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어제 생생하면서도
진기한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나
난 오케스트라 지휘자 선발 장소에 있었고
7명중 4번째 순서에 지정되었다.
지정곡은 바로 베토벤 교향곡 5번이었다.
그 오디션은 특이하게
각 악장의 플레이타임을
사전에 정확히 지정해야만 했다.
그 이유는 비트를 연주하는
악기의 템포를 설정하기 위함이란다.
어떤 예시 영상을 보여주는데
팀파니같이 생겼는데
팀파니보다 두 배는 넓어 보이는
생전 처음보는 악기로
대규모 오케스트라
한 가운데에서 비트를 주고 있었다.
어떤 곡의 템포는
지휘자의 절대적인 권한이고
아주 세밀하게 조금씩 변하는데
마치 메트로놈과 같은
타악기가 정확한 비트를 주는 가운데
어떻게 연주를 이어나가야 할지
고민하는 가운데 꿈에서 깼다.
아직도 이런 꿈을 꾸는 것보니
지휘자가 못된 미련이
의식 어딘가에 깊숙히
남아있나 보다.
난, 어떤 음악을 접할 때
특히, 내가 사랑하는 교향악적 음악을 접할 땐
나만의 템포, 다이나믹스, 음색 등을
정해 놓고 지휘자가 된 듯
상상하는 편이고
내가 들었던 컨텐츠 가운데
최고의 음색을 상상하며
내 해석과 버무려
머릿속으로 연주하는걸
즐기는 편이다.
베토벤 교향곡 5번은
너무나 유명해져
특히, 1악장의 운명의 테마는
누구나 알만큼 널리 사용되어
매우 식상해졌다.
베르디 레퀴엠 가운데 "Dies irae"에서의
진노의 테마 역시 마찬가지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너무도 빈번히 효과음으로 사용했으니까.
그런데, 이 곡은 1악장에서의 운명의 테마는
정말 빙산의 일각이고
그보다 훨씬 훌륭하고
주옥같은 부분으로
정말 알차게 구성된 작품이다.
내가 이 곡을 본격적으로 사랑하게 된 계기는
20대 어느날 우연히 TV를 틀었는데
라즈시절같이 보일 만큼 훤칠한
콜린 데이비스경이 지휘하는
5번 교향곡이 흘러나왔고
앞부분은 놓쳐 3악장부터 시작되었다.
3악장과 4악장이 이렇게 훌륭한지
그 때 처음 알았고 그 이후,
5번 교향곡의 전 악장에 매료되고 말았다.
그 이후 한 달 이상 틈날 때마다
이 음악만 줄기차게 들었던 것 같다.
교향곡의 1악장은
보통 소나타 형식으로서
제시부-전개부(발전부)-재현부로서
ABA'의 구조로 되어 있다.
베토벤 이전의 교향곡에서의
재현부는 A와 A'가 거의 비슷해서
다시 한 번 복습하는 것 이외에
큰 의미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다소 따분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베토벤은 이런 관행으로부터
과감히 탈피하여
이 작품에서도 A'가 마치
제 2의 발전부와도 같이
단순한 반복을 넘어
운명의 절정을 향해 불타오른다.
TV 프로그램에서의 효과음악은
보통 주제 위주로 짤막한 부분만을
발췌하므로 이 부분이 마치
교향악의 핵심이자 전부라 착각할 수 있지만
사실, 교향곡에서 소나타 형식으로 된 악장의
진수는 발전부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제 1주제, 제2 주제
(때론 더 많은 부주제와 전이구까지)가
다양한 조바꿈과
선율적 증감, 변형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더욱 넓어진 정서, 음향적 다이나믹스까지
더해져 다채로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비록 식상하게 된 1악장이지만
시대를 초월하는
불멸의 혁신적인 곡이라 할 수 있다.
8분 쉼표를 포함한
8분음표 네개(소위, 운명의 노크)와 긴 음표
(2분 음표의 결합으로 변형되기도 함)의 조합,
4분 음표 네 개,
8분 음표 네 개만으로
구성된 단순한 음악적 재료로
이토록 탄탄한 음악을 구성한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운명의 노크 주제는
1악장에서 그치지 않고
이후 3,4악장에도 등장한다.
3악장 스케르초에서
셋잇단음표 형식으로
다시금 메인 주제로 변형되거나
4악장의 마지막 코다에서의
장조로 변형된 상승 선율로서
화려한 피날레를 맺기까지
이 음악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2악장은 주제와 변주곡 형식으로서
두 가지 주제,
즉 저음현에 의한 서정적인 주제와
관악으로 구성된 희망의 주제가
잘 어우러진다.
특히, 관악으로 구성된
두 번째 주제는
뭔가 완결된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을 주는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서주가 이를 완성한 것처럼 들리도 한다.
즉, "도레미미파솔미파솔미파솔"로서
비록 I도 화음 이내에서 완성된 부분이나
도가 아닌 딸림음으로 끝나
뭔가 반종지와 같은 느낌을 주는데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는
"라시도"가 추가됨으로써
IV-V-I의 완전 종지를 맺기 때문이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베토벤 교향곡 5번의 2악장의
두 번째 주제에서 힌트를 얻은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니
어디까지나 내 사견일뿐이다.
아래 영상의 첫 부분을 들으면
우리 귀에 익숙한 소절일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lNLsLwflVuQ
3악장과 4악장은 악장 구분이 되어 있으나
한 몸이나 다름없다고 볼 수 있다.
3악장은 베토벤 이전엔
보통 미뉴엣과 트리오로 구성되었으나
베토벤 이후 빠른 3박자 리듬의
스케르초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다.
스케르초 악장은 9번 교향곡에서는
2번째 악장으로 나오기도 한다.
3악장은 저음 현악에 의한 음산한 선율 이후
비장한 운명의 노크 테마가 장중하게
진행되고 난데 없는 푸가토가 이어지며
분위기가 밝아진다.
아마도, 운명이란 엄청난 힘의 지배하에서도
굴복하지 않는 생명력이 요동치는 가운데
4악장에서의 승리를 준비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3악장 마지막 부분에선
일종의 페달 포인트로서
아득히 먼 곳 어디선가
아련히 들리는 듯한
팀파니에 의한 전이구와
현악에 의햔 c단조에서 C장조로의
살짝 전환되고
마침내 4악장의 화려한
C장조 주제가 터져나온다.
수많이 들었지만
들을때마다 가슴벅차오르는데
이런 음악을 처음 경험했던
베토벤 동시대 사람들은
얼마나 감동으로 벅차올랐을까?
빛의 세계로 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운명과의 팽팽한 힘겨루기는 계속되며
음악의 극적 요소가 가미되는 가운데
때론 마치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우렁찬 소리가
터져나오기도 한다.
이와 같은 운명과 의지간의 긴장이 지속되다
마침내 의지가 운명을 장악하며
운명의 테마는 완전한 승리의 C장조로 바뀌게 되고
마지막 코다에 의해
환희에 찬 희극으로 마무리 된다.
이 곡을 꽤 오랫동안 듣지 않았는데
다시 들어보니 여전히
전율과 감동이 전해진다.
명곡의 힘은 바로 이런게 아닐까.
이 곡은 특이하게 템포에 관한
자유도가 넓은 편이다.
즉, 빠르게 연주되어도
느리게 연주되어도
제각기 들을만 하다는 것이다.
보통 1악장은 7분 정도의 빠르기가
다수의 해석이지만
엄청 빠른 경우엔 7분 미만으로 끝나고
다소 느린 경우엔 8분에서 9분 사이에
끝나기도 한다.
7분 20초에서 7분 50초 정도가
뭔각 팽팽한 긴장을 주면서도
웅장함을 해치지 않는 템포로 생각된다.
너무 빠르면 긴박감은 높아지지만
다소 경박하게 들릴 수 있고
반대로 너무 느리면
긴박감이 반감되기 때문이다.
3악장과 4악장의 사실상 한몸에 가까워
어느 정도 tempo relation관계에 놓여 있다.
즉, 3악장에서는 스케르초로서
보통 4분 음표 세 개가 한 마디로서
각 마디(4분 음표 3개)에 한 비트를 주는 방식으로
지휘를 한다.
4악장은 4분의 4박자로서
4분음표 4개가 한 마디를 이루지만
보통 알라 브레베와 같이
2분 음표 단위(4분음표 2개)로
한 비트를 주는 방식으로
지휘를 한다.
tempo relation에 의해
3악장에서의 한 비트와
4악장에서의 한 비트가
거의 같게 된다.
따라서, 메르로놈 숫자로
약 1.5배수 관계에 있으므로
3악장이 느리면
4악장도 같이 느려지는게 정석이다.
보통 다수설은 3악장과 4악장을
다소 빠르게 연주하여
4악장을 알라 브레베처럼 취급한다.
그러나, 악보상으로는
4악장은 2분의 2박자가 아닌
4분의 4박자로서 알라 브레베는
분명 아니다.
알라 브레베 형식의 2분의 2박자에선
보통 16분 음표는
거의 등장하지 않지만
4악장에선 꽤 많은 곳에서 등장하므로
알라 브레베는 분명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연주에서
4악장을 매우 빠른 템포로 연주한다.
그렇게 연주해도 들을만하다.
1. Sir Colin Davis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지휘자는 아니다.
그렇지만 이 작품에 빠지게 된 계기를
제공하신 분이다.
내가 TV에서 본 건 이 음반 사진보다
더 젊은 시절로 보였고 실황이었다.
이 음반은 이번에 처음 들어보았는데
내가 생각하는 템포와는 거의 일치한다.
다만, 음악이 약간 순하게 들리는 편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Yf9xxfMwV80
2. Zubin metha
다소 느리게 해석하는
소수파에 속하는 연주다.
맨 마지막 피날레가 좀 느려 보이는 것이
단점이긴 하나 훌륭한 연주다
이 지휘자말고도 푸르트뱅글러나 번스타인 등이
느린 템포로 해석하는 편이며
(첼리비다케 것은 듣지 않았으나
아마도 젤 느리지 않을까 생각됨)
가끔 클래식 FM에서 흘러나오는 가운데
느린 템포 해석을 접하기도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yeNvVtAPZxE
3. 토스카니니
옛날 같으면 이런 영상 보기 매우 힘들었을테지만
세상이 좋아져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다.
오래전 영상이라 음질이 좋지 않으나
토스카니니가 이끄는 밀도깊은
연주를 느낄 수 있다.
꽤 빠른 해석으로 1악장은 7분 미만이고
전체 연주 시간이 30분도 안되지만
전혀 경박하게 들리지 않고
밀도 깊은 소리가 상상되는 연주이다.
다만, 간혹 현이 살짝
엉키는 소리가 나기도 하고
단절음이 너무 짧고 날카롭게
끊기는 느낌인데 이는
토스카니니 특유의 건조한 스타일인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UCryL4W7CCM
4. 카라얀
카라얀 젊은 시절의 실황과
말년 시절의 실황 두 가지를 모두 볼 수 있다.
여기 있는건 후자에 해당한다.
개인적으로 말년 시절의 연주를 더 선호한다.
아쉬운 점은 4악장 제 1주제의
관악기 연주가 다소 레가토적이란 것.
https://www.youtube.com/watch?v=UcifcqMY0GM
5. 가디너
아마도 여기 있는 영상 가운데
가장 빠른 버전일 것이다.
내가 생각한 빠르기는 아니지만
다이나믹스 측면에서의 해석은
가장 맘에 들고 악기 소리 역시 가장 훌륭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베토벤의 해석에 있어선
순한 맛보단 매운 맛을 선호한다.
그게 베토벤의 성격에 부합하기 때문에
원초적인 거칠고 화끈한 성격이
음악 해석에 적나라하게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lNtb-ly1I_k
6. 정명훈
개인적으로 이 분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나
이 연주는 칭찬해주고 싶다.
이 연주말고도 다른 연주가 하나 더 있는데
이걸 더 선호한다.
악장이 외국인이고 군데군데 외국인이 있어서인지
모르지만 해외 오케스트라스런
다이나믹한 소리가 꽤 나온다.
그리고, 해석면에서도 크게 무리가 없다.
다만, 아쉬운 것은 8분 48초에서
목관 파트에서 삑사리 비슷한 소리가 나오는데
그 마디에 클라리넷만 나오도록
되어 있는 것으로 봐선
클라리넷의 실수가 아닌가 생각된다.
C와 Eflat만 나와야 하는데
고음의 쉰 소리가 잠깐 나온다.
https://www.youtube.com/watch?v=IBhEsRY2gg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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