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

도올주역강해 [6강]

dirigent21 2024. 4. 20. 17:45

6위 : 아래 -> 위, 초이삼사오상(종),
나무가 위로 자라듯
인생도 올라가는 방향, 
중력에 대한 반역으로서의
생명의 원칙.
생명 자체는 유지하기 어려운 처절한 반역.
초위, 상위 : 무위(관직이 없는 상태).
가장 좋은 위 : 2위(상괘의 중), 5위(하괘의 중).
상괘의 세계 : 지배 계급.
하괘의 세계 : 민중 계급.
'중'의 사상은 경이 아닌 소상전에 나옴.
홀수는 양의 자리.
짝수는 음의 자리.
양효 자리에 양효, 음효 자리에 음효가 
오는 것이 '득정' <-> 반대는 '미제'
상괘에서의 같은 위와 
하괘에서의 같은 위는 '응'의 관계, 
예 : 상괘의 2효와 하괘의 5효가 친함.
도시문명(civilization, 작위, 유위, 상괘) 
<-> 자연(천지, 무위, 하괘).
도시문명 : 자연의 비율이 50 : 50이어야 하나
한국은 97 : 3 이상.
도시문명을 유지하기 위해
농산어촌을 쓰레기화하는 악랄한 짓.
서울의 전기를 지방의 원자력으로 생산,
사람이 사는 지역에서의 풍력발전(소음),
시골 산의 쓰레기 매립장화.
원칙적으로 서울 전기는
한강변 원자력발전소,
쓰레기장 역시 서울에 있어야.
인류의 비극적 역사는 조화 대신 올라가는데만 초점.
비룡제천 이견대인 : 최고의 자리에 가더라도 
잘못을 지적하는 대인이 없으면 죽음. 
중용 : 무조건 가운데가 아닌 온전함을 지켜
'우환'이 없어야.
주역의 핵심 사상인 '중', 
기하학적 중심이 아닌,
음양에 따른 끊임없는 밸런싱,
'중'은 일종의 반역.
작위의 세계인 문명의 지향점 : '중'.
안하무인인 사법 권력.
'중'을 유지하기 위해 '성(성실)'이 필요.
가장 성실한 것이 바로 대자연.
풀 한포기에서 배울 수 있는 '성'의 지극함.
성자, 천지도야(성실함은 하늘의 '도'이고)
성지자, 인지도야
(성실함으로 나아가는 것이 인간의 '도').


유학의 가르침을 듣고 있으면
말은 정말 뻔질나게 그럴듯 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잘 배웠던 양반들이
예송 논쟁이나 하고
사대의 예나 지껄이면서
자신들의 부만 축적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을 얼마나 아느냐보다
얼마나 용기있게 행할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철학이 무슨 소용이 있냐란 
생각을 할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것도 못해온
양반들이 잘난척을 해온 역사이니까.

장자는 제 아무리 떠들어봐야
소용 없단 생각에
직관적으로 천하질서로부터 자유롭기를 택했으나
불행히도 천하질서를 떠나 
살아남는 것 역시
결코 만만한 길이 아니다.
따라서, 장자의 생각처럼 살 자신

내지 능력이 없으면
어쩔 수 없이 천하질서에
굴복하고 살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 우리 삶의 비극이 있는 것이다.
배려 내지 정의란 이름으로
끊임없는 '성실'을 강요받을 것이므로.
다행히 주역의 가르침을
잘 알고 실천하는 지배계급이 있다면
그 나라는 살만하겠으나
우리네의 역사를 보면
이 가르침을 몸소 실천한 자들보다
알면서도 역행하는 자들이 훨씬 많았고
지금은 더 나아가 이것조차 모르면서 
그러한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렇다고 이상적인 평등사회가
답이 될 것인가?
결코 그러하지 않을 것이다.
돈이 많든 적든
자연을 조화의 대상이 아닌,
오로지 자신들의 편의를 추구하거나
돈벌이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인간들이 많은 한
대자연의 관점에선 인류는
아군보다 적군이기 때문이다.
즉, 이 지구엔 나를 포함하여
만물의 허접인 인간들이 
번성하는 것은 
어떤 측면에선 크나큰 문제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주역의 '중'의 원리는 퇴색되고 있다.
한정된 지구의 자연을
흥청망청 남용하는 가운데
지구 어딘가에서 고통받는 생명체는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이렇게 '중'의 원리를 계속 무시하면
종국엔 어떻게 되겠는가?
인류 스스로 '중'을 실현하지 못하면
대자연의 성실함에 따라
인류 문명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인류의 관점에선
비극적인 '중'을 실현해 나갈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지구를 살린답시고
누군가를 죽이거나
스스로 사라져야 하는 것인가?
상식적으로 말이 안된다는 것은
누구나 알수 있을 것이다.
내 생각에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해 무엇이든 만들거나
돈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엇이든 써대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본다.
발전소를 더 짓기 전에
어떻게 더 절약하고 효율화할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과잉소비, 과잉생산은
법적으론 아무 문제가 없겠으나
주역의 관점에선 빌런이니까.
불행히도 과잉생산, 과잉소비를 지양하면
개인의 자유와 권리 보장이란 이름하에
공산당 취급 당하기 쉽상이고
주가 떡락은 죽어도 못보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선
이것 또한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3FU73JzjO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