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 장자수업[17강. 지리소 이야기]
자유를 품고 사는 삶.
지리소(불행하지 않은 어느 불구자)는
자유를 품고 사는 사람인지,
아니면 상태가 안 좋은 사람인지?
인생이 바닥을 칠 때 동아줄이 되는 지리소 이야기.
다만, 지리소의 삶까지 안가면 좋겠다.
빅토르 위고 '파리의 노트르담'의 콰지모도와
외모는 비슷하지만 다른 캐릭터인 지리소.
-인간세
지리소라는 사람은
턱이 배꼽 아래로 내려와 있고
어깨가 정수리보다 높으며
목덜미의 뼈가 하늘을 가리키고
오장의 경혈이 위로 향했으며
두 넓적다리의 뼈가 갈비뼈에 이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는 바느질과 빨래를 해서
충분히 자기 밥벌이를 했고,
산가지를 흔들고 쌀을 뿌리며 점을 쳐서
충분히 열 사람을 부양할 수 있었다.
국가가 징병하려고 할 때도 이 불구자는
소맷자락을 휘날리며
징집관들 사이에서 노닐 수 있었다.
국가가 부역을 강제할 때도
그는 만성질환으로 부역을 면했다.
심지어 국가가 병든 사람들에게 곡식을 나눠줄 때도
그는 세 포대의 쌀과 열 묶음의 땔나무를 받았다.
무릇 '자신의 몸을 불구로 만든 사람'조차
충분히 자신의 몸을 기르고 천수를 다하는데,
하물며 '자신의 덕을 불구로 만든 사람'은
말해서 무엇하랴!
지(가지 지)리(이별할 리) : 잔가지처럼 서로 떨어져 흩어진 상태,
산만한 사람, 쓸모 없는 사람을 뜻함.
지리멸렬 : 이리저리 흩어져 갈피를 못잡음.
소(성길 소) : 사이가 뜬다.
장자를 이해한다는 것 : 능력 있으면 힘들게 살다가
쓸모없어지면 버려지는 인재가 안되겠다는 굳은 다짐(?).
역사가 지나고 시대가 변하면 아무 쓸모 없는 '인재'.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20대에 할 일, 40대에 할 일.
장자의 입장 : 왜 때를 놓치며 인생을 허비하는가?
좋은 데 쓰이면 의미 있지만
나에겐 좋은게 없는 국가와 자본.
진나라 vs. 조나라 : 항복한 조나라 군인
30만 생매장(농사를 짓는 경제력 제거)
-> 조나라는 다시 못 일어남.
오늘날 봉급만 생각하며 소모되고 있는 인재들.
지리기형 : 그 형체를 지리하게 하다,
기형지리 : 그 형체가 지리한 사람.
지리소는 지리기형으로서 오늘날로 따지면 병역 기피자.
지리기덕자 : 그 덕을 지리하게 한 사람.
지리소 : 2500년전 버전의 '유주얼 서스펙트'.
빨래와 바느질에 최적화된 신체 구조.
보통 인간과 다른 신비(신과 연결된)한 아우라로 점을 침.
전근대사회에서 정신병자는 신과 결합한 사람으로 봄.
미셀 푸코 : 근대 사회 탄생 후 정신병을 광기로 치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열 사람을 부양할 정도로 강건한 지리소.
훌륭한 요리사는 주어진 재료로
최선의 요리를 만드는 사람.
반면, 특정 재료가 없으면
음식을 만들지 못하는 B급 요리사.
이미 다 갖춰져 있어 알고보면
모든 것을 다 가진 완벽한 지리소.
남탓만 해대며 안 되는 사람은
그것만 있으면 잘됐을거라고 착각.
각자의 삶도 이미 다 갖춰져 있다,
이것만 갖춰지면 하겠다는 사람은
갖춰져도 못한다.
조용조 : 조는 토지, 용은 사람,
조는 호에 부과되는 조세체계.
쌀과 땔나무를 안받아도 살 수 있음에도
굳이 사양안하고 땡큐하며 다 챙김.
어떤 조건에서도 살 수 있는 지리소는
완전한 삶의 요리사.
우리가 못사는 이유? 지리소와 다르게 생각;
뭔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시간 속에 멈춰있는 사람들이 많다.
빠진 재료에 집중하지 않는 지리소,
남이 보기에 부족한 사람으로 보이나
지리소 입장에선 난 부족함이 없다 생각.
인재가 안되는 삶에 성공하고 인재가 아님에서
완벽한 삶을 살아가는 지리소의 자유롭고 여유로운 삶.
지리소는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품을 수 있는,
장자의 가장 모범적인 캐릭터.
지리소의 정신 : 나에게 주어진 것만으로
부족함 없이 완벽하다.
덕(얻을 득 + 마음 심) :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 매력.
매력을 줄이지 않으면 국가든 어디든 끌려가므로
매력을 과시하면 큰코 다칠 수도 있음.
지리기덕 : 덕을 지리하게 하라는 거대한 일반론,
타자가 원하는대로 안살려고 하는 것.
강건한 형체, 육체적 매력 : 매력에 따라 매겨지는 등급.
덕 중 하나인 신체적 건강, 어학 능력/유머감 등 다양한 종류의 덕.
깔끔한 성격을 과시하면 청소 담당.
나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안 된다!
표범은 매력적인 털가죽때문에 죽임을 당한다.
외적 장애는 없어도 원만한 인간관계 기술이 부족한 나로선
혼자 노는 법을 잘 터득해서 혼자서도 무지 잘 논다.
그러니, 잘 사는 법을 어느 정도 터득했다고 볼 수 있다.
물 속에 들어갈 수 있는 정도라면
아주 가끔 계곡 좋은 산으로 훅 떠나
아무도 없는 계곡에서 어린 애처럼 혼자서도 첨벙첨벙,
심지어 하이다이빙도 하면서 재미있게 논다.
잘치지는 못하지만 피아노를 가끔 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리고, 비록 음악 공부를 너무 늦게 포기하여
대학원 생활이 삐걱거려
인생의 진로까지 바뀌었지만
그 때 공부한 음악 덕분에
음악도 나의 소중한 친구가 되어 있다.
또한, 뒤늦게 알게된 독서의 즐거움으로 책들도
나의 친구들이 되어 있다.
내 인생이 앞으로 얼마나 남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일단, 지나온 대부분의 시간 동안 산 인생은
대체로 망했다는 건 부인할 수 없으니
담담히 받아들이련다.
앞으로의 어떻게 살 것이냐가 문제인데
분명한건 지금껏 살아오는 가운데
지리소와 같은 장애가 있지만
이 장애를 안고 잘 사는 법은
어느 정도 터득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불편함에도 이를 억누르고
굳이 작위적으로 잘 지내려는 노력을 하기보단
나랑 너무나 잘 맞는 아내와
나 스스로와 잘 놀면서 인생을 즐기는 가운데,
때때로 편한 인연이 생긴다면
그에 만족하면서 살아가야하지 않을까.
그 동안 소비를 통제하고 검소하게
잘 살아가는 법을 익히고 습관화하여
충동 구매에 빠지지 않고
소비보다는 돈을 모으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카드 명세서를 보면 내가 쓴 항목이
한 달에 10만원 넘어갈 일이 거의 없다.
게다가 공부로 준비가 안되어 잘 모르는 자산엔
절대 투자하지 않겠단 원칙을 잘 지킨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갖가지 삽질을 하는 가운데
외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지만
단, 한 번의 연애로 천생연분을 만났고
존버하는 가운데 최소한의 뒷배는 마련해 두었으니
운수가 완전히 오진 인생은 아니란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