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강신주 무문관 : 주인공으로 살기 [25강]

dirigent21 2024. 8. 17. 11:07

무문관 16칙 : 종성칠조

운문 화상이 말하길,
"세계는 이처럼 넓은데
종이 울리면 왜 칠조의 가사를 입는가?"


자유인이 되겠다면서 왜 조그만 암자에 갇혀 사는가?
때가 되면 복식을 갖추고
예식을 행하는 스님의 삶이 과연 자유롭고
직장인보다 우월한가?
일을 안하는데 잘먹고 살면 누군가로부터 빼앗은 것.
그러한 면에서 농사짓는 스님이 멋져보임.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독일 철학자, 작가, 미학자),
"앞으로 나아간다. 진보한다."
진보(한 단계 내 목표에 가까워짐)란 n보가 아닌 1보.
등산할 때 정상을 보고 걸으면 너무 멀고 힘듦.
처음 삭발했을 때의 '마음'으로 한 걸음씩 가고 있나?
나가르주나 중론-관법품, 
내가 없는데 어떻게 나의 것이 있겠는가?
내 것이 많으면(소유의식) '나'라는 의식(자의식)이 강함.
사람은 영원에 비해 짧게 살아 고통스럽다고 느낌,
무상도 고통스럽다고 느낌.
소유의식을 줄이면 자의식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나에 대한 의식이 없어야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
초기 불교 수행자가 소지할 수 있는 8개 물건 : 
옷 3벌, 허리띠, 바늘, 발우(밥그릇), 면도칼, 물 여과기.
칠조 가사 : 7조각의 누더기옷(남들이 버린 것 재단).


간혹 TV를 보면 
값비싼 피겨, 신발 등 각종 희귀템을
쌓아놓고 신주단지처럼
정성껏 모시는 셀럽들을 보게 된다.
자본주의적 관점에선 비난할게 못된다.
그러나 반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한심하게 보일 수 있다.
얼마나 정신이 공허하면
저런 것을 모으는데 집착할까,
얼마나 가치관이 썩어 있으면
무가치한 곳에 돈을 낭비할까.

물론,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에

엄청난 가격을 메기는

미친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돈을 벌기 위해 그런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 개념을 확장하면
나조차 무척 한심하다.
물건을 사모으지 않을뿐
추상적인 숫자로 표현되는 
돈을 신주단지 모시듯 
고이 모셔놓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미칠대로 미친 세상에서
당장 무소유를 실천하겠다고
자비심에 미쳐 마구 돈을 푼다는 건
더욱 미친 짓이다.
스스로 무덤을 파고 들어가는 
어리석은 행동이기에.
따라서, 보통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갈 땐 
항상 Trade-off를 생각해야 한다.
어디에 돈을 잘쓸지 모르겠거든
일단 낭비하지 말고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선한 청지기 정신으로

큰 물탱크에 맑은 물을 
고이 모으듯 모아 두었다가
잘 알게되는 때가 오면 흘려보내는 것.
이게 현재의 내가 생각한 
가장 적절한 Trade-off다.

 

https://www.youtube.com/watch?v=r2ayfsilY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