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율의 한계를 말하는 이야기.
-제물론
반그림자 : "조금 전에 그대는 걷다가, 지금 그대는 멈췄소.
조금 전 그대는 앉았다가 지금은 일어났소.
그대는 어찌 이렇게 무언가를 잡지 못하고 있소?
그림자 : "내가 무언가에 의존해서 그런가?
또 내가 의존하는 것 또한 다른 무언가에 의존해서 그런가?
나는 뱀의 비늘과 매미의 날개에 의존하는 것일까?
왜 그런지 내가 어찌 알겠는가!
왜 그렇지 않은지 내가 어찌 알겠는가!"
장자 당대 사회와는 달리 바깥 세계가 협소해진 현대사회.
오늘날의 학문 : 원인을 탐구하고 정제해서 결과를 얻는 과정.
문제의 원인(인과관계)을 밝히는 논문.
문제가 벌어져야 우리는 원인을 찾음.
이유를 찾는 삶은 슬픈 삶(나는 왜 태어났을까?),
왜냐하면 이미 문제가 발생한 다음이므로.
반면, 이유를 찾지 않는 삶은 잘 사는 것.
인과율이 발달한 서양 문화.
인과율에 대해 비트겐슈타인(20세기 영국철학자),
'원인을 찾는 것은 책임질 수 있는 누군가를 찾는 것'.
삶에 문제가 있을 때(결과) 부모 탓(원인),
그런데 좋을 때는 부모 탓을 안함.
이유를 찾는 것은 삶이 겉돌고 있다는 것.
'인간은 왜 사랑하는것인가?' 자문 == '사랑이 끝났구나',
'해어질 이유를 찾고 있음'.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 반그림자
(그림자 외곽에 생기는 옅은 그림자).
'왜?'라는 질문을 없애자.
문학적 감수성 : 시란 사진처럼 포착하는 것,
왜를 찾는 사람은 평론가는 되나 시는 못 씀.
누군가에게 칼날이 될 수 있는 '왜'.
최소 두 개의 원인이 있는 그림자 :
습도, 바람에 따라 달라지는 그림자 모양.
그림자, 형체, 햇빛이 있어야 하는 반그림자.
원인은 하나가 아닌 복수다.
원인이 많으면 안되는 인과율(단서).
자연과학에서 예측 못한 결과물이 나오는 이유 : 원인 통제 실패.
직선처럼 존재하는 것이 아닌 원인과 결과.
서양적 사유 : 점이 모이면 선, 선이 모이면 면, 면이 모이면 입체.
장자적 사유 : 입체가 교차하면 면이 생긴다,
면이 교차하면 선이 생긴다, 선이 교차하면 점이 생긴다.
추상적인 점으로 선을 만드는 서구적 사유.
존재를 원자적으로 보지 않는 장자적 사유.
면, 선, 입체를 품고 있는 점.
결과에서 원인을 추론하는 건 상관없으나
원인에서 결과를 추론하면 안됨
(불이 있다해서 꼭 연기가 나는 건 아님).
내 딸한테 보이는 부모의 모습,
그러나 부모의 유전자를 가지고
앞으로 태어날 자식은 알 수 없다.
동아시아 특유의 사고 : 결과(내 눈 앞에 았는 것)에서
원인(내가 생각하는 것)을 찾을 수 있다!
반 정도는 내 마음에 있고 반 정도는 내가 경험하는 것.
형체와 태양을 아무리 들어댜봐도 알 수 없는
그림자의 모양
(입사각, 구름, 습도, 모양 등 수많은 변수속에서 생성).
반그림자의 마음 : 자기 존재에 대한 불안으로
그림자를 탓하는 반그림자.
그러나, 원인을 찾지 않는 그림자 : 나 하나 만들려면 태양,
어떤 형체 등 많은 요소가 모여야하므로 존재 자체가 기적.
그림자의 자신감 : 자신이 있기에
원인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그림자,
형체가 못하는 걸 하는 그림자, 내가 처음이다.
부모가 못하는 것을 하는 아이.
반면, 자신의 고유성을 모르고
하나의 원인에만 의존하려는 반그림자.
다양한 형태가 되고 싶은 그림자에 비해 안정하길 바라는 반그림자.
사회가 안정되길 바라면서 반그림자로 살아가는 우리들.
원인보다 내가 더 복잡하고 내가 더 풍요롭다.
바람 소리가 들렸기에 구멍과 바람이 의미가 있는 것.
우리 하나하나는 엄청난 의미가 있다.
내 아이가 문제가 있다고 본 것 자체가 잘못됐는지도 모른다.
원인을 조작해서 필연적 결과를 만드는 것은 위험한 일.
그림자 하나 죽이려면 태양과 형체를 다 붕괴시켜야 함,
그러므로 한명 한명은 전체 우주다.
곽상(장자를 33권으로 정리하고 주석을 단 중국 진대 사상가) :
독화(우리는 개별로 찬란하게 탄생.
형체나 태양에 비해 비천한 그림자임에도 너 자체로 위대하다.
쓸모없음을 강조하는 장자의 정신에 대한 존재론적 이야기.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라.
회사에서 일을 할 때, "왜"라는 질문을 많이 던질 때가 있다.
그럴 땐, 무진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회사 다니는 것이 괴롭고 짜증났었다.
이런 부류의 짜증은 보통은 고객 가치보다
오로지 임원에게 잘 보이기 위한 요식 행위적 일을 할 때이다.
혹은, 일의 본질적 의미보다
특정 임원의 단기 성과를 위한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
ppt를 이쁘게 만들기 위해 신경쓰면서 가공하는데
엔지니어 입장에서 짜증나는 일.
단지, 어떤 임원은 이 폰트 및 사이즈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교정 피드백을 받는 일.
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신명나게 일을 할 때엔
보통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무의식적으로 "왜"가 설명되었기 때문이다.
훌륭한 리더는 자기와 같이 일하는 사람이
"왜"라는 질문을 되도록 던지지 않게 해야 한다.
물론, 일하기 싫어하는 싹수가 글러먹은 사람은
제아무리 훌륭한 리더가 시키는 일이라도
"왜"를 끊임없이 남발할 것이긴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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