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

강신주 장자수업[18강. 진재 이야기 : 신과 영혼에 대한 애달픈 갈망]

dirigent21 2024. 3. 10. 17:16

진재 : 참 주재자

독자 대상이 지식인에 국한된 제물론.

장자의 의도 : 참 주재자에 대해 의심해야 한다!

인간의 허접한 특성 : 인간은 왜 신을 찾는가?

인간은 왜 영혼을 꿈꾸는가?

자기가 진정 원하는 것도 모르는 하찮은 인간.

-제물론

'타자가 아니라면 나도 없고,

내가 아니라면 취할 것도 없다.'

이것도 근사한 말이지만

그렇게 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만약 참 주재자가 있다 해도 그 징후는 알 수 없다.

작용한다는 것은 이미 믿을 수 있지만

그 형체를 볼 수 없고,

실정은 있지만 그 형체가 없다.

백 개의 관절, 아홉 개의 구멍,

여섯 개의 장기가 모두 갖추어져 있지만

나는 어느 것과 더 가까운가?

당신은 그것들 모두를 좋아하는가?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 있는가?

그렇다면 모든 것들은

신하나 첩이 되는 것일까?

혹은 신하나 첩들은 서로 다스리기에

충분하지 않은 것일까?

혹은 그것들은 차례로

서로 군주와 신하가 되는 것일까?

혹은 거기에 참된 군주가 있는 것일까?

실정을 파악하든 파악할 수 없든,

그 참됨에 대해 보태거나

덜어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진재 이야기의 시작 :

바람 소리의 기적을 어떻게 사유할까?

바람 이야기와 맥을 같이 함 :

구멍, 바람에서 아무리 찾아도 없는 바람 소리는

과연 누가 만든것을가를 찾는 인간들.

기향지부(뇌, 자궁 등 오장육부에 소속되지 않은 6개의 장기),

장기와 연결되어 있는 마음.

동양의 전통 :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한의학,

담대하다 == 쓸개가 크다.

단식하면 정신이 몽롱한 것이 아니라
신이 보일 거라는 등의 착각으로

육체와 정신이 반비례한다는 편견.

정신과 함께 가는 오장육부의 분담 체계.

마른 사람은 지식인이다? : 서구적 편견.

사람의 장기 가운데 누가 주인인지에 관한 논의는

쓰잘데기 없으나 냅둬라.

몸을 초월하는 자아와 영혼을 인정하지 않는 장자,

그것이 있든 없든 뭔 상관이냐?

교회 다녀도, 절 다녀도, 안다녀도, 흥청망청 살아도

다 그렇게 살아가는 거다.

우리 마음은 영혼이 있든 없든,

때론 소심하고,

때론 겁나고 생각이 많아도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는거지

주인된 삶이란 건 없다.

제사의 핵심 : 귀신(돌아오는 영혼),

돌아다니다 오는 영혼을 위해 음식을 차리는 것.

영혼은 존재할까?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

진짜 군주와 같은 내 마음은 어떤 상태일까?

예쁜 마음, 서글픈 마음도 모두 나의 마음.

각각의 장기가 담당하는 사유가

교향악같이 함께 울려 완성되는 전체 사유.

그냥 바람 소리에 주목하여 참 주재자가 있다 생각하든

완전히 없다 생각하든

내 마음이라는 진짜 주인공을 찾자!

세상에서 가장 힘든 '없는 것 찾기'.

진재 찾는 것이 헛짓거리임을 알아도

굳이 그들과 싸우려하지 않고

그냥 내비두고 말리지 않는 장자.

구멍과 바람에서는 못 찾았지만

놀라운 기적이 벌어졌다면

기적을 만든 존재는 있을 것 같다는 느낌.

그 느낌이 신으로도,

불변하는 영혼으로도 이어지는 것.

바람과 구멍의 마주침에 의한 기쁨의 바람 소리 :

이 바람과 계속 있고 싶은 행복과 기쁨이 찾아온 순간!

기쁨을 박제하고 싶은 마음

-> 우리 만남이 우연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

->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조선 시대로부터의 환생 판타지 등.

천왕봉이나 대청봉 일출을 보려면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

나는 처음 올라갔을 때 봤다,

덕을 쌓는다고 증손자가 일출 볼 가능성은 없다.

일반적인 생각 : 행복한 일은 필연, 불행한 일은 우연.

그런데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 입장에서

나쁜 일을 당하면?

이건 업보일 거야란 착각.

예측 못한 불행은 우연으로 넘기면 그만.

불행이든, 슬픔이든 바람 소리에서 멈추는 장자.

전생이 있든, 운명이었든

그 사람을 만나서 이루어진 사랑.

의외로 여유로운 동물의 세계 :

배고프지 않으면 사냥하지 않는 짐승에 반해

먹지 않아도 저장하는 인간.

무조건 잡아먹는 것은 인간 세계에만 존재.

장자의 정신 : 회자정리(만나면 반드시 이별),

이별에 초연,

만났을 때처럼 헤어지는 것.

바람, 구멍 가운데 하나가 무너지면 소리는 끝나는 것.

쓸데없이 의미 부여를 많이 하는 우리 :

불행하고 외롭기 때문일지도,

인간의 애달픈 욕망을 읽은 장자.

바람 소리도, 우리 마음의 이유도

찾을 사람은 찾아봐라,

그런데 한편으로 그쪽으로 안갔으면 좋겠다.

바람 소리가 날 때

구멍, 바람, 신, 운명, 섭리 같은데서 찾는 노력은 하지말고

그냥 그 바람을 즐기는 것이 바람직.

바람 소리를 찾으려는 순간 상대방을 잘 못 보기 때문.

인뢰의 경우 지뢰, 천뢰와 달리 피리를 만드는 사람,

피리를 부는 사람 :

초월자/주재자와 등과 같은 인간 중심주의가 작동하는 것!

인뢰는 불고 싶을 때 불 수 있다;

즉, 신과 같은 억지 개념을 마음대로 끌어옴,

자연에는 없는 인위적인 세계

인뢰보다 수준 높은 지뢰엔

신은 없고 구멍과 바람만 있음.

지뢰보다 수준 높은 천뢰엔 바람만 있음.

인간의 좁은 관점의 추론 :

피리 만드는 사람, 부는 사람도 있으니

내 마음에 무슨 소리가 나면

나 말고 누군가 분 것 아닐까?

장자가 진재에 대해 유보적인 반응을 보인 이유?

없는데 없다고 하면 어려분이 힘들까봐,

있다고 해도 큰 변화는 없기 때문.


오늘 오전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

실화탐사대가 허경영의 최근 근황을 폭로한 걸 봤다.

[현 시점에서 허경영측의 신고로 볼 수 없는 영상이 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_9YFT8rJcM

 

- YouTube

 

www.youtube.com

 

 
 

웃으면 안되는데 TV를 보면서 배를 쥐며 깔깔 웃었다.

어떻게 미치면 저런 사람에게 이용당할까 한심하기도 하고.

만에 하나라도 이런 자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얼마나 끔찍했을까 생각되기도 하고.

허기야, 술꾼도 대통령짓하는 요지경 세상이니

별반 다르진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이 글을 업데이트하는 현 시점엔

 탄핵소추안이 의결된 상태

 그렇게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며

 상남자다운척을 하더니

 가장 남자답지 못한 치졸하고 비열한 행동을 하면서

 쥐구멍으로 숨어 들었다.

 덩치는 곰만 한게 겨울잠이라도 잘 모양이다.

 이런 자를 대통령으로 둔 나라에 사는 내가

 참으로 부끄러울 지경이다.

 다만, 아직도 전광훈, 천공 등과 같은 부류의

 사이비 교주 내지 극우세력의 위대한 대통령이고

 내란 수괴를 지지하는 지지층은 25%나 되니

 차라리 그들의 왕국을 따로 세워주고

 나라를 분리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도 생각한다.]

 

종교와 정치 이야기는 싸움박질만 하게 되니

하지 말라는게 불문율이 되어 있다.

한심한 인간이지만

이 세상의 기원을 밝힐 수 있다는 믿음 하에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광 가속기도 만들고 하는 것이다.

역사속에서도 지금도 계속 되는 비극은

이러한 인간의 뻘짓으로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그냥 겸손하게 이 세상이 창조된 것인지,

아니면 저절로 된 것인지 알지 못한다고 하고

여타 짐승들과 같이 대자연이 허락한 곳에서

맘껏 뛰놀면 그만인데도

굳이 누가 만들었다는 둥,

아니라는 둥 치고받고 싸움박질들을 하고 있다.

사이비 교주들은 대체로 무속신앙과

기독교 교리를 잘 이용해서

사람으로부터 돈을 잘 뜯어낸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는기?

다른 종교보다 훨씬 교만한 자세로

단정적으로 아무 근거도 없이

어떤 절대자가 모든 것을 알고

말 하나로 창조했다는

허무맹랑한 논리로부터 출발해

온갖 철학, 예술로 포장하여

거대한 쓰레기산을 만들어,

수십억의 인간들을 잘 낚을 수 있었던

대표 사례(Best Practice)이기 때문이다.

사이비와 정통 종교는 알고보면

백지 한 장 차이다.

기본적으로 허무 맹랑한 논리로부터

출발하는 건 동일하지만

미풍양속의 선을 넘었느냐,

낚였든, 아니면 좋은 머리를 잘 굴린

소위 '훌륭한' 사람들로부터의

권위를 인정받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무당의 딸이었던 우리 모친은

대한예수교 장로회 소속의 교회

(어느 지역에서 가장 큰 정통교단의 교회, 사이비 아님)에 다니며

그 교회에 헌금을 갖다 바쳤다.

심지어, 내 대학 입학 성공을 기원하는

수백만원(지금의 가치로 따지면 수천만원)의 헌금까지 했는데

이게 아버지를 대노하게 하여

결국 이혼까지 가게된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덕분에, 그 교회에선 우리 모친은 VVIP 대접을 받았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오기 전에

그 교회 담임 목사와 사적인 식사까지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 때만해도 난 한심한 독실이였으므로

그 목사와의 대면을 영광인줄 알았다.

그 때, 그 목사가 학점 잘 따는 비법을 알려주었다.

학점 잘 받으려면

여러 친구들의 레포트를 취사선택을 하여

짜집기를 잘해야 한다는 것.

실제로 대학교에 진학해보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들 하고 있었다.

우리 모친과 같은 사람이 한 두명이 아닌지

그 교회는 승승장구하여 지금도 성업중이다.

요즘 교회들은 좀 바뀌었는지

모르겠으나 대부분의 큰 교회엔

성경에는 없는 희한한

각종 헌금 봉투가 마련되어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내 모친이 허경영의 극강 레벨 교주에게

돈을 바치지는 않았고

내 주변엔 불로유를 몸에 처바르거나

수백만원짜리 천국행 프리패스를 사는

정신 나간 노인네는 없는 것이다.

그런 부모를 만난 것은 참으로

운수 오지게 없는 것으로서

그 자식들이 참으로 불쌍하다.

역사적인 비극이나 가장 가까워야 할 사람이 원수가 되는 건

아주 간단한 행동 원칙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아는 것은 그냥 아는대로,

모르는 것은 그냥 모르는대로

짐승처럼 편하게 살면 될텐데.

진정 신이 있다면 바이러스부터 침팬지까지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자신의 먹을 것 등 귀중한 것을 갇다바치는

퍼포먼스를 펼쳐야 하지만

유독, 인간들만이 이런 뻘짓을 벌이고

심지어 자신이 믿는 신을 인정안하면

서로 죽이거나 고문하기까지 한다.

인간으로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불가지론자가 되는 것이다.

신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데

현재까지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으니

그냥 없다고 생각하고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선에서 자유롭게 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