하고 작은 말은 수다스럽네.'

그것이 잠잘 때는 혼들과 교류하고,

그것이 깨어날 때는 몸이 열린다.

함께 접촉하는 것과 얽혀 날마다 마음은 다툰다.

느린 마음, 깊은 마음, 내밀한 마음.

'작은 공포는 겁먹어 보이고,

큰 공포는 넋을 잃어 보이네.'

그것이 쇠뇌를 발사하듯 표현된다는 것은

그것이 옳고 그름을 관장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것에 맹세하듯 머문다는 것은

그것이 우월한 것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가을과 겨울처럼 쇠락해진다는 것은

그것이 나날이 쇠약해진다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자신이 하는 일에 빠져들면

더 이상 회복시킬 수 없다네.'

그것이 밀봉한 것처럼 막힌다는 것은

그것이 늙어 새어나간다는 것을 말한다.

'죽음을 가까이하는 마음은

다시 활기차게 만들 수 없다네.'

기쁨과 분노, 슬픔과 즐거움, 염려와 한탄,

변덕과 고집, 성급함과 자만, 불손함과 가식 등은.

음악이 빈 곳에서 나오고

이슬이 버섯에 맺히는 것처럼,

밤낮으로 우리 앞에서 교차되지만

그것이 싹트는 곳을 알지 못하겠구나!

그만 되었다! 이제 충분하다!

아침저녁으로 이것들을 얻어서 살아가고 있구나!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화가 아주 작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은 직업을 알 수 없는 사람.

직업으로 자신을 포장해야만 하는 사람.

슬픈 삶 : 남한테 금방 드러나는 삶.

큰 삶과 작은 삶의 특징.

큰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나지 않는 사람,

서양과는 다른 동양적인 지혜.

작은 공포는 호들갑, 큰 공포는 멍때림.

자신이 생각하는 마음에 빠져들면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꾸 없다 없다 생각하면

가난을 벗어나지 못함.

돈을 잃어버렸을 때 억지로 잊으려는 행위 자체가

잃어버린 돈에 집착하는 것이어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외로움으로 가는 길.

활기차려면 삶으로 충만하고

무채색의 근사지심(죽음에 가까운 마음)이 없어야 한다.

바람 소리 : 구멍과 바람의 마주침에 의한 풍요로운 소리.

마주치지 않으면 그냥 아무 의미 없이

무채색으로 흘러가는 바람.

바람과 구멍이 마주치듯

버섯과 수증기가 마주쳐야 맺히는 이슬.

장자의 모든 사유에 깔린 바람 이야기의 이미지.

아침저녁으로 소리가 생기고 있다면 바람은 불고 있고

구멍은 있는 것이니 굳이 찾으려고 하지 말라.

오만 가지 감정이 일어난다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다는 증거.

내가 구멍이라는 것을 가르쳐준 사람,

내 안에서 아름다운 소리를 내게 해 준 바람.

소리가 안 나는, 소리가 가라앉은 구멍을 찾지 마라.

찾으려고 하면 다 잿빛 톤으로 변한다.

무채색과 무채색이 부딪쳐서 터져 나온 화려한 소리.

마음에 대한 장자의 근본적인 통찰 :

하나의 마음에만 집중하지 말 것.

사람과 사람이 공명(남의 사상, 감정, 행동 따위에 공감하여

자기도 그와 같이 따르려 함)은 할 수 있으나

그 사람이 어떤지는 그 사람만 안다.

누군가 사라지면 하나의 세계가 없어진다.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20세기 프랑스 소설가) :

하나의 생명이 탄생하면

하나의 세계가 탄생하는 것이다,

하나의 생명이 눈을 감으면

하나의 세계가 닫히는 것이다.

내 세계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풍성한 세계.

인문학의 정신 : 내 세계의 풍성함을

내가 어떻게 지키고 갈 것인가?

남에 의해 내 세계를 무채색으로 되지 않도록.

원초적 출발은 구멍/바람, 버섯/수증기가 아닌,

소리와 이슬이다.

즉, 나의 지금의 감정으로부터 출발.

풍부한 감정이 울려퍼지면 살아 있는 것.

프로이트나 정신과 의사처럼

무의식으로 가거나 종교적 방향으로 가지 않는 것.

풍성한 감정을 스스로 죽이지 말라.

장자의 가르침 : 나는 너희에게 부동심을 가르치지 않는다.

마음은 격정적인 것.

어린 아이들처럼 슬플 때 제대로 슬퍼하고

기쁠 때 제대로 기뻐하라.

우리 마음의 안정은 회사 사장,

시어머니 등을 위한 것이고 너희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감정을 무채색으로 만드는 것이 억압적인 사회, 죽은 사회.

사찰에서 뛰어다니는 꼬맹이를 더 박수 쳐주는 장자.

나의 색채를 풍성하게 해 주거나

인정해 주는 사람을 만나자.

널뛰는 우리의 마음을 껴안은 장자. 


 

나는 글주변보다 말주변이 훨씬 없어서

무척 말이 없는 편이다.

말을 재미있고 조리있게 잘하는 사람을 보면

무척 부럽기도 하다.

반면, 감정 표현은 세련되지 못해서

대체로 직선적이고 원초적이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세련된 감정 표현을 하고

감정을 숨길 수 있을까

나름 노력을 해보았는데 천성을 고치기는 무척 어렵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들으니

그만큼 내가 죽기엔 멀었단 생각이 들어

안심이 되기도 한다.

말을 한 마디도 안하니

상당히 메마른 사람으로 보일 수 있으나

감동적인 음악이나 글을 들으면 누구보다 잘 울고

개그코드가 잘맞는 내 아내와 있으면

배꼽이 빠지게 웃는게 다반사다.

그래서, 굳이 내 감정을 억누르려는 헛수고는

하지 않아도 될 거 같다.

자유로운 영혼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유롭게 감정 표현을 하면서 사는 것이 좋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