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랑거철 :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는다,
권력자에게 저항할 때 쓰는 표현.
피했다 돌아오면 별일 아닐 수도 있다.
-인간세
그대는 저 사마귀를 모르지는 않겠지?
사마귀는 앞발을 사납게 치켜들고 흔들며
수레바퀴 자국에 서서 수레와 맞서려 하네.
수레를 감당할 수 없음을 모르는 것이지.
그대는 저 호랑이 기르는 사람을 알지?
그는 감히 호랑이에게
살아 있는 동물을 먹이로 주지 않는다네.
호랑이가 살아 있는 동물을 죽이다
드러내는 성냄 때문에.
또 그는 감히 호랑이에게
동물을 통째로 먹이로 주지 않는다네.
호랑이가 그것을 찢어발기다
드러내는 성냄 때문에.
호랑이를 기르는 사람은
호랑이가 배고프거나
배부른 때를 맞추어
호랑이의 성냄을 조절하네.
호랑이가 인간과 유가 다른데도
자신을 기르는 사람에게 고분고분한 것은
그 사람이 호랑이의 기질을 따랐기 때문이고,
호랑이가 기르는 사람을 물어 죽였다면
호랑이의 기질을 거슬렀기 때문이네.
저 말을 아끼는 사람은 광주리로 똥을 받고
대합조개 껍데기로 오줌을 받아 준다네.
마침 파리나 모기가
말 등에 들러붙으려는 것을 보고
불시에 말 등을 때리면 말은
재갈을 부수고
말을 아끼는 사람의 머리를 발로 차고
그의 가슴을 걷어차게 되네.
아끼려는 의도는 좋았지만
아끼는 방법에 문제가 있었던 셈이네.
멀리서부터 들리는 기병의 소리 :
사기를 땅에 떨어뜨림.
수레에 깔린 사마귀 == 말에 차인 마주.
당랑 이야기 :
안합(난폭한 위나라 태자의 사부가 되어야 하는)과
거백옥(재야의 고수)의 이야기.
거백옥의 조언 :
태자가 갓난아이가 되면 같이 갓난아이가 돼라,
태자와 맞춰서 가라.
수레바퀴 :
전쟁과 국가 탄생의 시작이자 청동기 문화의 상징,
위신재(권력자의 위신을 나타내는 수단).
국가주의 : 지배와 복종이 관철되는 관계,
좁게는 집안에서 강요되는 가부장적 질서.
지배, 복종 관계를 벗어나겠다는 사마귀,
질 줄 알지만 싸우고 있어 박수받아야 하는 존재.
빼앗을 수는 있지만 지배는 하지 못하는 유목민.
수레에 탄 사람들,
"우리는 문명이고 너희들은 야만이야",
동아시아/아프리카인을 야만인 취급한 서양인.
식민지 국가에 만들어졌던 기차.
근대 사회의 시작 :
자본주의 발달로 더욱 극심해진 전쟁.
유목 사회처럼 국가가 없는 사회에서는
크게 일어나지 않는 전쟁.
야만이라고 불리기를 거부한
사마귀(야만의 상징) 한 마리.
목숨에 연연해하며
복종하고 있는 수레에 탄 사람들.
마차를 끄는 말들의 소리 : 역사의 흐름을 상징.
20만여 년의 인류 역사상
5,000년도 되지 않는 국가주의의 역사.
높아지는 국가의 위세에 따라 커지는 고분의 규모.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20세기 유대계 독일 평론가로서
마르크스주의자이자 철학자),
'혁명이란 미래로 진보하는게 아니라
폭주하는 기관차를 멈추는 것에 있다'.
사마귀의 감수성 :
수레가 돌아다닌다고 해서
초원이 좋아질 것이라 생각 안함.
사마귀가 살아남는 두가지 방법 :
뛰어올라 수레에 타기,
살짝 피하기(장자의 방식).
살짝 피할 수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단 의미.
대붕처럼 힘이 충분해지면
수레바퀴 앞에 서 있을 수 있는 것.
나의 의지는 가지고 있되
상황에 맞춰 움직이자.
사마귀가 수레에 타면 있는 호랑이와 말,
호랑이(왕)를 길들여 기르는 것이 유학자의 길,
말(약자)을 아끼는(안씀) 것이
묵자의 길(겸애, 비공[공격반대]).
묵자의 이념 :
힘들 때 도와주고 아껴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으니
약한 사람을 공격하지 말고 도와라.
애민 : 백성을 부리지 않음,
아끼면 상대가 소중해서 안 시키고 내가 함.
그러나, 두 가지 길로 가더라도 모두 죽음.
묵가가 죽는 이유 : 덧없음,
가난한 사람들의 꿈은
가난이 없어지는게 아니라
내가 부자가 되는 세계.
말에 남아있는 억압의 기억으로
살짝 때려도 과잉반응.
호랑이의 본성 : 지금은 맞춰주지만
뜯어 먹으니 언젠간 뜯어 먹힘.
수레에 올라타 멈추는게 낫지 않나?
멈추려고 탔지만
지배와 복종 관계에 타협하고 계속 타게 됨.
사회에 대한 진정한 통찰 없이
정치권에 들어간 사람들에 대한 풍자.
정치인들에게 무모하게 수레를 막으려는
사마귀만큼의 의지라도 있을까?
군주의 지지를 받으면 재상,
민중의 지지를 받으면 민중의 지도자,
누가되든 호랑이와 수레를 유지하는 역할,
결국 이르게 되는 것은
사납지 않은 호랑이와 아낌을 받는 말.
영토 국가의 탄생을 막으려 애쓰며
장렬하게 죽었던 지식인들.
전국시대 제자백가 :
대부분 지배계급에 편승하려는 세력,
유가/묵가/법가 너희들이 도를 알려준다고?
너희들이 수레를 막으려 했던
그 사마귀만큼 위대한가?
지배와 복종이 없으면
지식인도 사라지고 다 일해야 하는 사회.
호랑이를 없애지도
말을 풀어주지도 못한 지식인들.
권력에 밀착한 지식인들,
민중을 아낀다면서
계급을 없애지 못하는 민중지도자들,
어느 길이든 수레에 타서 유명해져
박수받는 존재가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지성인들은 호랑이와 말의 세계
그 어딘가에 편승하고 있는 것.
장자의 해법 :
수레 근처에서 먹고살겠다는 의식을 버려야.
좁은 시야로 수레와 바퀴 자국만 보면
죽게 되는 결말.
시야를 넓히면 수레바퀴 자국 옆의
많은 여백의 땅이 보일 것,
사마귀가 옆으로 뛰는 것이 대붕이 되는 길.
떠날 수 있다면 언제든 돌아올수도 있고
수레에 타더라도
왕을 길들이거나 민중을 돌보지 않음.
장자의 모든 이야기는 대붕의 날개짓일수도.
자유는 시키는 것이 아닌
보여주고 기다려주는 것,
날아갈 때 말리지 않는 것,
자유로우라고 정리해고?
우리는 보통 이분법적 사고 방식으로
이쪽은 적폐, 저쪽은 정의라고 판단한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 현실을 보면
결코 그렇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고
모든 정치는 근본적으로 악하여
어느 편이 권력을 잡든
큰 소용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민주화 운동으로
민주주의 사회가 열리면서
시위와 집회의 자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는 늘어났을지 몰라도
억압기의 시대와 비교해보면
사람들간의 끈끈한 정은 갈수록 사라지고
빈부격차는 오히려 극심해졌다.
물론, 정치에도 악함의 정도는 분명히 존재한다.
입에 답기도 민망할 정도로
더러운 쓰레기 세력과
재활용 쓰레기는 될까말까할 정도의 세력.
그래서 우리가 하는 투표는 궁극적으로
자신이 생각하기에
조금이라도 덜 더러운
쓰레기를 뽑는 것에 불과한데
안타깝게도 더 더러운 쓰레기를 뽑는 것이 현실이다.
사람들은 다주택자들을 욕하면서도
자기가 갖고 있는 집의 가격은
한 푼이라도 떨어져선 안되며
무조건 올라야 한다고 생각하며 바란다.
그래서 이현철 같은 부동산 전문가는
집을 사는 사람은
과연 실거주 목적으로만 사는 것은 결코 아니며
집을 사는 사람은 모두
잠재적 투자 세력이라고 봐야한다고 얘기한다.
즉, 시골이나 입지가 안좋아
감가상각으로 가치가 하락되더라도
그냥 살고 싶은 집을 사는 사람을 제외하고
영끌 내지 대출 레버리지로
적어도 수도권 아파트를 매수하는 사람은
모두 잠재적인 투기 세력이라고 봐야 한다.
그런 사람은 결코 다주택자들이나
투기 세력을 욕할 자격이 없다.
그들 역시 투기 세력이기 때문이다.
지구 온난화를 궁극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모든 문명을 쓸어버리는 것 내지
인류 멸종인데
이건 너무 과격하겠다.
그 다음으로 과격한 것은
과잉생산, 과잉소비를 하게 하는
자본주의를 쓸어버리는 것인데
공산주의 역시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철저히 증명되었다.
어느 사상이든, 어떤 세상이든
대체로 가장 독한 자들이 권력을 잡으니까.
인간 각자 스스로 욕망을 통제하여
무소유 정신으로 사는 것
역시 불가능에 가까우므로 해법은 없다고 본다.
물론, 에너지 혁명을 일으켜 핵융합 기술 내지
혁신적인 에너지 기술이 개발되면
더욱 현란한 기술 잔치는 벌어질지언정
과잉 생산, 과잉 소비는 오히려 늘어날 것이라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고 본다.
따라서, 현재로서 할 수 있는 차선책은
지구를 파괴하는
모든 것에 대한 생산을 최소화하고
가능한 아껴쓰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 또한 가능할까?
전 세계적으로 아이폰을
2년마다 교체하지 않고
4년마다 교체할 수 있게 해보라.
그러면 애플의 주가 내지
관련 부품주는 반토막이 날 것인데
주가 하락을 용서하지 않는
욕망에 사로잡힌 자들이 과연 좋아할까?
낭떠러지를 향해 오늘도 달려가는
수레를 멈출 방법은 불행히도 없다.
영화 내지 성경에 나오는 외부 요인,
즉,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외계인들이 혹시라도 지구를 멸망시키거나
소행성이 떨어져서 지구를 깨버리지 않는한.
따라서, 수레를 어떻게든 해서 멈춰 세우겠단
생각은 아예 버리고
하찮은 지식으로 뭘 해보겠다고도 하지 말고
가능한 자신을 불행에 빠뜨릴 요인을 피해다니다가
더 이상 살 수 없는 환경이나 처지가 되면
추한모습으로 쓸데없이 오래살고자
발버둥치며 민폐끼치지 말고
자연스레 세상을 떠나는게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하겠다.
그 날이 오기 전에 민폐는 끼치지말고 할 수 있는한
타인과 대자연은 조금씩 배려하면서
자신들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맘껏 사랑하고
대자연의 선물을 만끽하다
겸허히 자신의 운명 내지 멸종을 받아들이는 것이
인류가 무한히 쌓아놓은 죄에 대한
최소한의 속죄가 아닐까.
있지도 않는 신이나 우상에게 아무로 속죄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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