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사는 완벽히 해석하는 것은 원래 불가.
정이천(상수학 반대)의 해석
-> 주희(상수학 도입)의 해석.
종묘(수직), 사직(수평 : 곡물의 신, 땅의 신에 제사).
왕(갈 왕) : 모험(adventure), 미지의 영역으로 나아감.
곤괘 괘사 :
군자는 질서의 세계(cosmos)로부터
미지의 세계(chaos)로 나아하고자 하나
처음엔 모호하여 헤매겠지만
나중엔 주(주인 내지 남자 아님, 명확한 기준)를 통해
이를 얻을 것이다,
(서남쪽을 가면 친구를 얻고
동북쪽을 가면 친구를 얻는다).
62 : 직(왜곡 없이 바르고)
방(광활한 평원)
대(보편적 가치)의 덕을 갖춤,
직방대는 원초적, 선천적이어서 배우지 않아도
이롭지 않을 것은 없다.
63 : 함장가정 : 너는 문명의 아름다움을
너의 존재속에 포함하고 있어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있어 점(세상에 대한 물음)을
칠 자격이 있다,
흑종왕사 : 왕 앞에서 서 일을 해도
무성유종 : 네 자신에 이득이 되는 성취는 없으니
유종의 미를 거둘뿐
->노자, 공이 이루어져도 그 안에 거하지 말라.
노자 39장 : 삭여무여(수레타기를 좋아하면
수레가 없어진다)
삭예무예 : 자주 명예를 얻으면 잃게 됨.
지예무예 : 지극한 명예는 명예가 없는 것.
64 : 네 재능과 지식을 주머니에 넣고
함부로 드러내지 말라.
그리하면 화를 입지 않겠으나
명예를 얻을 일도 없다.
== 도가적 사상.
65 : 황상(천자의 자리)이니 크게 길하다.
건괘의 비룡제천에 대응.
상6 : 음의 용과 양의 용이 들판에서 다투니
그 피가 검고 누렇다,
즉, 전쟁이 아닌 생산적 교미(cosmic intercourse),
160p, 유현덕의 삼고초려 장면의 시
용6 : 이 괘는 건괘로 변한다.
이 괘를 만나면 이로움이 있어
구원과 거시적 문제에 대한 물음을 던질 자격이 있음.
건괘와 곤괘는 기본 구조.
준괘로부터 본격 괘의 시작.
삶에 있어서
뭔가를 얻는 것보다
화를 입지 않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자본주의 온갖 자극에
전적으로 노출시키다보면
남는 것은 텅빈 정신에
빈털털이가 된 병든 몸뚱이뿐이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들 즉,
싯타르타의 가르침,
노자의 가르침,
장자의 가르침은
일맥 상통하면서도 정말 단순하다.
집착을 버리라는 것.
집착을 버리면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
무리하게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거나
과욕을 부리다 화를 입는
확률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수억원의 퇴직금을 잘 간수하지 못하고
과욕을 부리다
기획부동산의 꼬임에 홀라당 넘어가
퇴직금을 날리고
가족으로부터도 버림받는 사례가
얼마나 많은가.
가만히만 있으면 2등은 한다란
단순한 가르침.
어설프게 알고 투자했다가
치명상을 입는 것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훨씬 낫다.
심지어 팩톡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도 행복엔 별거 없다는 말을 했다.
행복은 외적 요소보단
내적 요소인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
명랑한 마음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 운동 열심히 하라고 했으니
이쯤 되면 이게 무슨 철학냐 생각할 수 있다.
행복을 위해선 건강한게 짱이니
운동 열심히 하라?
이건 철학을 하나도 모르는
헬스트레이너도 할 수 있는 말이다.
수많은 지혜자들이
어설픈 선무당들에게
제발 좀 그만하고 빨리 깨달으라고 호소하느라
그렇게도 많은 말과 글을 남겼으니
인생이란게 참으로 허무한 것이다.
또 한편으론 건강한 정신을 위해서
그렇게도 많은 사상을 남겼던 것이다.
물론, 밥벌어 먹고 살기 위한
치열한 투쟁의 산물일 수도 있고.
어쩌면 후자가 다수이지 않을까?
나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반백년 사는 즈음에서야
이런 단순한 진리를 몸소 깨달아가고 있다.
의욕 넘치던 젊은 시절엔
왜 그렇게도 비교의식과 결핍에 사로잡혀
스스로 불행하다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정상적인 몸으로 큰 사고 없이
건강하게 밥 안굶고 지내는 것만으로
충분히 감사할 일인데 말이다.
그래서인지 머리는 나빠졌음에도
행복 지수는 올라가는 느낌이다.
행복의 원천을
책을 읽지 않고도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워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몸과 마음 모두로 체험하고 있다면
철학책은 굳이 읽을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내 아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나와는 정반대의 인생을 살아오며
학창 시절엔 실컷 놀아
소위 명문대를 나오지 않고
만화책 이외에 책을 거의 읽지 않지만
명랑한 기질을 타고 났고
사치와 향락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라
그렇게도 나를 한심하고도 측은하게
바라봐 주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최고의 스승과
같이 산 행운을 누렸는데
너무 늦고 어렵게 깨달았을지 모르겠다.
불교와 노장 사상에 가장 가까운
서양철학가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을 발췌하면서 마친다.
성취욕에 사로잡혀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의 허무함을 잘 기술하였다.
"행복과 영화, 항락을 얻으려고 애쓰다가
커다란 불행을 자초하므로
향락과 재산, 지위와 명예 등에 대한 욕구를
적당한 수준으로 끌어내리는게 상책.
매우 고통스럽긴 쉬우나
매우 행복해지긴 거의 불가능.
우리 존재가 차라리 없는게 나음을 아는 지혜자는
세상의 어떤걸 얻고자 애쓰지 않고
일을 그르쳐도 크게 상심하거나 탄식하지 않을것.
대부분의 화려한 것은 껍데기에 불과하고 본질은 없어
기쁨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몰래 슬금슬금 다가와
빛나지도 영광스럽지도 않은 기회로 기쁨은 찾아온다,
사제의 복장, 경건한 몸가짐, 근엄한 동작 등은
경건의 간판이자 거짓된 겉모습이다,
이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은 속빈 호두와 같아
알맹이는 드물다.
알맹이는 전혀 다른 곳에서 찾아야하는데
대부분 어쩌다 발견될 뿐.
행복은 욕구수준을 낮춰
넒은 토대 위에 세우지 않도록 조심해야.
넒은 토대의 행복은 무너지기 쉬우며
불행에 노출될 기회가 많아지므로.
고통을 느끼는 감각은 무한,
즐거움을 느끼는 감각은 좁음.
모든 불쾌와 고통은 금방 느끼지만
건강은 느끼지 못한다.
모든 일이 무척 잘 되어 가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성가시게 하는 자질구레하는 일만 생각.
이는 고통은 적극적 성질을 지니나
쾌감과 행복은 소극적 성질을 지니기 때문이다.
즉, 고통이 있으면 곧바로 행복을 앗아가나
쾌감과 행복은 소망의 해소이자 고통의 종식일 뿐.
즐거움은 우리의 기대보다 훨씬 못하고,
고통은 우리의 기대보다 훨씬 크다.
행복한 나날을 즐기는 중에
운명은 질병, 박해, 빈곤, 불구,
실명, 광기, 죽음 등과 같이
어떤 액운을 준비할지 모른다.
개개인의 삶은 투쟁의 연속이다.
즉, 곤궁, 무료함과의 투쟁일 뿐 아니라
가는 곳마다 자신의 적대자와
씨우며 살다 무기를 든 채 죽음을 맞이한다.
따라서 얼마나 행복했는지는
얼마나 즐거움과 향락을 누렸는지 여부가 아니라
고통이 얼마나 없었는가 여부로 평가해야 한다.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은
동물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보다
약간 더 어려운데도
쾌락을 높이려고 사치, 담배, 아편, 술, 호사와
그런 것에 어울리는 모든 것을 만들어낸다.
인간은 죽음을 알고 있는 사실로 인해
고통의 양의 특별히 더 증가한다.
동물은 우리보다 훨씬 단순한 삶에 만족하고
인간은 지적 수준이 낮을수록 삶에 만족한다.
동물은 현재의 화신이지만
인간은 다가올 재앙을 예상하고 두려워하므로
불안이란 고통은 훨씬 증폭된다.
인생이란 어떻게든 끝마쳐야 하는
힘든 과제와 같아
"나는 인생을 견대냈다"는
멋진 표현이다.
세상이란 실은 지옥이다.
인간은 한편으론 들볶이는 영혼이고
다른 항편으론 그 영혼 속의 악마이다.
필요한 것 이상의 부는
행복감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오히려 많은 재산을 유지하느라
쓸데없는 걱정을 하므로
행복감이 방해받는다.
인간을 이루는 것(타고난 것)이
인간이 가지는 것보다
행복에 훨씬 많이 기여한다.
즉, 고상한 성격과 뛰어난 두뇌,
낙천적 기질과 명랑한 마음,
튼튼하고 건강한 신체,
즉, 건강한 신체에 깃든
건강한 정신이 우리의 행복에서
으뜸가는 가장 중요한 것.
그럼에도 사람들은
지적 교양을 갖추기보다
부를 얻기 위해 수천 배 노력한다.
그래서 그들은 최고의 향유인
정신적 향락을 맛볼 수 없다.
외적 부를 통해 내적 부를 대신하려하나
아무 소용없다.
따라서, 우리는 외적 자산이나
명예를 얻으려하기보다
스스로 타고난 인적 자산을
키우고 유지하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
이 모든 자산 가운데서
가장 직접적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은
명랑한 마음이다.
어떤 사람이 명랑하다면
젊든 늙었든, 몸이 반듯하든 굽었든,
가난하든 부자든 행복엔 전혀 문제될것 없다.
현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명랑함뿐이니 명랑함이 최고의 자산이다.
명랑함에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것은
부가 아니라 건강이다.
건강을 위해선 운동이 중요하다.
반면, 천재적 인간은 우울하다.
인간의 행복을 가로막는 두가지 적수는
고통과 권태이다.
한 쪽이 멀어질수록 다른 쪽이 다가온다.
외적 궁핍과 결핍이 고통을 낳는 반면,
안전과 과잉은 권태를 낳는다.
따라서, 하층계급은 궁핍, 고통과 싸우고
상층계급은 권태를 상대로 절망적인
싸움을 벌인다.
문명의 가장 낮은 단계에서 나타나는
유목 생활은 최상층에서 일반화된
관광에서 다시 발견된다.
유목 생활은 궁핍에서,
관광은 권태에서 비롯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vRA7JSm-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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