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 무문관 : 주인공으로 살기 [31강]
티벳 불교적 전통,
동아시아 선불교적 전통,
초기 불교의 인도 전통 수행법.
위파사나(Vipassana) : 석가모니 시절부터 행해온
명상 수행법, 일상 활동과 마음에 대해 관찰하고
깨달음을 얻는 것.
계(계율)정(참선)혜(지혜).
참선(Meditation) : 내 느낌에 집중하는 것,
내가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가,
내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
나로 돌아가는(1인칭이 되는) 경험을 하는 것.
유행만 좇으면 내가 내리는 판단조차
내가 느끼지 못함.
심란할 때 내 숨소리에만 집중하며
나로 있는 경험을 하라.
세상의 이치가 아닌 1인칭의 경험을 늘려야.
1인칭의 경험을 늘리는 것이
내 인상의 주인이 되는 출발점.
무문관 35칙 천녀리혼(떠난 마음, 영혼)
오조 화상이 스님에게 묻길,
"정말로 천녀가 자신의 혼과 분리되었나요?"
혼(정신의 혼)백(육체의 혼) : 음양의 이치.
당나라 전기 진현우의 소설, '이혼기' :
왕주와 천랑의 사랑 이야기,
이별하자 천랑의 혼이 현신하여
왕주와 같이 산다는 내용,
부모의 뜻을 어길 수 없어
혼만 왕주를 따라간 천랑,
집으로 돌아오자 혼이 천랑의 몸에 들어가
건강해진 이야기.
몸과 혼중 어느 것이 진짜인가?
종교와 철학에서 중요시하는 '혼'.
다제경(Sati, 차)
마하 탕하 상키야(숫타)
중아함경(부처의 가르침이 담긴 60권 222경,
문장 길이가 중간 정도의 경전 모음,
맛지마 니까야, Majjhima Nikaya) 중 '장작불의 비유' :
불(영혼, 정신, 생각)이란
그 연료(몸)에 따라 이름 지어진다;
장작으로 타는 불은 장작불,
나무조각으로 타는 불은 모닥불,
섶으로 타는 불은 섶불,
쇠똥으로 타는 불은 쇠똥불,
왕겨로 타는 불은 왕겨불,
쓰레기로 타는 불은 쓰레기불.
불이 있다는 것 == 연료가 있다는 것.
연료가 없어도 불은 있고 영원하다 생각하면
영원불멸의 영혼이 있다는 생각.
사티가 영원 불멸의 불이
윤회한다고 잘못 가르치자 석가가 바로 잡음.
무아(아나트만) : 연료를 제거한 불은 존재하지 않음.
타지 않는 상태의 나무는 연료인가?
불이 붙어있기에 연료라 부름.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듯 연료에 따라 불도 다름.
불교적 전통에서 몸을 떠난 정신은 없음.
한번도 경험하지 않았는데도
천국의 영혼, 귀신 이야기를 믿는 우리.
사후 세계 : 현재보다 미래를 중시하는 논리.
머릿속의 귀신에 대한 공포로 허깨비를 보는 것말고
맑은 정신에 귀신을 본 적 있는가?
이 세상에 얼마나 허황된 담론, 이야기가 많은가?
우리 주변의 많은 책들이 이혼기와 같지 않은가?
진정으로 사랑하는가는 대부분 몸이 이야기한다.
어려서 먹은 떡볶이는 그리 달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밖에서 떡볶이를 잘 못 사먹는다.
너무 달기 때문이다.
참고로 난 단 걸 좋아한다.
과일, 과자, 아이스크림, 초콜릿 등
본연의 단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즐긴다
다만, 반찬, 국물이 지나치게 단 것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진한 단맛과 전혀 안어울리는데
마치 초딩이 진한 화장을 한 느낌이랄까.
재료 본연의 순수한 맛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데
단맛이 그 순수미를 없애기에.
그리고, 요즘의 팝콘은
MZ세대들 사이에선 스위트 팝콘이 대세인데
난 스위트 팝콘은 극혐한다.
개인적으로 소금이 아닌
설탕과 팝콘은 최악의 조합이라 생각하지만
세상은 내 입맛과는 반대로 가는 느낌이다.
언젠가 불티나게 팔리던 허니버터칩 역시
내 입맛과는 전혀 맞지 않았다.
마치 고구마를 소금 찍어 먹는 느낌이랄까.
맛난 고구마는 본연의 찰지면서
고소하고 단맛만으로 충분하고
감자의 고소한 맛은 대체로
약간의 소금과 잘 어울리는데도
별 희한한 음식을 만들어 유행시킨다.
떡볶이뿐만 아니라
밖에서 사먹는 대부분의 간이 된 음식은
지나치게 달다.
고기를 좋아하지만 양념이 된 고기는
거의 먹지 않는다.
어디서 족보도 없는 레시피로
양념이 지나치게 달기 때문이다.
내가 어려서 먹은 양념갈비는
전혀 이런 맛이 아니었다.
감칠맛 날 정도로만 약하게 단
양념갈비는 정말 맛있었다.
요즘은 어려서 먹었던 그 양념갈비를
한 번도 경험할 수 없었다.
음식이 이렇게 단 것은 유행에 따라
MZ세대 입맛에 맞추어서라고 하는데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난 나중에 은퇴하고 할 일이 없어지게 되면
내 입맛에 맞는 집밥을 손수 해먹고 싶다.
딴짠으로 버무려진 음식이 아닌
내 입맛에 맞는 반찬.
내 입맛에 맞는 반찬을 건강하게 해 먹는데서부터
진정한 1인칭으로 살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내 주변에 양심적으로
내 입맛에 꼭 맞는 집밥을 만들어주면 좋겠지만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영혼은 죽어서도 존재한다는
미친 생각이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어왔다.
놀랍도록 경이로운 피라미드이지만
영혼 불멸을 믿는 미친 권력을 위해
수많은 노예들이 죽어 나갔다.
사이비 종교는 입에 올릴 가치조차 없고
정통 종교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류의
허황된 교리에 휘말려 엄청난 살육이 벌어졌고
여전히 가스라이팅 당하는 가운데
광신도들은 전세계적으로
민폐 중의 민폐가 아닌가.
여전히 귀신을 믿으며
점술가 내지 무당에 당하고 있는 가련한 사람들.
진정한 주인공으로 살기 위한 기본 요건은
몸을 벗어난 영혼 따위란 존재하지 않으며
몸이 죽으면 나의 세계는 끝이라는 걸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가능한 현재를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다.
크리스찬과 이야기를 하면
하나님이 이런 생각을 주고
하나님이 이런 말을 했다란 말을
흔히 듣는데 정말 묻고 싶다.
하나님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구분하는가?
정확한 분류 메커니즘이 있는 것인가?
마치 딥러닝이 이미지 분류 등을 잘하는데도
왜 그런지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런 것인가?
나도 모르게 하나님의 생각과
내 생각을 정확히 예측한단 말인가?
딥러닝의 경우 엄청난 학습데이터라도 있어서
그렇게 잘 분류한다고 치고
엄청난 학습데이터로
자신의 뇌속의 신경망을 훈련시킨게 아닌데도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을 어떻게
그렇게 잘 분류하는 것인가?
그 뇌 속엔 과연 어떤 알고리즘이
설계되고 구현되어 있는가?
참으로 미스테리하고
이들이야말로 생활의 달인이 아닌가?
[25.03.23]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류준열 주연의 '계시록'이란 영화를 봤는데
이 문제를 날카롭게 꼬집었다.
스포 방지를 위해 자세한 내용은 생략.
김창옥 강사님이 종종 언급하는
킹덤 오브 헤븐이란 명화에서
치열하게 싸우다가 항복하고
돌아가는 십자군 측의 명장의
"예루살렘이란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가?란
질문에 대해
종교 내지 이념에 취한 자들에 의한
처절한 현실을 꼬집는 살라딘의 명대사.
"Everything, or Nothing".
헬조선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이
토착왜구에 의해 진정한 헬조선이 된다면
지금의 싸움이 과연 어떤 의미일까?
https://www.youtube.com/watch?v=8hmQnZ1y9M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