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음악

바흐(Bach) : b단조 미사(H-moll messe)

dirigent21 2024. 3. 9. 19:18

이 작품은 베토벤 장엄미사와 함께

미사곡이란 음악 장르에서 양대 산맥을 이룬다.

23년전 예술의 전당에서 거의 전곡 연주에 참여했었다.

그리고, 이 연주회를 준비하면서

리플렛에 들어갈 곡 해설 작성을 위해

한달여간 관련 논문, 책을 읽고

지휘자 총보를 분석해가며 정성을 들였던 기억이 난다.

이 과정에서 베토벤이 왜

바흐는 bach(시내)가 아닌 바다(meer)라고 했는지,

바흐란 작곡가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조금은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관련 논문이나 책에서의

바흐에 대한 입장은 조금 다르다.

왜냐하면 이 곡은 대부분

바흐의 다른 작품에서 가져와

가사만 바꿔 짜집기하고

전용으로 작곡한 곡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흐는 개신교 신자인데

뜽금없이 카톨릭 음악 장르인

미사곡을 만들었다는 것도

개신교 관점에서 보면

양다리 걸친 사람으로 볼 수도 있다.

또한, 바흐 특유의 진부함,

수평적(대위적)으로나 수직적(화성적)으로 빽빽한 느낌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10여 차례 대곡들의 연주에 참여한 가운데

베토벤 장엄미사보다 어쩌면 더 어려운 곡인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가장 어려운 경험이었다.

왜냐하면 바흐는 노래 부르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곧이곧대로 작곡하는 스타일이라

시창에서나 나올듯한 도약과 낯선 진행이 많이 나오고

살인적인 멜리스마도 있기 때문이다.

화성적 언어가 성숙하지 않아

대위적 언어로 화려한 선율적 특징을 가진

바로크 음악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바흐의 대위적 언어는 접근하기 무척 어렵다.

오죽하면 바흐 스페셜리스트란 단어까지 나오겠는가.

23년전 정성껏 작성했던

내 글은 어딘가 처박혀 있는데

귀찮아서 찾고 싶진 않다.

언젠가 짠하고 나오게 되서

온라인 상에 자취를 남길지는 모르겠다.

지금 시점에 그 글을 보면

어쩌면 이불킥을 할지 모르겠다.

 


예전에도 바흐 b단조 미사에 관한 여러 음반을 들었었다.

바로크 음악 연주는 정격 연주(혹은 원전 연주: 바로크 당대의 악기로 연주)와 현대적 연주로 나뉜다.

고음악 악기로 연주하는 정격 연주의 경우 현대 악기에 비해 반음(어떤 연주 단체는 거의 온음) 낮아

D장조의 경우, D flat장조로 들려 D장조의 화려함보다는 D flat장조의 따스함이 느껴진다.

우선, 정격 연주에 관련된 걸 살펴보자.

내가 들었던 것 가운데 그나마 가장 괜찮은게 지금도 가지고 있는 나온 가디너의 아르히브 음반이었다.


유튜브에서도 찾아보니 노년의 가디너의 실황 연주가 있다.

저 음반이 나올 때만 해도 정정했는데 어느덧 할아버지가 되어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T6vRpmyiW0

 

이 작품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곳은

가사만 바꿔 같은 곡이 반복되는 부분으로서

Gloria에서의 'Gratias agimus tibi'와

Agnus dei에서의 'Dona nobis pacem'이다.

이 실황에선 특이하게 'Dona nobis pacem'을

Karl Richter만큼이나 굉장히 느린 템포로 연주한다.

물론, 천상을 향해 끊임없이 퍼져나가는

은은한 빛과 같은 이 곡은 느리게 연주해도 여전히 아름답다.

굳이 단점을 꼽자면

가끔 세련미를 떨어뜨리는

가디너 특유의 과장된 악센트,

몬테베르디 합창단의 고질적인 문제로서

테너 파트가 가끔 거칠고 발작적인 발성을 한다는 것이다.

이 곡 말고 바흐 칸타타 연주를 들어봐도

테너 파트가 전체적인 합창의 조화를 깰 때가 종종 있다.


그 다음으로 정격 연주의 또 다른 거장으로 알려진

헤레베헤의 콜레기움 보칼레 연주가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2euNVt0xec%EF%BB%BF

 

 

이 연주의 놀라운 점은 10여명의 합창단으로

이렇게 어려운 곡을 실황으로 해냈다는 것이다.

헤레베헤의 합창단은 여려 보이나

더 세련되고 아름다운 화음을 낸다.

다만, 헤레베헤의 연주에선 아주 가끔

기악과 합창이 엇박자 나는 부분이 있는데

이 분의 지휘를 보니 좀 이해가 되긴 한다.

과감하게 박을 주어야 할 곳에서 얼버무리는 듯한

애매한 지휘를 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또 단점을 꼽자면,

개인적으로 Credo에서 'Con fiteror'부터

'Et expecto'로 넘어가는 부분에서의

나름 바흐가 심어놓은 극적 효과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두 번 반복되는 곡의 템포가 빠르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1년전쯤 우연히 유선 방송을 보는데

바흐 칸타타를 기가막히게 연주하는 연주 단체를 알게 되었고

이 단체가 연주한 미사곡도 있다.

대체로 가디너 연주의 템포와 비슷한데

합창 소리가 매우 세련되어 있다.

Gloria의 마지막에도 두 번째 곡인 "Quoniam"에서 베이스 솔로와

바로크 호른(피스톤 없는 내추럴 호른) 솔로 앙상블이 나오는데

바로크 호른 연주는 볼때마다 신기하다.

어떻게 금관악기로 호흡 조절만으로

유려한 멜리스마를 할 수 있을까?

굳이, 단점을 꼽자면

소프라노 솔로의 표정을 보고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좀 섬뜩한 느낌이 있고

몇 곡의 솔로곡 템포가 개인적으로 좀 빠르단 느낌을 받는다.

https://youtu.be/vcnmSn_Vgz8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 몇 가지 연주를 들어보았는데

별로 감흥이 일지 않던 중,

새롭게 알게된 훌륭한 연주 단체도 있다.

이 연주도 매우 훌륭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kvExf77nRs4

 

합창, 기악 모두 훌륭하고

특히 이 연주에서의 남성 알토는 인상적이다.

Agnus dei 첫 곡 남성 알토의 독창을 들으면

비통한 선율이 마음 속으로 파고 들 것이다.

K-pop 내지 뮤지컬 등

대중음악만 성황리인 우리 나라에서

임윤찬 등 일부 솔로 스타를 제외하곤

기반이 탄탄하지 않다보니

실망하지 않고 즐길만한 고음악 뿐만 아니고

고전 음악 라이브 연주가 없다는게 굉장히 안타깝고

(정명훈과 같은 세계적 지휘자가 연주하는

베르디 레퀴엠 실황을 들을 때도 굉장히 실망했었다

물론, 정명훈의 곡해석을

대체로 그닥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격조 높은 연주를

실황으로 들을 수 있는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이 부럽다.

가끔 유선 방송을 틀면 국내 연주가 나오긴 하는데

해외 연주가 너무 심하게 넘사벽이라서(특히, 기악의 수준)

안타깝지만 좀 듣다가 채널을 돌리게 된다.


이제 현대적 연주로 넘어가보자.

바흐를 아는 사람이라면

바흐 음악계에서의 카라얀인 Karl Richter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 분의 실황도 유튜브에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w9eEIfohj4

 

 

 

현대적 연주의 장점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넘사벽 스페셜리스트가 아닌

일반 합창단으로 연주를 하다보니

합창단원 수가 원전 연주에 비해

배 이상 많아야 하고 그에 따라

오케스트라 편성도 커지다 보니

원전 연주에 비해 웅장한 느낌을 받는다는데 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가 장점이다.

일단, 바흐는 원전 악기를 염두에 두고

음역을 설정하였는데

현대 악기는 바로크 악기보다 반음 이상 높으므로

고음역을 담당하는 소프라노와 테너에겐 고역이다.

게다가 바흐의 곡은

마태수난곡,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는

현대적 연주에선 3시간 반을 넘어가기도 하고

요한수난곡, b단조 미사 역시

2시간 내외에 이르는데

합창단원이 모든 부분을 완벽히 소화하기엔 버겁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바흐는 노래 부르는 사람의 편의를

전혀 봐주지 않고 작곡했으므로

합창단 역량의 한계가 너무 쉽게 드러나게 된다.

따라서, 군데 군데 화음도 망가지고

이상한 소리도 들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악기 자체도 비록 선율과 음정은 망가지진 않더라도

바이올린을 예로 들면 활의 길이가 길고

바로크 바이올린과는 달리 쇠줄이므로

다소 소리가 날카롭고 최고 수준의 현악 주자들이 아니면

바로크 음악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다이나믹스가 나오게 된다.

칼 리히터를 보면 게슈타포가 연상된다.

피도 눈물도 안나올것 같은 그런 인상.

칼 리히터는 바흐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다보니 카라얀이 비판을 받듯이

다소 과장된 듯한 레가토와 다이나믹스가 군데 군데 섞여 있다.

물론, 엄격하게 바로크적으로 연주하는 부분도 있긴 하다.

귀가 예민하지 않은 사람이

원전 연주와 현대적 연주를 들으면

아마도 현대적 연주를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원전 연주는

언뜻 듣기에 민숭맹숭하고 소규모인데 비해

현대적 연주는 규모에서 나오는 웅장함을 느끼고 소리는

불협화음조차 화음인 것처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악도 고음악 악기에 비해 자극적인 소리를 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