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 장자수업 [41강. 꿩이야기]
장자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갑골이야기+꿩이야기.
갑골문 : 고대 중국에서 갑골
(거북 등딱지, 짐승의 뼈)로 점을 친 후,
그 위에 점복과 관련된 사항을
기재하며 남은 문자.
장자 이야기 중 유일한 운문.
시인의 시건과 일치할 때 읽히는 시.
갈등 상황에서 승패나 시비를 따질 때
대체로 강한 사람이 옳게 됨.
이러한 갈등 과정에서 옆으로 살짝 빗나가는 장자.
-양생주
습지의 꿩!
열 걸음 걷다 한 번 먹이를 쪼고,
백 걸음 걷다 한 번 물을 마시네.
울타리 안에 갇혀 길러지는 걸
바라지 않지.
신이 울타리 안에서 비
록 왕과 같을지라도
이것은 좋지 않으니까.
신 : 몸과 마음이 일체되는 느낌, 포정.
인간의 특징 : 졸려도 안자고
안배고파도 먹으며 억지로 일함.
비쩍 마른 야생돼지냐 햄에 들어갈 살찐 돼지냐.
물과 사료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울타리 안.
-추수
장자가 복수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초나라 왕은 두 사람의 대부를
말을 전했다.
'국가 안의 모든 일을
선생에게 맡기고자 합니다!'
장자는 낚싯대를 쥐고
돌아보지도 않은채 말했다.
'초나라에 죽은지 3000년이나 된
신령한 거북이 있는데,
왕이 이것을 상자에 넣고 비단보로 싸서
묘당 안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들었습니다.
이 거북은 죽어서 뼈를 남겨
귀히 되길 원했을까요
아니면 차라리 살아서 진흙탕 속에서
꼬리를 끌며 다니길 원했을까요?
대부 : '차라리 살아서 진흙탕 속에서
꼬리를 끌며 다니길 원했겠지요.'
장자 : '돌아가시오! 나는 앞으로도
진흙탕 속에서 꼬리를 끌며 다닐 것이오.'
장자의 정신 : 인재가 되는 것에 저항.
국가 질서가 자리 잡지 않은
신흥국가였던 초나라.
내가 고위 관직에 올라가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거야에
대부분 넘어감.
장자 철학을 아는 제나라,
노나라에선 오지 않았을 것.
공(제후국 왕)경(제후국 수상)대부(수상 유력 후보).
점을 치려면 죽여야 하는 거북이.
유명해지지 말고
쓸모 있는 고귀한 존재가 되지 말라.
자유란? 깨고 싶을 때 깨고
자고 싶을 때 자는 것.
억지로 자거나 먹으면 부자연스러운 것.
내가 올라갈수록 고귀한 갑골이 되는 건가?
권력의 특징 : 내가 못쓰면 남도 못써야!
똑똑한 말더듬이 한비자를 내친
조조에게 이사의 조언,
'쓰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안쓰기로 작정하면 죽여야 합니다'하여
결국 죽음.
CEO나 남편이 갑질하면 그 전에 달아
날 수 있어야.
장자의 원초적 감각 : 쓸모에 대한 부정,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야 한다!
누군가에게 쓸모 있다는 것은
위험할 수 있는 일.
사라진 후 장자의 다음 숙제 :
초나라 왕에 안 들키기.
날개이야기 : 흔적을 끊기는 쉽지만
땅을 밟지 않기란 어렵다.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문제 :
흔적 끊기 힘든 것.
동물과 달리 누군가를 위해 죽어가면서
정신 승리하는 인간.
사람의 소중함이 긍정되어야 좋은 사회.
마르셀 프루스트, '한 생명체가 태어나면
하나의 세계가 열린다.'
한 사람은 우주만큼 크다!
'너 하나 희생되도 돼'란 생각을 거부,
밀알이 되지 말라,
국가를 위해, 민족을 위해
희생하지 말라는 장자.
국가 전체가 여러분 삶을 위한 밀알이 되어야.
내가 크다는 것은 세계가 좁다는 뜻, 불편함.
우리가 작으면 세계는 변하지 않음.
세계가 변하지 않으면
자손들도 밀알이 될 수 밖에.
꿩을 보며 각오를 다졌기에
초나라 제안을 거부할 수 있었거나,
초나라 제안을 거부한 후
숨어들어가 꿩이야기를 정리했을수도.
꿩이야기의 핵심 : 9걸음과 99걸음(자유)의 여유.
아홉 걸음을 걷는 동안엔
먹이 찾기에 혈안이 된 꿩이 아님.
자연은 의외로 넉넉하여
그 정도 걸으면 먹이, 물도 생김.
먹이와 물을 먹기까지의 걸음이
수난 같아 보여선 안됨.
인류 사회가 아닌 다른 사회로
우리 삶이 힘들어질 것이란 착각.
[첨언] 이건 반대의 상황도 있을 수 있다.
즉, 자유를 위해 척박과 가난을 감수해야할 수 있다.
자연은 인/불인 두 가지 측면 모두를 가지고 있다.
대자연에서조차 가뭄에 굶어죽는 짐승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울타리 : 9걸음, 99걸음을 못 걷게 하는 공간.
할 일 없는 것, 노동이나 목적이 아닌 것.
한달 중 월급날만 행복한 우리와 달리
29일이 행복한 꿩.
꿩과 달리 먹이를 먹어야 행복한 인간.
인간의 사고방식 :
월급날이 두 번이면 더 행복하겠네?
소요유 : 목적 없이 걷는 것.
편의점에 들어가고 배달을 시켜먹는 사람들,
울타리안의 꿩같은 존재가 아닐까?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
먹을 것은 풍족한 울타리 안의 생활.
배부른 호랑이는 잡아먹지 않으나
인간은 냉장고에 보관하거나 돈으로 저장.
토머스 홉스,
'자연 상태는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 ???,
의외로 야생은 여유롭고 게으르다.
울타리 안의 왕 : 많이 먹고 안움직이는 것.
야생꿩과 비슷하게 살려면 배고플 때 먹으면 됨.
꿩이야기의 매력 : 먹이를 쪼는,
물을 마시는 느낌이 아닌 '9/99걸음'.
제발 소중한 사람이 되지 마라.
인간으로서 품격있게 살려면 꿩처럼만 살라.
국가는 어느덧 필수재가 되어
국가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국가를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세계 어느 곳을 가든
국가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자의 가르침에 따라
국가무용론을 주장하며 다닌다면
미치거나 어딘가 모자란 사람 취급받을 것이다.
순수했던 그 옛날 남미 사람들을 보라.
비록 그들은 풍족한 자연에 감사하며
필요한 만큼만 만들고 소비하며
순수하게 살아갔지만
종교란 양의 탈을 쓴
난폭한 서양의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처참히 사라져갔다.
어느 한 국가를 부정한다해도
외부의 더 강한 국가에 의해 먹혀
처참한 상태가 된다.
국가의 모든 사람들이
장자처럼 살겠다고 결심하여
똘똘 뭉친다면 비록 그 국가는
선하게 바꿀 수 있을지언정
다른 악한 국가로부터의 공격은
막아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지경이 된 지금에 와선
장자의 말을 곧이 곧대로 실천할 수 없다.
다만,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어떻게 하면 각자의 자리 맞게
장자의 정신을 더 많이 실현할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한다.
어느 재테크 컨텐츠에서
경제적 자유의 의미를 얘기하는
부자의 말을 들은 적 있다.
"부자가 되어 경제적 자유를 누리면
가장 좋은 것은 돈으로 시간을 사
그 시간의 여유를 누리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진정한 부자도 있겠지만
반대로 백만/천만 장자인데도
억만 장자를 보며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달리기만 한다면?
이런 자야말로 본인 스스로 만든
울타리안에 가둔 배터져가는 가축이라 할 수 있다.
성경에서 자신이 이룬 모든 것에 흡족해하던 부자가
꿈에 야훼가 나타나 오늘밤 니 목숨을 거두리라란 말에
슬퍼했다는 이야기처럼.
얼마전 유퀴즈에서
배우 김남주님의 말씀을 들은 적 있다.
사회자가 젊은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갈 것이냐는 질문에
그녀는 결코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너무도 힘든 여정속에
더 이상 할 수 없을만큼 최선을 다했고
지금은 너무나 행복하기 때문에.
연예인만큼 극한 직업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자신을 대체할만한 수많은 사람들이 줄 서 있고
불편한 인간 관계를 헤쳐나가고 수많은 대중에 의해
평가를 받고 어디서든 누군가 자신을 알아본다는 그 느낌.
상상만 해도 싫다.
이미 널리 알려져
비록 유리 감옥을 벗어날 순 없겠으나
더 이상 성공에 연연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러
자유를 얻은만큼 결코
그 자유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그녀만큼 치열하게 살진 않았겠으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왔고 그 결과로서
비록 소박하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건 자명하지만
나 역시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결코 돌아가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비록 부자가 되진 못했지만
장자의 그 느낌을 조금은 알 수 있는 여유를 찾았기에.
[2025.2.21]
아저씨에서 아역으로서
깊은 인상을 남겼던
배우 김새론이 25세의 꽃다운 나이에
얼마 전 생을 마감했다.
음주운전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지팔지꼰의 대표적 사례이고
평소 그 배우를 좋아한 팬은 아니다.
(그렇다고 욕도 하진 않았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안타까웠을 뿐.)
그녀의 안타까운 죽음에
슬픈 기분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남의 인생을 두고 자신이나 잘 살것이지
그렇게까지 욕을 처 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화가 나기도 한다.
차라리 배우로서 유명해지지 않고
평인으로 살아갔으면
훨씬 행복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참으로 안타깝다.
짧은 인생가운데 너무나 많은 욕을 먹고
비운에 간 그녀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