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음악

들어가며

dirigent21 2024. 3. 9. 18:24

 
고전음악은 내 20대 초중반을 지배했다.
사실,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할 조짐이 보였다.
초등학교 2학년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고전 음악을 잘 모르지만
피아노가 너무나 재미있었다.
그 당시 내가 살던 동네에선
초등학교 1학년부터 피아노를 배우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난 2학년부터 시작했다
평균 이상의 적성이 있었는지
다른 남자들에 비해 진도가 매우 빨랐고
개판으로 칠 지언정
나에겐 매우 재미있는 놀이와 같았다
 
중학교에 진학하며
공부에 투입하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더 이상 피아노를 칠 수 없었으나
모든 수업 시간 가운데
음악 수업이 가장 재미있었다.
남들은 따분해하는 음정에 대한 원리가
무척 재미있었고,
때때로 음악 감상할 때면 그 음악은 잘 모르더라도
푹 빠져들어갔다.
고등학교 시절 힘들 때 우연히 갖게 된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비창 테이프를
그 음악이 너무 좋아 수백번 이상 들었던거 같다.
 
대학교 2학년부터 성가대를 시작했고
3학년 즈음 운명과도 같이
합창단 지휘자님이자
성가대 지휘자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 분이 얘기하시는 음악에 푹 빠져들어버렸다.
성가대를 하며
하이든 천지창조,
멘델스존 엘리야,
모차르트 레퀴엠,
베토벤 장엄미사,
구노 장엄미사
몇 곡을 하는 가운데 종교적 의미를 넘어
그 음악 자체가 너무나 좋았고
특히, 베토벤 장엄미사는
비창에 빠졌던 것처럼
1년 내내 거의 매일 들었던거 같다.
그러던 와중, 성가대 같이 하던 형으로부터
합창단 입단 제의를 받아합창단을 하며
더 많은 음악을 접하고 부르면서
내 삶의 의미가 음악이란 느낌을 받았었다.
합창단 지휘자님으로부터 더 많은 영향을 받아
합창단원을 넘어 합창단 내부 운영을 맡아보고
더 나아가 아카데미 지휘 전공으로 입학하여
2학기 정도 화성학, 대위법, 음악사,
악식론, 음악분석, 건반화성 등 수업을 받고
지휘법도 사사받아 오케스트라 지휘 실습을 하며
아주 보잘 것 없지만
슈베르트 교향곡 8번 미완성을 연주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대학원과 음악 둘 가운데
선택의 기로에 놓였고
결국, 음악과 결별하게 되었다.
만약, 병역특례 문제가 없었다면
음악을 선택했을지도 모르나
지금 생각하면 천만다행이었다 생각한다.
예체능으로 밥벌어 먹고 사는 것은
다른 분야에 비해 훨씬 고단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음악은 내 여한으로 남아있다.
언젠가 내가 원하는 템포, 해석으로
베토벤 장엄미사를 지휘하는 꿈을 꾼적 있는데
현실에서 이루기엔 너무 요원한 꿈으로 남아있다.
 
지금은 더 이상 크리스찬이 아니지만
교회음악이란 음악 그 자체를 사랑한다.
요즘은 음악 활동도 안해서
그냥 가끔 생각날 때 감상하는 정도고
길을 걸어가며 내 머릿속으로
내가 생각하는 템포 다이나믹스로
레코드를 돌리는 가운데
상상속의 지휘자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좋은 연주를 들으면서 이 블로그를 통해
음악에 대한 내 생각을 얘기하는 정도겠다.
수많은 음악을 듣지만
내가 진정 원하는 해석으로
남이 연주해주는 것은 불가능하여
100% 만족할 순 없다.
베토벤 교향곡을 듣더라도
지휘자에 따라 템포, 다이나믹스,
각 악기의 음색의 조화는 제각기 다르다.
현재 나의 수준은 베토벤 장엄미사,
교향곡 3번, 5번, 9번 등에 대해서
내가 원하는 절대적인 템포와 해석으로
지휘만 하라고 하면 지휘할 정도는 된다.
다만, 지휘자가 되려면
수많은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여
권위를 얻어야만 하는데
의사, 변호사 못지 않은 수련과 공부가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관문을 통과하더라도
스타급의 지휘자는 손에 꼽을 정도니
그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직장을 완전히 그만두고 할 일이 없어지면
내 여한을 풀 것인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지휘자가 되기엔 천재성이 부족하고
열정도 많이 식었지만
1%의 가능성은 열어두고 싶다.
그래야만 꿈은 못 이룰지언정
꿈을 꾸는 재미라도 있을 것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