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강신주 무문관 : 주인공으로 살기 [23강]

dirigent21 2024. 8. 10. 14:11

문자를 중시하는 교종.
경전과 글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나의 깨달음을 중시하는 선종.
언어도단 : 언어의 길이 끝난만큼 가까워졌단 좋은 의미.
매달린 절벽이 과연 절벽인가?
지금의 상황이 매달린 절벽으로 느껴지는 것이 문제.
회사를 그만두거나 이혼하면 불행한가? 오히려 반대일수도.


무문관 25칙, 삼좌설법 : 
양산 화상이 미륵 부처가 있는 곳에 가서
세 번째 자리에 앉는 꿈을 꾸었다.
그 곳에 있던 어느 부처가
나무망치로 받침대를 치며 말하길,
"오늘은 세 번째 자리에 있는 분이 설법을 하겠습니다."
양산 화상이 일어나 나무망치로 받침대를 치며 말하길,
"대승의 불법은 네 구절(사구)을 떠나
백가지의 잘못(백비)을 끊는다.
분명히 들으시오. 분명히 들으시오."


선종인데 교종스러운 이야기를 하는 화두.
내 삶의 주인이 되면 부처가 되는 것.
깨달음을 얻어 내 삶의 주인이 되는건 불이 붙는 것 같음.
내 불을 지피면 남의 등불을 빌릴 필요 없음.
내가 피운 깨달음의 불빛은
깨닫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전해짐.
나가르주나(용수보살) : 이론불교, 교종에서의 최고봉, 
나가(naga, 용)+아가르주나(agarjuna, 나무).
다르마키르티(Dharmakirti, 법칭) : 
6~7세기경의 인도의 불교 사상가.
나가르주나의 중론 : 중도로서의 대승공관의 입장에서
논리적 가짓수를 없애면서
원시불교 이래 연기설에 새로운 해석,
모든 것은 연기, 무자성, 공.
불생불멸 : 생겨나지도 없어지지도 않고
항상 그대로 변함이 없는 것.
중론의 시작, 팔불중도 : 
생겨남, 없어짐, 영원, 순간, 같음, 다름, 
가는 것, 오는 것을 부정.
선종에서도 부정할 수 없는 나가르주나.
잡아함경 : 4아함의 하나로 중국 유송시대인 435~443 사이에
구나발타라가 인도의 와관사에서 번역한 경전.
무기 : 싯타르타가 14가지 질문에 대해 답하지 않고 침묵.
사구, 14무기 : 딜레마(Dilemma, 두 개의 양립 불가 가설)
세상은 영원한가? (p1)
영원하지 않은가? (무상, ~p1)
영원하면서 영원하지 않은가? (p1 & ~p1)
영원하지 않거나 영원한가? (~p1 | p1)
세계는 한계가 있는가? (p2) ...
여래(깨우친 사람)는 죽은 다음에도 존재하는가? (p3) ...
우리의 정신은 몸과 같은가? 다른가? (p4).
위의 사구로 백 가지의 잘못이 만들어짐.
부처는 왜 14가지 질문에 침묵했을까?
형이상학적 질문,
대답하는 순간 내재된 본질을 받아들여야 하므로.
영원하다고 하는 순간 힘들어짐 : 
영원했으면 좋을 사랑하는 존재가 영원하지 않게되면.
무상을 보게 되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타타타(꼭 그러한 것, 진여) :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보면 고통은 사라진다.
불교의 자비 : 어차피 사라지지만 내가 재촉하진 않겠다.
영원하지 않으면 파괴할 수 있는 것.
초전법륜경 : 부처가 깨달음을 얻고 처음으로 설한 경,
불교의 핵심 사상인 중도, 팔정도, 사성제 다룸.
90% 이상 비슷한 Samyutta Nikaya, 잡아함경.
잡아함경 가운데 생각의 경 : 
아난존자 : "선생님을 떠나 혼자 참선을 하겠습니다."
싯타르타 : "네 눈에 이 꽃이 보이니?"
아난존자 : "네 보입니다."
싯타르타 : "이 꽃은 영원하니? 영원하지 않니?"
아난존자 : "영원하지 않습니다. 무상합니다."
싯타르타 : "바람 소리 들리지?"
아난존자 : "예, 들립니다."
싯타르타 : "바람의 소리는 영원하니? 영원하지 않니?"
아난존자 : "무상합니다."
싯타르타는 내가 느끼는 세계를 강조,
보이는 것에 대한 언어를 부정하지 않음.
이 세상에 완벽한 사각형은 없고 머릿속에만 있다.
그럼에도 세상은 무상하다고 가르치지 않는 싯타르타.
참선의 목적 : 혼자서 뭔가 외우는게 아닌 
내 느낌, 본 것, 판단한 것을 바탕으로 해야.
참선을 한다는 것은 완전히 나로 돌아와
혼자 직접 깨닫는 무상, 그러나 고유의 색을 지닌 무상.
주어에 집착하지 말라.
온몸으로 느끼지 못하는 것에 대해 추론하지 말라.
비트겐슈타인 :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해야 한다.
언어는 쓰다, 침묵은 언어를 떠난 것.
부처의 침묵과 통하는 선불교의 정신.
잘못의 핵심 : 보이지 않는 주어에 대한 집착.


현명한 사람들의 사고 방식은 대체로 일맥상통한다.
성경 가운데 솔로몬의 탄식과도 같은 전도서에
모든 것은 헛되다란 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상한 것들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세상은 무상하지 않고
즐길만한 것들이 언제 끝날지 모르기에 
가능한 최대한으로 빨리 즐기기 위해
무상을 잊고 더욱더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최대한 빨리 많은 것을 즐길 수 있는  
극소수의 행운아들은 막상 즐겨보니
쾌락에 탐닉하면 할수록
바닷물을 들이키듯이 갈증이 난다는 걸
몸소 체험한 후 헛되다란 탄식을 하며
무상이란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솔로몬(물론, 허구일수 있으나 실재했다는 가정하에)은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왕으로서
이 세상의 권력과 부귀영화를 누리는 자를 상징한다.
그래도 솔로몬은 지혜로운 사람이었으므로
헛되다란 것을 깨닫지만 불행히도
대부분의 권력자 내지 재력가들은 아둔하므로

헛되다란 걸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죽을 때까지도 헛되다란 걸 깨닫지 못하기에
그렇게 관성의 법칙에 따라 거뭐지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돈은 쌓일 수 있을지 모르나
사라지는 것을 실감하는 것이 바로
호기심과 재미에 대한 감수성이다.
젊은 시절엔 사라질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사라져가는 것을 느끼게 되니
인생무상을 몸소 절감하는 것이다.
그렇게 젊은 시절 노력하며 돈을 모으고 모았는데
그렇게 모은 돈은 마치 보험과도 같이
뒷배 역할만 할 뿐이다.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대체로 아둔하여
자신이 몸소 체험하지 못하면
가장 단순한 것조차 결코 제대로 배울 수 없다.
비록 호기심과 재미에 대한 감수성은 감소하지만
다행히 증가하는 것들이 있다.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다.
내 아내를 사랑했지만 젊을 때의 사랑과
지금의 사랑은 달라서 
자상함의 색채가 진해지는 것 같다.
언젠가 늙어서 죽음으로써 이별하게 될텐데

(혹은, 예상치 못하게 사랑이 식어서 헤어질수도)
그 때까지 아내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고
아내를 불편하지 않고 

남은 여생을 좀더 편안하게 보내고 
하루하루 재미있게 살자는 쪽으로 바뀌었다.
나이 50에 이르러서야 
삼겹살 내지 수입소고기 위주의 외식 메뉴에서
한우와 고급 참치회를 사먹을 수 있게 되었다.
젊은 시절 참치회를 노래하던 아내의 의견을 묵살하고
이제서야 참치회를 사줬더니
아내가 이런 호시절도 오는가하고
해맑게 웃는 모습이 참 좋다.
지금은 벤츠 타령을 하지만
벤츠를 사봐야 자동차세, 보험료, 유지비만 치솟아
애물단지일 것이니 
그건 안되겠다고 버티고 있다.
그렇게 벤츠를 타고 싶으면 차라리
한 달 정도 리스를 해서 타보라했다.
다행스럽게도
얼마 전 벤츠 전기차 화재 사건,
가수 설운도의 벤츠 급발진 사건이 터져
아주 좋은 핑계거리가 생겨
벤츠 이야기는 쑥 들어갔다.
아내가 원하는 걸 다해주는 것이 
올바른 답은 결코 아니라 생각하므로
거절할 것은 절 거절할 줄 아는 지혜도 챙겨야 한다.

그리고, 아둔한 인간이 결코 알 수 없는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해선 괜한 호기심과

대답하겠단 집착에 빠져선 안된다.

이 세상의 모든 미신과 종교가 그러한

어리석은 집착의 산물이 아니겠는가? 

쓸데없는 주제에 빠지기 전에 항상

그러한 것에 대한 탐닉으로 잃는 기회비용,

주변에 어떤 민폐를 끼쳐 남을 불행하게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w2WCkADP5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