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볕 아래에서
선수들과 함께 서 있고
아무리 덥거나 추워도
선수들을 운동시켜 놓고
나만 편하게 있지 않는다.
내가 공을 한 개라도 더 쳐줄 때마다
선수들의 폼이 나아지는 모습이 보이는데
어떻게 즐겁지 않을 수 있을까.
100개든 1000개든 펑고를 쳐주고
배팅 연습을 해주며 공을 몇 개를 던져도
힘이 든다거나 나이를 먹어서
이제는 못 하겠다는 의식은 전혀 없다.
그런 의식이 끼어들기 시작하는 순간
몸은 늙는다.
한계란 그런 것이다.
내가 가르친 선수들 중에는
자기 한계를 뛰어넘은 케이스가 많았다.
처음엔 난감해하던 선수들도
쉼없이 연습하고 문제에 부딪히는 가운데
아이디어를 찾아내가면서 엄청나게 성장했다.
인간의 잠재 능력이라는게
어마어마하다는 걸 나는 살면서
몇 번이나 확인했다.
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식이 커질수록
잠재 능력도 조금씩 깨어나 꽃을 피운다.
그런 어마어마한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인 것이다.
묵묵히 내 할 일을 하며
앞으로 걸어가다 보면 어느새
한계는 저 멀리 내 뒤에 있었다.
발휘하지 못한 대다수의 잠재 능력은
바로 스스로가 설정한 한계 속에서 사라진다.
지금 당장 산이 무너지고
파도가 몰아친다고 생각해보라
바람을 탓하며 핑계를 찾는 사람은
없이 오로지 살 생각뿐일 것이다.
한계를 넘어서려면 모든 일에서
그런 의식을 가져야 한다.
나는 못 한다고,
내 재능 밖의 일이라고 불만만 늘어놓고
있으면 시간이 얼마가 가든 제자리다.
어떤 한계를 마주하든 돌파하는 것은
'의식'의 문제다.
아직도 나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운동하는데
이게 한계를 없애는 작업이다.
나이라는 한계 역시 의식만 있다면
얼마든지 넘어갈 수 있다.
정신력도 마찬가지다.
여든이면 언제 치매가 올지 모르는 나이다.
그래서 나는 틈틈이 과일, 나무, 꽃, 선수 이름
등등 적을 수 있는 것들을
혼자 노트에 적어 내려간다.
어제는 열 개를 적었다면
오늘은 스무 개를 적으려 해보고
내일은 서른 개를 적으려 해본다.
그렇게 하다보면 그 틈에서 살아서 꿈틀거리는
무언가가 느껴진다.
약점도 사라져 간다.
살 길이 생겨나고 스스로에 대한 동기가 생겨난다.
언젠가는 나의 몸도 낡고 무더져
더 이상 펑고를 쳐주거나
선수의 이름을 기억조차 못할 때가 올 수 있다.
그러나 'try'를 거듭해서 한계를 높이다 보면
문제가 없을 거라고 믿는다.
그저 편하고자 한다면
죽어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리더의 기본 덕목은 솔선수범 및 동고동락이다.
자기와 같이 일하는 사람이 고생하는데
나몰라라하며 편히 있는건
리더라고 할 수 없다.
이러한 면에서 감독님은
리더의 가장 근본적인 기본 덕목을 실천하셨다.
예수, 석가와 같은 종교 창시자의
공통 덕목 역시 이러한 마음가짐이었다.
그러했기에 수십 세기가 지났어도
그 지도자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허구로 가득한 종교적 가르침을
진리로 알고 열심히들 따르고 있지 않은가.
반면, 소위 한국을 포함하여
각국의 대부분의 지도층의 모습은 어떠한가.
바난할 가치조차 없는 자들이 아닌가.
여기에 우리네 인생의 근본적 비극이 있는 것이다.
훌륭한 리더는 인간문화재급으로 귀한 반면,
그렇지 않은 수많은 리더를 참아가며
존버해나가야 하는 인생이니까.
이제 넉달 반이 지나면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50살이 되기에
가끔 오십 시리즈 책을 보고
유튜브가 추천으로 올라오는
시니어 컨텐츠를 자주 본다.
관련 컨텐츠를 보다보면 겉포장지 즉,
디자인 내지 목소리만 바뀌고
내용은 비슷비슷하다.
그걸 듣고 있으면
그래 이만하면 되었으니
욕심을 버리고 괜히 나대지말고
쥐죽은 듯 얌전히 살다
때가되면 미련없이 떠나자란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데, 김성근 감독님은
이와는 정반대의 말씀을 하신다.
그리고, 100세가 넘은 철학자 김형석 교수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시는데
이런 부류가 소위 소수파이다.
아마도 80세, 혹은 100세까지 사신분으로서
50세가 되었으니 자족하면서
분수에 맞게 살자는 한참이나 어린 것들이
우스워보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 분들은 비범한 능력과
각고의 노력끝에 감히 범인들이
따라갈 수 없는 길을 개척하는데 성공하신
극히 드문 케이스이기도 하고.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 판단할 문제는 아니고
이건 각 개인의 선택의 문제이다.
그럴 수 없는 사람인데 죽을때까지 치열하게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면서 살 필요 없고
어쩌면 평범한 사람들은
더 이상 고생하지말고
편한 길을 가는게 정답일 수 있다.
오늘 대학 동기 단톡방에서
정년이 보장되는 안락한 국책연구소를 나와
사업을 하겠다는 친구의 출사표를 보았다.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편으론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물론, 괜한 걱정일 수 있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과감한 도전을 할 수 있는
친구가 부럽고 존경스러울 뿐이다.
곧 50에 다다를 내 인생을 지금에 와서돌아보니
30세를 기점으로 많은 것이 바뀌었고
40세를 기점으로 크리스찬의 길을 떠났으며
45세를 기점으로 또 한 번 많은 것이 바뀐 것 같다.
30세가 되기 전엔 뭘 하든
실패한다는 생각이나 두려움 없이
목표를 세우고 작정하고 도전하면
이뤄나갈 수 있었다.
그 전까진 시험에서 떨어져 본 적 없으니까.
물론, 이는 공부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30세 전후 대학원 생활과
변리사 시험 공부를 병행하면서
최종 2차 시험에서 낙방하였는데
이는 내게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이 때부터 인생은 꼬이기 시작하여
내가 가고 싶었던 회사의 면접에서도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떨어졌다.
이후 내집 마련에서도 실수를 하며
결국, 내 인생은 망했단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30세 무렵의 거듭된 실패가 트라우마로
남아 오랜 세월 나를 괴롭혔던 건
어려서 실패를 해보지 않아 실패의 훈련이 안되었기 때문이다.
30세 무렵의 거듭된 실패는
4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새상에서 가장 불행하단 생각속에
나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너는 쉴 자격조차 없으니
채찍질만 해대는 가운데
어느덧 40대 중반에 이르러
삶이 안정되어 가운데
정말 우연찮은 계기로
5년간 나 자신과 화해하는 법을
조금씩 배우게 되었다.
40대 중반에 나 자신과 화해하는 길로
접어든 건 생각지도 못한 우연한 계기였다.
허영만 화백의 부자사전이란 만화책을
공공도서관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거기 묘사된 부자들의 모습이
내가 지금껏 생각하던 부자와는 달리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부자들은 하나같이 소비를 통제하고
돈을 귀히 여기는 특성이 강했는데
나는 30세 무렵부터 나 자신에겐
결코 상을 주지 않겠단 생각으로
극도로 소비를 통제하는 가운데
어떻게 하면 근검절약하며
잘 살아갈지를 몸소 터득해왔기 때문이다.
멀쩡히 온수가 잘나오는 집임에도 불구하고
가스비를 아낀답시고 한겨울에도
보일러를 틀지 않고 냉수욕을 했고
(지금도 웬만하면 몸 컨디션이 허락하는한
한겨울에도 냉수욕을 하지만)
45세 전까지 집에 에어컨조차 들이지 않았었다.
내 기준엔 너무나 비싸보이는 커피를
매일 사마시는건 내겐 전혀 상관 없는 일이다.
커피조차 끊어버렸으니까.
꼭 필요한게 아니라면 쓸데없는 뭔가에
돈을 쓰겠단 생각도 전혀 들지 않는다.
돈은 쓰는 것보다 모으는게
훨씬 편안하고 행복하기에.
물론, 정말 가치있는 곳에 쓰는게
더 좋은 일이겠지만
아직까지 모으는 것보다
더 재미있고 가치있는 걸 발견하진 못해서
되도록 그냥 모으고만 있는 중이다.
돈을 많이 써봐야 뭐하겠는가
스스로 자본주의 노예인증할
확률만 올라가지 않겠는가.
돈을 많이 쓰지 않고도
세상엔 즐길만한 것들이 많은데
뭣하러 돈을 써야 하겠는가.
지금껏 난 실패한게 아니라 부자가 되기 위한
기본 과목을 잘 이수했으니
부자의 기본 교양과 투자 원리를 알면
더 큰 부자가 될 수 있겠구나 생각하며
그 때부터 투자관련 책을 읽으며
나름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투자란 게 결코 쉬운게 아니었고
무엇보다 심리적인 측면이
매우 중요하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비록 투자로 돈을 벌더라도
따박따박 들어오는 급여로 버는 것에 비해
내 성향상 마음이 편하지 않았고
근본적인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오히려 투자 서적을 읽고
관련 컨텐츠를 보는 가운데
투자에 도움이 되는 기본 교양에 꽂혀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즉, 투자를 공부하려 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인문학에 꽂혀
어찌보면 global minima가 아닌,
local minima에 빠지게 된 것이다.
local minima에 한동안 빠져있다보니
또다른 local minima들을 찾는 가운데
global minima를 찾아볼까 하는
의욕이 조금씩 생겨나는 것 같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30세 무렵의 크나큰 세 번의 실패는
예방 주사가 되었다.
적어도 고시공부는 내 적성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길이란 걸
뼈저리게 깨달아 아무리 회사 생활이 힘들어도
변리사 내지 고시공부하겠다고
회사를 때려치는 우를 범하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돌고 돌아 차선책으로 갔던
회사에서 나름 재밌게 일하며
열심히 경력을 쌓아
30세에 내가 가고 싶어했던
회사로 갈아탈 수 있었다.
만약, 차선책의 회사를 거치지 않았다면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를 오히려
훨씬 일찍 떠났을지도 모른다.
물론 들어가고 싶어던 그 회사에서 아직도
이 모양 이꼴로 사는게 문제이긴 하지만.
그리고, 내집 마련에서의 전략 실패로
결코 상투는 잡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워
내 기준으로 비싼 자산은 결코 사지 않겠단
원칙을 세워 부동산 투기 없이도
착실히 자산을 쌓아나갈 수 있었다.
물론, 그 집을 사지 않았다면
서울 아파트를 일찍 장만해서
비싼 값에 다른 사람에게 넘겨
큰 시세차익을 얻었을 수도 었었겠지만
과연 남의 마음을 아프게하면서까지
떼돈을 버는게 순리인지는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소위, 투자라는 이름으로
싼 값에 사서 가능한 비싸게 팔아
시세 차익을 극대화하는데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게 현재의 풍조인데
결국, 비싼 값으로 상투를 잡는 누군가에겐
회복할 수 없는 치명상을 안길 수도 있는 행동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건전한 투자란 건전한 기업의 과실을
배당이란 형식으로 오랫동안 같이 누리거나
부동산의 경우, 남을 힘들게 하지 않는
범위에서 임대 소득을 누리는 것일 것이다.
지금껏 살아오는 과정속에
내 잠재능력을 얼마나 발휘했을까?
아쉽게도 쓸데없는 일에 너무나 많이 허비한 것 같다.
학력고사 세대로서 꽃다운 10대를
온갖 쓰레기 지식을 주입하느라 허비했고
대학교에서는 지금 활용하지도 않는
온갖 전공 수업을 받으며
학점을 확보하는데 허비했으니까.
다만, 그 과정에서 학습 능력과
지겨운 걸 참고 해내는 존버력은
길러진 것 같다.
그런데, 정작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이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데는
내 능력이 거의 발휘된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앞으로 얼마나 살아갈지 모르겠으나
걸어보지 않은 그 길을 살금살금 조심히
걸어가보는 수 밖에.
그렇다고 해서 꼭 그래야한다는
소명 의식같은 것은 전혀 없고
그냥 이대로 내 가족과만 편히 같이 살다
죽어도 괜찮을 것 같다.
어쨋든 뭐든 내 힘이 닿는대로
건전한 걸 익히는 가운데
적어도 내 몸뚱이 하나는 간수 잘하고
죽을 때까지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여
남에게 민폐는 되지 않는게
최소한의 목표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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